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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잘못된 통계 알면서도 반복되는 '의사 성범죄자 최고' 왜?
논설위원 칼럼 잘못된 통계 알면서도 반복되는 '의사 성범죄자 최고' 왜?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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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매년 국감 시즌이면 전문직 성범죄자 중 의사가 가장 많다는 자료가 되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의사에는 치과의사, 한의사, 심지어 수의사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적시하지 않는다. 사진은 6일 보건복지위원회 국감 현장. ⓒ의협신문

'전문직 성폭력 범죄자 중 의사 가장 많아', '전문직 성범죄 최다 의사..최근 4년 602명'.

일주일 전 쯤 쏟아진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만 보면 꼼짝없이 의사는 성범죄자 집단의 대명사처럼 들린다.  

이런 기사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통 9월과 10월 국정감사 시기 때면 매번 되풀이 된다. 올해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최근 4년간 성폭력 범죄자 전문직 직업별 현황 자료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보도자료를 내면서 쏟아져 나왔다. 의사·예술인·종교가·교수·언론·변호사 등 6대 전문직 성폭력 범죄 5569건 중 ' 의사'가 602건으로 제일 많다는 것이다.

잠시 시간을 돌려보자. 작년엔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자료의 출처였다. 경찰청의 5년간 자료를 제출받아 의사 성범죄자가 613건으로 가장 많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조금 더 시간을 돌려 2015년으로 가면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6대 전문직의 성범죄 현황 자료를 냈다. 차이라면  당시엔 성직자가 1위였고, 의사가 2위였을 뿐이다. 

이들 자료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전문직 '의사'에  한의사·치과의사·수의사까지 포함돼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적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은 일반적으로 '의사'라고 하면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과 의사'를 연상하지 한의사, 치과의사, 수의사를 떠올리지 않는다. 자료가 이렇다 보니 졸지에 의사는 이들 모두의 성범죄까지 떠안아 파렴치한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잘못된 전문직 분류를 시정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지만 이런 자료를 낸 의원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경찰청 자료 그대로 보도자료화 한 것이다"라거나 "경찰청에서 그렇게 자료를 받았다"며, 경찰청에 그 과를 넘겼다. 경찰청에 문제를 제기하면 통계를 입력할 때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를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며 굳이 분류가 필요하냐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경찰청이 치과의사, 한의사까지 포함해 '의사'로 통칭해 자료를 내고 있지만 의료법에서는 엄연히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 임무를, 치과의사는 '치과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로 엄연히 구분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중 '의사'라는 명칭만 특정해 국정감사때 마다 '전문직 종사자 중 성범죄 1위 의사'라는 보도자료을 내면서 의사들은 괜한 오해를 사고, 국민에 대한 의사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 

의료계는 수년째 경찰청의 통계 작성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개선을 요구했지만 업무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로 직업별 분류를 세말하게 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더욱 의아한 것은 성범죄 현황 자료를 내놓는 국회의원들이다. 경찰청 자료에 대한 지적이 그들의 귀에도 들릴 터이지만 매년 관행적으로 보도자료를 낼뿐 경찰청에 시정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 매번 이런 자료를 내고 있는 이들에겐 애초부터 정확하고 세밀한 자료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직종 간 비교를 하려면 각각의 전문직 총수에서 실제 발생 비율을 구해 비교해야 맞지만 잘못된 숫자만 갖고 단순 비교하면서 '의사 성폭력 범죄자 전문직 중 가장 많다'는 자료를 반복해 생산하는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서영석 의원이 지난 9월 30일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 말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영석 의원은 "의사, 종교가, 변호사 등은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고통과 충격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특히,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경우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절대적인 신뢰를 이용해 무방비 상태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로 그 위험도와 심각성이 더 높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며 "의사의 성폭력 범죄는 반드시 면허 취소 등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되어야 근절될 수 있다"고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에 대한 의사 면허취소법의 조속한 통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요약하면 '의사 면허취소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바닥 다지기였다는 의미다. 본인의 입법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의사'들이 한의사, 치과의사, 심지어 수의사의 성범죄까지 불필요한 오명을 덮어 써야 하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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