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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솔직히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한계 넘은 코로나19 의료진

기획 "솔직히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한계 넘은 코로나19 의료진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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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의료진 "업무강도 상상 그 이상, 임계점 지난지 오래" 
방역당국 병상 추가 동원 행정명령에 "얼마나 더 갈아넣어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면서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거점병원의 한 의사가 진료를 마친 후 방호복을 벗고 있다. 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면서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거점병원의 한 의료진이 방호복을 벗고 있다. 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기획] 코로나19 4차 대유행, 대한민국 의료는 'burnout'

'누군가의 일상을 위해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의 일상을 포기한 사람들'. 이것은 코로나19 현장 의료진에 관한 기록이다.
의료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감염병 위기 속에 국민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방역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이후 감염병 위기 상황이 장기화 하면서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직면한 의료진들은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의 의료 인프라로는 4차 대유행으로 급증하고 있는 중증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특단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코로나19 병상을 확보하더라도 중중·전문 치료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의료 붕괴' 문제를 지적했다. 

[의협신문]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 대한민국 의료는 'burnout'> 기획 두 번째로 의료현장 속 의료진을 들여다봤다. 생활치료센터와 병원에서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을 직접 인터뷰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말 민간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코로나19 거점병원에 자원했던 '평택 박애병원' 현장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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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뭐 거의 바닥이죠. 그 힘들다는 전공의 시절에도 괜찮았는데, 전에 없이 토사곽란을 겪는가 하면 생리통도 심해지고 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가 와요. 이미 번아웃이 됐는데, 모르고 지나치는 동료들도 많을 거예요. 그럴 여유조차 없으니까요." 

"본가에서 가서 부모님 얼굴을 뵌 지 1년 반 넘었어요. 그저 자췻집-병원-자췻집-병원의 반복입니다. 일은 그렇다 치고 같은 일을 하는 동기나 동료들을 만나 얘기라도 나눌 수 있으면 벤틸레이션(숨구멍)이 좀 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어렵네요."

"가장 힘든 건 끝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답답하죠. 솔직히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의사니까, 전쟁 중에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

끝이 보이질 않는다. 

한계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지만 내 몸과 마음이 얼마다 더 견뎌줄 수 있을지 스스로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 내기 위해, 정작 자신의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19 현장 의료진에 관한 얘기다. 

현재 대부분의 중·대형 병원이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병상이나 중등증 전담치료병상을 운영 중이다. 최근 벌어진 4차 대유행으로 각 병원 전담병상은 사실상 포화상태다. 보건당국은 지난 13일 이들 병원에 추가병상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을 냈다.  

■현장 의료진 "업무강도 상상 그 이상, 한계 넘어선 지 이미 오래" 

감염내과 전문의 A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상을 잃었다. 

사태 초기에는 밤을 새워가며 병원에 적용할 코로나19 환자 대응 프로토콜을 만들고, 선별진료소 현장을 뛰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병원에서의 진료하고 당직을 서며, 병원 내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에 대응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모든 일이 기존 업무에 더한 '플러스알파'다. 그렇게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의협신문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A 전문의는 "코로나19를 전후해 기본적인 업무 틀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당직이 늘어난 것은 기본이고, 최근 중환자가 늘면서 업무 강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변과 병원에 피해를 줄까 싶어, 최근 1년 반 동안 제대로 된 외출을 해 본적이 없다"는 그는 "의료인의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감염내과 전문의인 B 의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B 전문의는 "오전에 회진 돌고 외래 보고, 점심때 중환자 전담병상 환자들 케어하고, 때마다 당직 서는 것이 요즈음의 일상이다. 새 환자가 오면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물론 기관절개와 삽관, 소변줄 연결 등 필요한 조치도 직접하고 있다"며 "지난해까지는 이송반 역할도 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중환이 쌓이면서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각 병원의 중환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인력 충원 없이 이 모든 일을 기존 인력들이 해결해 나가는 상황이라,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 "무너진 응급의료체계" 백신 부작용 의심 환자까지 한데 몰려 폭발 직전

응급실도 폭발 직전이다.

현장에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코로나19 이후 응급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열이 있는 응급환자가 무조건 대형병원 응급실로 쏠리다 보니, 중소·지역병원의 응급실은 기반이 무너지고 대형병원은 몰려드는 응급환자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C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이나 일반 응급실에서도 볼 수 있던 경증환자도, 시스템을 갖춘 대형병원으로 쏠리고 있다"며 "우리 병원이 속해있는 지역구는 물론 인근에서도 환자들이 몰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비해서는 150%,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도 120~130%가량 환자가 늘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발열 환자를 보려면 보호복을 착용해야 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보호복 탈착을 반복하며 일하고 있다"고 밝힌 C전문의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떠나 응급의료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백신 부작용 의심 환자들까지 응급실로 몰려들어 하중이 더 커졌다. 백신접종 위탁의료기관은 1만곳이 넘지만, 백신 부작용 센터는 손에 꼽힌다. 그러다보니 백신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들이 대형병원 응급실로 모이고 있는 것. C 병원의 경우 하루 평균 20명이 넘는 환자가 백신 부작용 의심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고 있다.  

C 전문의는 "백신 접종이 계속 늘어날 텐데, 부작용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나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문제"라며 "이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그나마 응급 의료기관의 과부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별진료소 병행 의료기관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D 병원 관계자는 "모든 스텝들이 돌아가면서 선별진료소를 맡아 온 지 1년이 넘었다. 본업을 겸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모든 의료진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며 "체력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의료진의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세다. 끝이 보이면 버틸만한테 끝이 보이지 않으니, 그런 점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무거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면서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 정부 병상 추가 동원 행정명령에 "얼마나 더 갈아 넣어야"

현장의 의료진들은 와중에 떨어진 정부의 '병상 추가 동원' 행정명령에 울분을 토했다. 의료진 충원 없는 병상 늘리기는 정부 면피용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3일 코로나19 환자 증가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에 중증환자 전담 120병상, 수도권 내 종합병원에 중등증 전담치료 594병상 확보를 추가로 명령했다고 밝힌 바 있다. 

E 병원 관계자는 "전담병상을 늘리라면서도, 이를 관리할 의사와 간호사 인력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다"며 "현장의 인력이 이미 풀가동 중이 상황에서, 병상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파견 인력을 보낸다고 해도 중환자실 관리 경험이 거의 없어 병원 입장에서는 기존의 인력을 갈아 넣는 수밖에 없다"면서 "이미 현장 의료진 대부분이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F 병원 관계자는 "정부는 생색만 내고, 그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병원과 의료진들이 감내하고 있다"면서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냐"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도 지원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장비를 지원한다면서 국산 A 장비만 가능하다고 제한한다든지 의료인을 지원한다면서 관련 경험이 없는 사람을 보내는 탁상행정을 반복하고 있다"며 "비용을 지원하되 각 병원이 필요에 따라 장비 구입이나 인력 채용에 자율적으로 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유연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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