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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세계 최초' 수술실 CCTV...의사도 정부도 '큰 숙제' 남아
초점 '세계 최초' 수술실 CCTV...의사도 정부도 '큰 숙제' 남아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1.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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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거부 요건 구체화 등 보건복지부령 위임 사안 "주목"
"외과계 기피 현상에 기름 부었다" 개선안 마련 압박 수위 높아질 것
'UA 합법화'도 연결…강행 절차 들어갈 가능성↑ 9월 공청회 '관심'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료계에서는 '전 세계 유례없는' 의무가 부가된 것에 대해 "의료 역사에 뼈아픈 오점을 남길 것"이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료계의 우려와 반발은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된 이상, 2년 뒤부터는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CCTV 설치를 해야 한다.

큰 틀에서 변하는 것은 없지만, 현장에서 직접 체감될 세부 규정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령·시행규칙을 통해 정리하게 된다. 의료계가 분노를 넘어 2년이라는 남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지금도 심각한 '진료과 기피' 현상을 심화하고, UA 합법화 강행에 압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에도 큰 부담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법정 '촬영 예외 사유' 보건복지부령 구체화…치열한 공방 예상

개정안은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폐쇄회로 CCTV를 설치하도록 했다. 의료기관의 규모나 수술실 유무가 아닌 수술 성격에 따라 의무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같은 수술을 진행하더라도 부분·국소마취를 택한 경우에는 개정안에 따른 의무가 없는 것.

더불어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에도 의료진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규정돼 있다.

신설된 의료법 제38조의2 제2항에 따르면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응급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른 수련병원 등의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개정안에는 여기에 ▲위 3가지 규정에 준하는 경우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추가했다.

CCTV 설치가 필수의료의 위축을 가져오고, 수술 집중도를 떨어뜨리며 소극적 처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환자 생명이 위험한 경우', '위험도 높은 수술' 등 예외를 둔 것이다. 이에 '독소조항'이 의료계 의견을 반영해 일부 축소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위험도', '적극적 조치', '지체 시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 '전공의 수련·목적 달성을 저해할 우려' 등 다소 추상적인 문장들이 나열된 상황. 보건복지부는 모호한 표현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숙제를 건네받은 셈이다.

"어떤 수술이건 위험하지 않은 수술이 없다"고 보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위험도가 높거나 심신상 중대한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수술의 범위를 보다 넓게 해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환자단체는 위험도가 높을수록 법적 분쟁 역시 발생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예외 범위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의결 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이 나왔지만, 법안 자체의 모호성으로 인해 해석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시행령과 시행규칙 과정에서 '의-정-환'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영상정보 관리를 위한 계획 수립, 네트워크 분리, 영상 관련 출입자 관리 방안 등 안전관리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물리적 조치 ▲영상 보관기준과 보관기간 연장 사유 내용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위임됐다.

■ '외과계' 기피현상에 기름 부어…정부 개선안 요구 '압박 수위' 높아질 듯

수술실 내 CCTV와 연관성이 높은 '외과계'는 이미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법안 통과로 기피현상이 더 커지게 됐다며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과를 포함한 필수과 기피현상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전문인력이 줄어드는 문제로, 정부 역시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4월 외과를 포함한 4개 학회와 함께 필수의료 관련 정책협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논의하는 등 개선안 마련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선안이 나올 새도 없이 'CCTV 개정안'이라는 악재가 겹쳤다.

특히 저수가 문제와 함께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분쟁은 기피현상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크다.

의료계는 특히 수술실 CCTV 설치로 인해 이전보다 '법적 분쟁'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예상이 기우라 치더라도 의료인, 그리고 예비 의료인들이 느끼는 압박감 자체가 기피현상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높다.

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외과학회·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비뇨의학회 5개 외과계 단체들 역시 비판성명을 통해 "힘든 수련과정과 장시간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업무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면서 젊은 의사들이 외과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며 "수술실을 CCTV로 녹화까지 하겠다는 것은 외과계를 더 기피하게 할 것이고,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추후 '기피과' 심화 현상에 대한 비판과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당 개정안 후속조치에 더해, 이로 인한 기피과 현상 심화 등 후폭풍도 함께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UA 합법화'도 연결…강행 절차 들어갈 가능성↑ 9월 공청회 '관심'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가 논의되면서 불법의료보조인력(UA) 역시 함께 이슈로 떠올랐다. 의료계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불리던 현행법상의 명백한 불법 영역, UA 문제가 이제는 CCTV에 고스란히 남게될 상황이 다가온 것. 

UA 문제는 이전에도 수년간 지적됐지만 의-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건 최근이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를 통해, 이제 막 보조의료인력 관련 논의를 시작한 참이었다. 하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보건복지부가 9월로 예고했던 보조의료인력 관련 공청회가 당초 예상보다 과열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여기서 정부는 관련 시범사업 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관계자는 "시기적 연관성으로 인해, 현상적으로 급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짚으며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본격화된다면, 의료 현장에 있는 분들이 불안해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업무를 하는 분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업무 범위의 불명확성을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며 동 개정안에 따른 압박을 우회적으로 표했다.

의료계에서도 시기적인 변화로 인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입법예고된 전문간호사 분야별 업무범위를 규정하는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대해 UA 합법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며,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는 등 강력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한 UA 합법화 강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사전 경고 목소리를 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공청회에서는 전공의 수련 문제에 대한 공격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은 앞서 UA로 인해 정당한 수련을 받지 못한다며 실태조사 및 행정조치를 촉구해야 한다는 비판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번 수술실 내 CCTV 개정안에서 '수련병원 등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를 촬영 의무에서 제외할 만큼, 수련환경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전공의들이 수련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UA에 대해 합법화 수순을 밟는 것은 다소 모순된 행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입법취지에 따라 개정안 시행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월 23일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직후 "시행준비 과정에서 환자, 의료인, 전문가 등의 의견을 반영해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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