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 단순하지만 복잡한 당구의 세계...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의사

백인백색 단순하지만 복잡한 당구의 세계...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의사

  • 조승우 의협신문 명예기자(연세의대 본과 1학년) brandoncho321@gmail.com
  • 승인 2021.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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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태 전 강원도당구연맹회장(강원 춘천·연세강이비인후과의원)

 

 

당구연맹회장과 의사. 두 단어의 조합을 상상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놀랍게도 강원도 당구연맹 회장을 무려 6년이나 역임한 의사가 있다. 강석태 원장(전 강원도의사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강 원장은 1980년 의과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당구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2년 만에 300점을 칠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레지던트를 수료하기까지 당구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 2000년 의약분업 당시 20일간 파업이 이어지면서 다시 당구장을 찾게 됐다. 이때 본격적으로 선수들이 경기하는 국제 식 대대에 입문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당구 사랑으로 그는 아마추어지만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 2004년부터 강원도 당구연맹 회장을 6년간 역임했으며, 세계적인 선수들과도 교류했다. 당구선수가 아닌 사람이 연맹회장을 역임한 일은 강 원장이 거의 유일하다. [의협신문]은 백인백색 시즌2를 맞이해 다시 한 번 강 원장을 만나 그의 당구 사랑 얘기를 들어봤다

2004년 춘천에서 열린 세미 세이기너 선수 초청 당구대회에서 강석태 원장이 경기를 하고 있다. <br>ⓒ의협신문
2004년 춘천에서 열린 세미 세이기너 선수 초청 당구대회에서 강석태 원장이 경기를 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상천 선수와의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길을 열다.

2003년 강 원장은 대전에서 열린 한 당구대회에서 참가했고 그때 이상천 선수를 처음 만났다. 이상천 선수는 당시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세계 챔피언인 세미 세이그너(Semih Sayginer)와 전국 초청경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강 원장은 춘천의 당구 선수들을 위해 춘천에서 초청경기를 개최해달라고 이상천 선수에게 부탁했다.

당시 그는 제안하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춘천이 당구 환경이 매우 열약했었거든. 거의 초보 당구선수들밖에 없었지. 근데 이상천 선수가 그러더라고. 나는 상대를 모두 챔피언으로 생각한다고." 이렇게 춘천에서 초청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고, 이를 계기로 이상천 선수는 강 원장에게 당구연맹 부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제의했다.

당구 연맹 임원직은 지금까지 항상 당구 선수들이나 관련 사업가가 맡아왔기에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거듭 된 요청에 그는 강원도당구연맹 회장을 맡기로 약속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나에게 부회장을 맡길 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지. 나를 많이 좋게 봐준 것 같더라고. 허허" 라며 웃음을 띠기도 했다.

2004년 강원도 당구연맹 회장을 맡게 된 강 원장은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당구계가 많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대회를 개최하기도 쉽지 않았다. "각 지역 연맹 회장들이 모여 토론할 때 절반을 제가 얘기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당구의 불모지였던 강원도에서 이상천 추모 당구대회와 대한체육회장배 당구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강원도 당구를 활성화했다. 그 중 대한체육회장배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처음으로 후원을 받은 상징적인 대회로 나중에 국토정중앙배로 대회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재까지도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공을 다루지만 어렵고, 누구나 칠 수 있지만 잘 치기는 힘들며,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것. 그것이 당구의 매력이 아닐까요?"
"좋아하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는다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다만 취미 생활과 본업이 적절하게 조화로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006년 최성원 선수를 상대로 첫 승...마음 깊이 새겨진 그때 기억.

그는 당구와 관련해 여러 추억이 많지만, 특히, 당구 대회에서 첫 승을 거뒀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다고 말했다. 당구 선수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했던 강 원장은 대회에서 1승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는 2006년도 청주 오픈 전국 당구대회에서 처음으로 1승을 했다.

그런데 그 첫 승 상대가 놀랍게도 최성원 선수였다. 최성원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이력이 있는 국내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선수이다. 당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묻자 "핸디캡을 받아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점이 남았는데 갑자기 이제부턴 열심히 치겠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하자마자 내가 3점을 다 쳐서 운 좋게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추억도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했던 2009년도 수원 당구 월드컵이 끝나고 스웨덴 선수 토브욘 브롬달(Torbjorn Blomdahl)과 이탈리아 선수 마르코 자네티(Marco Zanetti)와 밤새 당구를 쳤다. 이날 자네티 선수가 엄청난 수비로 선수들마저도 칠 공이 없다고 했던 공 배치를 강 원장이 정확한 계산으로 맞췄다. 멋지게 공을 풀어낸 강 원장에게 마르코 자네티는 한 수 가르쳐 달라며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의협신문
2009년 수원 당구월드컵이 끝난 후 마르코 자네티 선수(사진 중앙)와 당구 경기를 즐기고 있는 강석태 원장(사진 오른쪽). 선수들 마저 칠 공이 없다고 한 상황에서 강 원장은 정확한 계산으로 공을 풀어내 자네티의 감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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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감각, 지식, 멘탈의 삼위일체 스포츠 

오랜 시간 동안 당구를 즐길 수 있었던 당구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에게 물었다. "움직이지 않는 공을 다루지만 어렵고, 누구나 칠 수 있지만 잘 치기는 힘들며,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것. 그것이 당구의 매력이 아닐까요?"

당구는 공의 움직임을 정확히 통제하는 자가 승리하는 경기다. 당구공의 통제는 정확한 각도 계산을 통한 회전과 적절한 힘을 사용해서 타구 할 때 가능하다. 고점자가 되려면 이러한 각도, 회전, 힘 조절에 대한 세부 기술을 배워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강 원장은 이러한 특징을 빗대어 당구를 '이론 공부가 필요한 스포츠'라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구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제로 하면 공을 마음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게 도전의식을 자극하죠."

그는 처음 당구를 시작했을 때 의학 지식에 비해 훨씬 적은 당구 이론 정도는 금방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당구를 깊게 배울수록 다양한 스트로크와 정교한 두께 컨트롤처럼 직접 쳐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감각적인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당구는 다른 스포츠처럼 신체 조건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감각, 지식, 멘탈이 모두 겸비돼야 하는 어려운 스포츠라는 걸 깨닫게 됐다. "많은 의사가 당구를 즐기는 이유도 저처럼 이론으로는 부족한 부분들을 실전 감각으로 채우는 도전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의사가 의료봉사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해요."

당구연맹 회장직을 의사직과 함께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의사가 의료봉사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의사가 다양한 분야에서 하는 사회 활동도 봉사 활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의미 있는 답을 내놓았다.

강 원장은 일 년에 300일 당구장을 가고, 국가고시 전날에도 당구를 쳤을 정도로 당구에 빠졌을 때가 있었지만, 반대로 일에 치여서 당구장을 몇 년 동안 한번도 찾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취미로서 당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단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로 의사생활을 잘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 의사도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요소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 원장은 "좋아하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는다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다만 취미 생활과 본업이 적절하게 조화로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의사라는 본업과 취미로서 당구를 겸비한 그가 더욱 멋있게 느껴진다. 그는 "당구 좋아하면 놀러와요. 춘천에서 닭갈비 먹고 당구 한 번 칩시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춘천 가는 기차표가 사고 싶어지는 가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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