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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왜 의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은 높을까?
왜 의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은 높을까?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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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역시 서비스 영역 인식·높아진 환자 권리의식 등 영향
부정적 소문·평판, 진료실 폭언·폭력, 잘못된 정책·제도 한 몫
감정노동 평가 항목 개발·관리방안 마련 등 진지한 논의 절실 
■ 직역에 따른 감정노동 평균 수준
■ 직역에 따른 감정노동 평균 수준

"의사의 감정노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의사 직군의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전문적 영역인 의학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 등으로 인해 의사는 감정노동에서 비껴있다고 간주됐다.

그러나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다른 양상이 엿보였다. 감정노동은 일부 서비스산업 종사들이 겪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노동과 함께 '제3의 노동'으로 모든 업무 상황에서 겪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진단은 실제로 의사들의 인식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20년 시행한 전국의사조사 가운데 감정노동 설문을 바탕으로 진료 경험이 있는 의사 5563명을 분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펴낸 연구보고서 <감정노동의 시대, 의사도 감정노동을 하는가?>에 따르면 의사의 감정노동은 이미 일반 감정노동 종사자가 체감하는 수준을 크게 상회했다.

2015년 조사된 우리나라 전체 감정노동 종사자의 평균인 61.56점보다 높은 70.03점으로 나타난 것인데, 의사도 감정노동에 직면하고 있으며, 체감하는 수준도 상당히 높다는 의미다. 

게다가 의사의 감정노동 여파는 개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의사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존폐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고 보건의료체계 전반에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의사는 어떻게 감정노동에 직면하게 됐을까. 

먼저 사회·경제적인 요인과 높아진 환자 권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서비스 문화가 자리잡게 되고 환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의료 역시 서비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의료접근성이 뛰어난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관 간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의학적 지식이나 기술 못지않게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환자만족을 위한 친절, 인내심, 배려 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의료 종사자들에게 감정노동을 겪게 하고, 종사자들간 역할 부담으로 이어져 직무 스트레스, 직무철회, 직무만족도 저하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의사들 역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정노동을 겪는 상황이 잦게 됐다.

인터넷·정보통신기술 등의 발달도 한 몫 했다.

잘못된 의학정보가 인터넷 상에 범람하면서 일일히 바로잡기 버거운 상황이다. 간혹 진료실에서 의사의 전문적 의학적 소견과 견해에 대해 불신을 표명하는 환자들을 마주하게 되면 진료 외적인 직무스트레스가 작동하게 된다. 

이 뿐 아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잘못 설정되면, 의사 자신은 물론 몸담은 의료기관에 대한 부정적 소문과 평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별점으로 통칭되는 포털사이트 평가에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언행은 물론 세세한 진료과정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이같은 여건은 개원 의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이 높은 이유를 방증한다. 

의료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의사들을 감정노동으로 내몬다.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환자들에게 권할 때면 '잇속 챙기기' 오해를 풀어주는 데 시간을 들이고, 의료계를 향한 왜곡된 이슈가 언론에 오르내리면 따가운 시선과도 맞서야 한다.

환자들의 폭언이나 감정적 훼손에 더해 신체적·물리적 폭력까지 이어지는 상황도 낯설지 않다.

의사는 진료실에서 이같은 여러 가지 감정노동 상황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감정노동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떨까.

의사들은 감정노동에 직면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켜 긍정적 상황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의사들은 감정노동 수준 가운데 '내면행위' 점수가 75.42점으로 감정노동 전체 평균(70.03점)보다 높았다.

내면행위 수준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보다 조직의 표현규범과 자신의 감정표현을 내부에서부터 변화를 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의미다.

의사들은 병원 경영이라는 조직목표를 위해 환자들의 모욕적인 언사와 다양한 폭력, 폭행에도 불쾌한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예의를 지키며 환자와 상호작용에 나서고 있었다. 또 아픈 환자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고 존중하면서 의사로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실제로 표면행위(평균 65.71점) 중 의사로서 주어진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 위해 '감정을 가장'하는 것은 60.87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환자 중심의 감정 억제'도 68.94점으로 감정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의사들은 환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내면에 생기는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병원 분위기나 원활한 진료를 위해 억누르고 참으며 긍정적인 결과로 이끌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의사의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상대적으로 관심도 적다. 

연구보고서는 "중요한 것은 감정노동은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노동을 하고 있느냐에 모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의 감정노동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들이 미칠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보고서는 "이미 의사의 감정노동은 관리해야 하는 문제"라고 진단하고 "정기적·장기적인 감정노동 관리 교육이 필요하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적절한 감정통제, 환자-의사 사이의 소통 전략 등을 취할 수 있도록 병원 경영진의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정노동과 관련해 의학교육 과정 기초과목 편성, 직역별 대응 교육·관리 방안 개발, 맞춤형 감정노동 관리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의사의 감정노동을 측정할 수 있는 문항을 개발하고, 그 도구로 촘촘하고 다각적으로 감정노동을 측정하며, 감정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실질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제 의사의 감정노동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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