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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6.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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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법제화, 전체주의적 정권(totalitarian regime) 사고방식
의료행위 '신뢰' 기반…CCTV '감시' 환자 치료 전혀 도움 안돼

최근 수술실 CCTV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벌써 수년째 지속된 이슈이긴 하지만,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와 신임 야당 대표 간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다.

오늘 (2021년 6월 21일) 나온 국민권익위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민의 78.9%가 찬성한다고 하고, 여당은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한다.

신체부위 노출에 대한 우려에 대해 혹자는 수술실 입구에만 설치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대리 수술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법안 제안의 주요 취지인 의료사고 은폐나 성추행에 대한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수술실 CCTV가 현재의 제안 취지를 반영하려면, 결국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가슴에 심전도를 붙이고, 성기에 소변줄을 끼우는 등의 수술 준비과정을 포함한 수술의 전 과정을 수술실 내에서 촬영해야만 한다. 환자의 민감한 부위가 영상에 노출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수술실 뿐이 아니다. 2020년 12월 신현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수술실 뿐이 아니라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모든 공간'에 CCTV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CCTV 영상 정보 유출 등 행위에 대한 벌칙을 부과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필자는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 근무하기 때문에, 수술도, 고위험 시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공통적으로 가지는 경험은 '나중에 문제제기를 많이 할 것 같은 환자'에 대한 접근은 방어적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큰 병을 걱정하는 환자에게 '현재 증상으로 봐서 큰 병은 아닐 것 같으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조언을 하였을 때, 의사의 판단을 신뢰하고 따르는 환자들은 그렇게 하지만, '100% 아닌 것 맞죠?'라는 식으로 나오는 환자들은 '걱정되시면 CT를 찍어서 확인하시라'고 하거나 다른 과로 의뢰하는 형식을 통해 보내게 된다.  

수술실 CCTV에서 모든 수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의사들은 어떨까? 조금이라도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길 만한 고위험 수술은 모두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사실 고위험 수술이 아니더라도, 수술 중에는 갑자기 예기치 못한 출혈 같은 상황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아예 그런 부담감이 있는 업무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결국, 현재도 힘만 들고 보상은 적어 기피 대상인 흉부외과, 외과 등은 더 외면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사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수술실의 CCTV설치 법제화에 대해 "이것이 일부 의료인의 비윤리적 또는 심지어 범죄행위에서 기인한 생각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의료행위는 신뢰에 기반해야 하며 그 신뢰의 핵심 요소는 환자 프라이버시의 보호"라고 했다.

CCTV 설치에 대한 강제는 불신의 표시이며, 환자의 치료나 회복과정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외과의사들이 중환자들에 대한 고위험 치료를 시행하는 것을 재고(再考)하게 만듦으로써 결국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법의 제안은 실제로 오웰적인 특성(Orwellian characteristics : 註-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을 가진 것이며, 자유 사회보다는 전체주의적인 정권(totalitarian regime)에서 어울리는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참고로, 해외에서도 수술실의 CCTV에 대해서는 일부 논의는 있었지만, 아직 입법례가 없다. 

어쨌든, 국민이 원한다고 하고, 국회의원들이 입법을 하면 이 나라에의 수술실, 어쩌면 나아가서는 온 병원은 CCTV로 뒤덮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가지는 보장하라. 의료기관에서 촬영한 모든 CCTV의 설치, 촬영, 영상에 대한 관리와 폐기에 대한 책임과 비용은 국가에서 직접 담당하라. 

의료진과 의료기관은 그렇게 못 믿어서 CCTV까지 달아야 하는데, CCTV 촬영과 관리를 제대로 할 것은 어떻게 믿겠는가? 최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해커의 랜섬웨어 공격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 연예인의 성형 수술 장면 같은 것은 해커들의 좋은 먹이감이 될 것이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 국가의 통제 하에 있으니 국가에서 직접 관리할 행정적인 근거 마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건강보험공단 등 보건복지부 산하기관들도 매년 수백 건 씩 직원들에 의한 개인 정보 유출이 일어난다는 것도 기억하면 좋겠다. 

급격한 최저 임금 상승, 각종 부동산 규제 등 선한 의도를 내세운 법들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목도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막겠다고 만든 법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수술실 CCTV가 어떤 결과를 낼지 지켜볼 차례인 것 같기도 하다. 떠오르는 격언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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