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 장기려 박사는 평생동안 집 한채 없는 무소유로 일관하며 헐벗고 의지할 곳 없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해 가난하고 이웃을 도와 '시대의 성자'로 알려져 왔다.
또 1959년 국내 최초로 간대량절제술에 성공하는 등 국내 의학 발전과 주민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등 한국 의료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막사이사이상 국제적십자사기장 및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한 바 있다.
1932년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40년부터 평양의과대학 외과교수겸 외과과장 및 평양도립병원장을 역임한 장 박사는 1950년 차남(서울의대 장가용 교수)와 월남, 부산에 정착했다.
1951년 6월 21일 피난민 전상자 극빈자가 몰려있던 임시수도 부산의 전시상황에서 영도구 남항동 2가 46번지 제3영도교회의 창고를 빌리고, 대한기독교경남구제회(대표자 전영창)의 도움을 받아 천막병원인 '복음진료소'를 개설해 현 고신대 복음병원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국내에서 의료보험에 대한 개념이 일반에 인식되기도 전인 1968년 5월 13일 '건강할 때 이웃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라는 기치 아래 지역민들의 협동정신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다.
이밖에 1969년 12월 간질환자 치료를 위한 협의체 '장미회', 1976년 11월 지역사회 복지증진을 위한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 복지사업을 실시했다.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