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공공의료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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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람들은 공공에 대해 막연히 선한 인식을 갖고 있다.

민간보다 공공이 하면 좋은 거 아닌가? 민간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니 악이고 공공은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니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판친다. 일부에서는 민간이 할 수 없으니 공공이 그 역할을 하라고 압박한다. 심지어 보육·철도·교육·의료·돌봄 등 모든 분야의 게임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라고 압박한다.

의료 분야의 게임이 바로 '공공의료 게임'이다.

'공공의료 게임'의 뿌리는 의외로 깊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에 의료보험이 처음 도입되면서 게임이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의사들은 그저 '무궁화꽃이 피던 날' 정도로 생각하고 잠시 쇼만 하다 말겠거니 방심한다. 배가 부른 필수과목 의사들은 의료보험수가 제정 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다.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지내던 의사들에게 '지옥'(?) 문이 열린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다. 

충분한 재정적 준비도 안 된 가운데 전격적으로 시행된 전 국민 의료보험은 '저수가·저급여'라는 극한의 게임룰을 적용해 진료 현장에서 차분히 환자의 마음을 살필 시간적 여유마저 박탈해버린 채 '3분 진료'라는 무한 질주의 경마 게임으로 몰고 간다. 바야흐로 의사가 아닌 의마(醫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0년대가 되자 '쫄려도 편먹기' 게임이 등장한다. 바로 '의약분업'이다. 

의마(醫馬) 집단을 의약품 리베이트나 탐하는 악한 세력으로 지목하고 '의마'와 '약마(藥馬)' 집단으로 편을 갈라 서로 치고받게 만든다. 분개한 의마들은 의마중앙회(대한의사협회)에 모여서 집단행동을 하기로 작정하고 총파업을 결의한다. 2000년 의사 총파업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총파업에 지친 의마들은 정부와 타협해 파업을 풀고 의약분업과 함께 '평등한 세상'을 받아들인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다. 

의마들의 눈이 온통 의약분업에 쏠려있는 틈을 타 모든 말들이 반드시 건강보험진료 의료기관이란 마차를 끌도록 한 국민건강보험법이 지난 2000년 통과된 것이다. 

이 게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게임의 시작과 함께 이마에 세모와 네모와 원을 그린 가면을 쓴 붉은 옷을 입은 감시자도 대거 늘어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그들의 상관으로 보이는 검은 가면도 등장한다.

평등한 세상이 펼쳐지자 의마들은 질(質) 대신 양(量)의 게임을 펼쳐야 함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다. 병상 수와 외래 환자가 많은 마차를 끄는 의마들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전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 게임이다. 

게임에 20여 년을 몰두하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함께 경주를 시작했던 친구 의마들이 저만큼 뒤처져서 숨 가쁘게 달려오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 부채(負債)의 바퀴에 치이지 않으려면 다시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야만 한다. 절망적 레이스다.

끝날 거 같지 않은 게임에서 지쳐갈 무렵 '깐부'가 나타나 다정한 목소리로 '힘들면 공공마차로 오라'고 유혹한다. '공공마차로 오면 절망적 레이스를 벗어날 수 있다'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린 의마는 어찌어찌 부채를 정리하고 중년의 나이에 별 가진 것도 없이 공공마차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 처음엔 너무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경주를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공공마차에 높은 분들이 들이닥친다. 'VIP들'이다. 

어떤 VIP들은 의마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느니 공공성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지적을 하더니 급기야 '공공의마(公共醫馬) 훈련소'를 따로 만들어서 공공의마를 양성하자고 주장한다. 바로 공공의대다. 심지어 어떤 VIP들은 공공의마 훈련소에 입학할 말들을 추천하는 권한도 쥐겠다고 한다.

알고 보니 손님이 바뀌었을 뿐 말들은 여전히 마차를 끌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의마들은 분개했다. 의마들 가운데 용기 있는 한 의마가 공공마차의 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려 나서보지만 의마들은 VIP들의 보복이 두려워서인지 어느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고 오히려 애써 외면한다. 분노한 의마는 바깥세상에 이 일을 알리기로 마음을 먹고 더 이상 공공마차를 끌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붉은 옷들의 상관으로 보이는 검은 가면이 그를 자기 방으로 부른다. 검은 가면은 의마를 설득하기 위해 가면을 벗게 되는데 가면을 벗은 얼굴을 보고 의마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는 바로 지난 2000년 '쫄려도 편먹기(의약분업)' 게임에서 집단행동을 한 의마(醫馬) 들을 향해 리베이트 당근이나 탐하는 못된 집단으로 비난하던 몇몇 의마들 중 하나 아닌가. '네가 왜?'라고 묻지만 검은 가면은 대답 대신 달콤한 조건으로 의마를 유혹한다. 

그러나 의마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제 더 이상 공공마차를 끌지 않을 뿐 아니라 공공마차의 부당성에 대해서도 만천하에 폭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 즉시 가면의 권총이 의마를 향해 불을 뿜는다.

이제 오랜 경주에 지친 의마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이제 남은 의마들의 의욕도 바닥을 칠 무렵 어디선가 '의마학교 정원 증원, 공공의마학교 설립' 등의 구호가 나부낀다. 

전국 70개 진료권역에 공공의마병원을 설치해 공공의마병원 중심으로 환자를 보도록 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그분이 직접 공공의료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의마들은 다시금 피가 거꾸로 솟구침을 느끼고 전국의마 총파업을 결의한다. 2020년 의사 총파업이다.

하늘이 도왔을까. 때마침 전국적으로 몰아닥친 괴질로 인해 의마들의 총파업은 그분의 마음을 잠시 돌려놓기에 성공한다. 공공의마학교 설립도 의마중앙회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도 한다. 분위기가 좋아진 틈을 타 의마들은 그분의 의중이 어떤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때마침 저녁 노을이 산 허리에 걸린 어느 '운수 좋은 날' 그분이 의마중앙회 대표를 보자고 하여 갔다. 그분이 계신 곳은 국내 최고의 민간의마병원인 삼손병원 VIP실이다. 그분은 다소 기력이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의마중앙회 대표는 그분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따져묻듯 물었다. 그동안 자기 돈으로 의마학교 졸업하고, 민간의마병원 짓고, 저수가·저급여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OECD 국가 최고의 보건의료지표를 달성한 민간의마들의 헌신에 대해 왜 인정하지 않는지, 올해 들어 개업대비 폐업이 300%가 넘어서 민간의마병원이 붕괴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공공의마병원을 설치하려는 이유는 뭔지, 공공의마학교로 이권을 누리게 되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게임의 설계자는 누군지.

의마중앙회 대표의 몰아붙이는 다소 거친 질문에 그분은 침대 위에서 가쁜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느리고 나지막한 어투로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점이네"라고 내뱉고는 끝내 눈을 감고 만다.

그 순간 의마중앙회 대표의 머릿속은 마치 해머로 한 방 맞은 듯 멍해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코드원 방송이 뜨고 삼손병원 교수의마들이 그분을 되살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때마침 누군가의 핸드폰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컬러링으로 흐르고 전화를 받으니 한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공의료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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