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외과계 의사들 '분노'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외과계 의사들 '분노'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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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비뇨의학회 긴급 공동 성명 발표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외과계 의사들 손목을 묶길 원하는가?" 성토
"의사 자정 노력 및 일부 의사 일탈 막을 다른 대책 마련해달라" 촉구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5개 외과계 의사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외과학회·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비뇨의학회는 28일 긴급 공동 성명을 내고,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5개 학회는 "일부 수술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먼저 국민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은 몇 시간씩 수술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5개 학회는 ▲의료 사고 및 분쟁에 대비해 최소한의 방어적인 수술만 하게 되고, 이는 환자의 생존율과 회복률을 떨어뜨리게 될 것 ▲응급수술이나 고위험수술은 기피하게 되어 상급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지며,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 ▲CCTV 녹화를 통해 수술과 관련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돼 있어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집도의의 수술집중도만 저해할 것 ▲환자의 신체가 녹화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 피해 우려 ▲의사들의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인한 의료 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5개 학회는 "수술 과정을 CCTV로 녹화하는 것만으로도 수술하는 의사들은 향후에 이 영상으로 인해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런 생각은 외과계 의사로 하여금 소극적이고 안전한 수술만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 예로 악성 암환자의 경우 수술을 할 때 자신의 수술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종양을 무리하게 절제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결국 암환자의 재발률과 사망률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고 걱정했다.

5개 학회는 "응급수술, 고위험 수술, 질식 분만, 신장절제술, 전립선 절제술 등이 동영상으로 남겨져 검증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의사들은 안전한 수술만 하게 되고, 고위험 수술은 포기하고 상급병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상급병원으로의 쏠림이 심해져 환자들은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하게 된다"고 밝혔다.

또 "최근의 수술 경향은 내시경 또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 녹화되는 영상에는 의료진이 수술시간 동안 서 있는 모습만 촬영이 되어 어떤 도움을 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현미경수술이나 내시경 수술 등은 대부분 녹화를 하고 있으며, 각종 모니터링 장비의 내용도 기록되고 있음에도 환자 주변에 서 있는 모습을 수 시간 녹화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는 의사의 수술집중도만 낮추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뇨의학과 수술, 산부인과 수술, 대장 및 유방 수술과 같이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가리고 녹화하기는 하겠지만, 수술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신체가 모두 촬영이 되는데, 해킹 등으로 녹화본이 유출되면 환자에게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5개 학회는 "의사들의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인한 의료 체계의 붕괴 가속화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5개 학회는 "힘든 수련과정과 장시간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업무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면서 젊은 의사들이 외과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며 "수술실을 CCTV로 녹화까지 하겠다는 것은 외과계를 더 기피하게 할 것이고,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오늘도 의사들은 각 지역의 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에서 수술을 하고, 중환자를 돌보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밝힌 5개 학회는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철회하고, 의사들 스스로 자정 노력과 함께 일부 의사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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