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 시민의식 탓'이라는 국토교통부 장관

'집값 폭등 시민의식 탓'이라는 국토교통부 장관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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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해지는 의료규제
의사가 월급 받는 공무원 마냥 착각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 집값이 폭등해 청년 세대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이 '한국부동산포럼'을 구성하고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때 과거 시민단체의 대표였던 국토교통부장관이 아래와 같은 강연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시민이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시민이 스스로 시민의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구매는 관료가 정할 문제가 아니다. 시민 사이에서 강남에 살 것인지 아니면 경기도에 살 것인지 협정을 맺어야 한다. 왜 강남 혹은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는가? 시민들이 지역마다 거주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

현직 장관이 이런 강연을 했다면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비판을 받을 것이다. 실제 그런 강연을 할 장관도 없다. 그런데 최근 의료계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9월 25일 한국보건의료포럼 창립총회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이와 비슷한 강연을 했다. '한국의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은 정부와 의료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의사들이 임상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다. 의료전달체계를 위해 병원과 의원이 협정을 맺어야 한다 등등.' 

물론 김 이사장의 강연에는 좋은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김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니다. 하지만 공단 이사장은 국민건강보험 운영을 책임지는 공직이다. 과거 시민단체 대표였지만 현재는 공직자인 사람이 자신의 책임인 정책 문제는 외면한 채 시민의식에 책임을 돌리는 강연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마찬가지로 김 이사장이 과거 의료정책 교수였지만 현재 공직자라면 이런 유체이탈식 강연은 부적절하다. 

더 나아가 내용적으로 김 이사장의 강연은 철저하게 법과 제도의 문제, 정부실패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숨막힐 듯한 정부 규제의 틀에 적응해 가며 진료하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의료규제를 보면 민간 의사를 월급 받는 공무원으로 착각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심각한 이중성이 존재한다. 정부로부터 월급 받는 공무원이 아니라 알아서 수입을 챙겨야 하고 망하는 것은 자기 책임인 공무원이다. 

의료전달체계 문제의 근원도 사실 정부실패다.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의원이나 중소병원 의사들이 값비싼 최신 의료장비로 무장한 대학병원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 자체를 박탈하고 있다. 가령 의원을 개설한 의사가 박리다매 의료를 거부하고 의료의 본질을 추구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나는 비싼 검사가 아닌 이학적 검사에 충실하고 오랜 시간 상당하면서 환자와 신뢰를 구축할 것이다.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운동요법과 식이요법, 생활관리를 철저히 해 주겠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받겠다.' 이런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법령은 정해진 박리다매 의료 외에는 철저히 불법으로 간주한다. 

김 이사장은 의료정책학자로서 영국의 의료제도를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영국이 우리나라처럼 'private care(민간 의료)'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민간 의료기관의 수가를 통제하나? 영국이 우리나라처럼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와 같은 제도로 의사들의 계약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김 이사장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김 이사장의 강연에는 조선시대 사림의 모습이 녹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향과 위계질서를 만들어 놓고 백성은 그에 순종할 것을 요구했다. 의문을 제기하면 외면하고 박해하고 가르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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