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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돈과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돈과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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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확보 없이 열정페이 '쥐어짜기', 벌주기식 법 제정 '갑질' 멈춰야
전문전문성 갖춘 좋은 의사 양성·안정된 의료시스템 위해 재정 투자하길

열정페이로 유지되는 의료 시스템

의료(Medical practice)를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직종은 의사와 간호사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의사와 간호사의 사명감과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열정페이로 유지되는 특이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대한민국 의료가 열정페이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의사와 간호사 모두 알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당신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다"라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의 인사치레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한계 상황이다. 입원환자들은 담당 의사와 간호사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든 시대를 맞고 있다. 의사·간호사 모두 몸도 영혼도 너무나 지쳐있다.

재정 확보 없는 쥐어짜기식의 법 제정과 벌주기식 법 제정은 자신들을 치료해 줄 사람들의 손가락을 꺾고 등에 채찍을 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열정페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갑질로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시스템이 불안해지면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과중한 업무에 갇힌 교수들

그동안 잘못된 의료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 병원들은 전공의를 진료 인력으로 활용해 왔다. 아니 부려 먹고 있었다. 최근 전공의들이 처우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어들자 교수의 할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교수 인원을 증원해야 하지만 이를 감당할 재원이 없자 대체인력으로 PA(Physician Assistant)를 이용하고 있다.

SCI 논문 쓰기에 노예가 된 교수들은 전공의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 보인다. 진료와 연구와 논문 쓰기, 수술 등에 지친 교수들은 손에 익고 일하기 수월한 PA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당장 내 코앞에 벌어진 불을 끄기가 쉽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경험하고 익혀야 할 상당 부분이 PA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고, 교수가 아닌 PA가 하는 일을 어깨너머 배워야 하는 기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전공의들조차 PA를 은근히 의지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자신이 배우고 익혀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의료현장을 떠나는 간호사들

환자들의 고통과 상태를 섬세하게 돌보고 있는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힘들고 위험한 근무환경에 지쳐 환자 곁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다. 더 이상 환자를 위한다는 신념만으로는 육체와 정신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간호사들은 몇 사람이 나눠 감당해야 할 일을 홀로 감당하고 있다.

환자당 간호인력을 정해 놓은 간호등급제는 간호사 인원을 기준으로 의료기관에 1∼7등급을 부여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하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간호관리료를 받기보다는 간호사 1명을 덜 채용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법과 규정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그에 맞는 재정을 제공해야 한다. 돈이 있어야 시스템이 안정된다. 몸과 마음이 안정된 간호인력이 확보돼야 환자들이 충분한 간호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려면

전공의가 더 이상 의료현장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력이 돼서는 안 된다. 숙달한 교수 밑에서 전공지식과 술기와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배우고 익히는 수련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돈이 있어야 좋은 교수를 확보하고, 실력과 신뢰감으로 충만한 좋은 의사를 양성할 수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야 환자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안정된 전공의 교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이 아플 때 주치의를 만나 아픈 부분을 이야기하고, 불안하고 궁금한 자신의 상태에 관해 설명을 듣고 평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돈이 있어야 교육시스템이 안정되고 좋은 의사가 만들어진다.
 
돈이 있어야 시스템이 안정된다

힘든 일과 위험한 일은 누구나 피하려 한다. 자신의 생명과 삶을 일부 포기하거나 영원히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극한직업은 많은 보수를 제시하며 사람을 모으게 된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하기 힘든 의료사고와 촌각을 다투는 의료현장을 지키는 극한 상황 속에 살아간다.

언제 면허가 정지되고 언론에 욕을 먹고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의료현장에서도 좋은 의료 인력을 확보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시스템이 안정된다. 안정된 의료 시스템이 있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대한민국 의료는 더 많은 교수와 간호사 확보에 달려있다. 그래야 윤리적인 의사와 간호사가 되고, 환자들의 생명과 권리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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