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회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교각살우'"
외과의사회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교각살우'"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9.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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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불법 의료행위 사회적 책임·자정 노력 부족 자성
근시안적 탁상행정…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 야기
합리적·전향적 대안 마련에 전문가 집단과 머리 맞대야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은 여론에 영합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대한외과의사회는 9월 8일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성명을 통해 "가장 신성하고 인권이 존중돼야 할 수술실까지 통제하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 인권 유린 행위"라고 비판하고 법안 강행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외과의사회는 "이 법은 '교각살우(矯角殺牛)' 해결책이며, '득불상실(得不償失)'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이후에 발생할 결과를 전혀 고려치 않은 매우 근시안적인 탁상행정의 극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정과 신뢰 훼손, 인권침해, 소극적·방어적 의료 초래, 무분별한 사생활 노출, 외과 기피현상 심화 등 이 법이 초래할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외과의사회는 "정부와 국회는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환자와 의료진 간의 불신을 조장하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안 시행을 중단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대안을 전문가 집단과 함께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아래는 대한외과의사회 성명서 전문.

'수술실 내 CCTV 설치 반대' 성명서

대한외과의사회는 지난 31일 국회를 통과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 무엇보다 그 입법 과정이 전문가 집단과의 적극적인 논의와 협의 과정이 배제된 채 거대 여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고, 여론에 영합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수술실은 생명에 대해 존엄과 책임으로 그 어느 곳보다도 진지해야 할 특수한 공간이다. 작금의 상황이 이 공간에서 발생한 극소수 의료인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있으며, 전문가 집단의 자정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입법화시킨 '수술실 내 CCTV 의무 설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해결책이며, '득불상실(得不償失)'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이 법안을 그대로 강행할 경우,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임은 자명하다. 수술실은 외과 의사에게 삶의 현장이며, 존재의 이유다. 그 공간에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을 감시용 CCTV를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이후에 발생할 결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매우 근시안적인 탁상행정의 극치다. 

이에 본 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법안 강행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첫째,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이다. 의료 행위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내 몸을, 어쩌면 생명을 맡기면서 한편으로는 잘하는지 감시하겠다는 것은 현 정부가 그토록 주장했던 공정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둘째, 수술실 내 CCTV 의무 설치 법안은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반인권적인 법안이다. 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수술 과정의 의료 사고, 비자격자 대리 수술, 성범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마치 상기한 과정이나 행위들이 수술실에서 만연하고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의사도 인간이고 당연히 인권을 가지고 있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말한다. 극소수 의료인의 일부 사례를 일반화시킨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자유와 가치 실현의 권리를 저해시키는 인권 침해 소지가 분명한 법안이다

셋째, 수술실 내 CCTV 촬영은 의료 사고나 대리 수술, 성범죄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수술 과정 중 의료 사고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많으며 대부분 '선의의 의료 행위'로 인정되고 있다. CCTV 촬영은 오히려 몰입도를 방해하고 적극적인 의료 행위를 억제하게 되어 의료 사고나 수술 결과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리 수술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진이 수술에 참여하려면 수술 가운으로 온몸을 감싸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참여하게 된다. CCTV 촬영 영상만으로 대리 수술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적발 시 중한 징벌이나 규제가 더 효과적인 해결책이며, 전문가 집단의 자율 규제, 정화 노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성범죄도 마찬가지이며, 이미 의료법 내에서 따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안의 제안 이유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CCTV 설치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넷째,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의료 행위를 소극적, 방어적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진료 환경이 위축되어 의료에 대한 전반적인 문화가 소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환자는 생존율 5%만 돼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인데, 소송이 두려워 의사가 적극적인 수술을 피하게 되면 사망할 수밖에 없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처럼 구출 확률이 높은 사람만 구하고, 낮은 사람은 죽게 내버려두는 로봇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다섯째, 수술실은 환자의 환부나 신체가 가감없이 노출되는 곳이다.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가 드러나는 영상 자료는 의료기관의 보안 취약성을 노리는 성범죄자를 비롯한 각종 범죄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환자가 수술 받는 장면이 인터넷에 떠돌게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법원에서 재판 과정에 대한 촬영이나 녹취가 금지되는 이유가 개인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거나 편집되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섯째, 외과 기피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그동안 외과는 고위험도의 수술, 강한 노동 강도,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해 전공의 지원율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도 고사 직전인 상황에서 당연히 받아야 할 신뢰가 아니라 감시를 받으며 수술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누가 외과를 지원할 것인가? 설사 외과를 지원한다고 해도 '수술실 내 CCTV'는 전공의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수련 과정마저 방해할 가능성이 높고, 교육 강도도 약해질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제대로 수련을 받지 못한 채 외과 전문의가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의료 사고나 좋지 않은 결과를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외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그 대가는 결국 환자의 희생, 의료의 질 저하로 돌아오게 된다.

일곱째, 수술실 내 CCTV 설치, 보관, 보안 유지 등에 필요한 비용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 없이 설치만 강제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공권력의 횡포이다. 국내 수술실과 분만실은 10,000개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20년 경기도가 수술실 CCTV 설치 비용으로 1개 병원 당 3,000만원을 산정했다고 하는데, 설치, 보관, 보안 비용까지 합하게 되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 없이 설치만 강제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70년 전 조지 오웰은 빅브라더가 구성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를 소설 속에서 그려낸 바가 있다. 수술실 내 CCTV 의무 설치 법안은 이러한 감시와 통제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는 독재 정권 시절을 이겨내고 민주화 운동을 거쳐 지금은 어느덧 선진국으로 인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의 질이나 성과 측면에서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성하고, 개인의 인권이 무엇보다도 존중되어야 할 수술실이라는 특수 공간까지 통제하려는 발상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며 인권 유린 행위이다. 환자의 인권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인권도 중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환자와 의료진 간의 불신을 조장하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안 시행을 중단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대안을 전문가 집단과 함께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대한외과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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