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대변인 24시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24시

  •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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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입' 역할 책임감 막중…신뢰 회복 위해 결심
극적인 변화 어려워도 진심 다해 소통…'나비효과' 되기를
이상과 현실 괴리 실감…신조 '하루를 치열하게!' 최선 다해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의협신문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의협신문

또 해가 떴다.

하루가 시작됐는데, 오늘이 오늘인지 어제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응급의학과의 특성상 밤낮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인데, 밤을 새우고 뜨는 해를 보고 나면 또 다른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드르륵" 어딘가에서 진동 소리가 난다. 어떤 전화가 울리는지 한참 찾는다. 어질러진 가방 안에는 언론 상대 전용의 대변인 휴대전화, 그리고 집행부와 긴밀히 소통하는 개인 휴대전화, 그리고 병원 응급실 긴급 전문의 휴대전화가 있다. 소위 말하는 '콜'을 받기 싫어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내 인생의 가장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5월 나는 대한의사협회 제41대 집행부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이 되었다.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지만 사실 시작은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지금껏 내가 만난 대부분 의사들은 선하고도 사명감 짙은 사람들이다. 

응급의학과 특성상 다른 과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수련·학회·봉사·외부활동, 그리고 내가 환자로서 만난 기억을 모두 털어보면 존경하는 교수님들을 빼곡히 나열할 수 있고, 나를 의사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키워준 좋은 선배 의사들도 수두룩했다. 세상에 이렇게 선한 의사들이 많은데, 어째서 뉴스에는 그렇게 나쁜 의사들만 나올까? 왜 정치권에서 의사는 기득권 적폐 세력이라며 끊임없이 세세하게 통제하려는 악법을 발의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무엇을 했다고 나쁜 의사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일까 궁금해졌고 알면 알수록 서글퍼졌다. 

의사들은 전문직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전문직이라면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 같다. 

국민과 의사 간의 거리가 몹시 멀어지고 괴리감이 커졌다고 생각했다. 진료와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와의 신뢰 관계다. 충분한 신뢰감 없이 환자는 의사가 권고한 치료 방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저조한 치료 결과로 이어진다. 이 사이에서 불필요한 분쟁들이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과 의사와의 거리감은 의료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 거리를 좁히는 가장 중요한 위치가 바로 대변인인 것 같다. 

 

만일 내가 쌓아온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플러스라면,

그리고 나에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써보자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겸 대변인이 6월 2일 인천21세기병원의 대리수술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의협신문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겸 대변인이 6월 2일 인천21세기병원의 대리수술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의협신문

나름대로 의료봉사도 많이 했고, 선박 의사로도 일하면서 재미있는 이력들도 쌓았다. 또한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지하철에서 시민을 구한 의사로 나오기도 한다. 더불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만일 내가 쌓아온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플러스라면, 그리고 나에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거리를 좁히기 위하여 써보자' 나의 대변인 인생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대한의사협회의 입, 대변인이라는 직책은 신중하면서도 신속해야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슈들 속에서 뚜렷하게 입장을 알려야 하며, 의사들은 물론 언론과 국민을 두루두루 이해시켜야 한다. 발 빠르고도 가장 효과적으로, 보편타당하게 해결해내야 한다. 수시로 밀려드는 피곤함을 떨치고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스스로 주문을 외운다.

현실 안주보다는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협회 일은 다소 생경하다. 13만 의사들의 중앙회,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면에서 책임과 권위의 무게감이 크다.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의료계에는 정말 다양한 직역들이 있고, 각기 다른 문제로 고민한다. 내 분야만 파고 있었을 땐 몰랐던 일들이다. 다른 직역 동료들의 목소리를 그간 피상적으로만 들어왔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감정이입이 된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되며, 협회 차원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협회 일이란 나를 벗어나고 뛰어넘는 일임을 깨닫는다.

집행부가 되기 전 생각한 이상과 막상 마주한 현실과의 괴리는 확실히 컸다. 의료계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언론에 이야기하고 그들을 완전히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중요한 안건이 있다면 기자와 기본 30분 이상은 통화하고 길게는 1시간 이상 통화가 생활화됐다. 기자 한명 한명이 안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통해 보도된 기사가 의료계의 입장을 잘 반영할 리 없으므로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국민이 의사에게 호감을 느끼는 쪽으로 여론이 급변하거나 무조건 법이나 제도로 규제하고자 하는 사회의 흐름이 갑자기 반전되고, 회원들이 협회의 방향과 비전을 온전히 이해해준다면 좋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러한 변화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작은 날갯짓에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꾸준히 의견을 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마음을 다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진심들이 언론을 통해 사회에 전해진다면 좀 더 전문가로서 자신의 분야에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고, 서로 신뢰감을 가지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한다.

해가 저물 무렵 아침에 100% 완충했던 핸드폰들이 10%로 깜박인다. 아직 멀었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일도 해는 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또 다른 하루에 최선을 다해서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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