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윤리 그리고 시간
법과 윤리 그리고 시간
  • 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전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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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빌미로 의사협회 집행부 수 년간 압박하는 우리 현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면허관리원 면허관리 사례…"모범 답안"

현 정권은 적폐 청산을 이유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최고 지도자의 약속대로 우리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였던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법조계 스스로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고소 고발이 빈번하여 졌는데 일반 국민은 과연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부에 대한 고소 고발은 결국 전문직으로서 법조계 스스로 자신의 신뢰를 낮추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법조인이 보여줘야 할 전문직업성을 자신들의 전공 분야인 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시도인데 법으로 해결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과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대법원장 등 주요 인사 모두가 외부나 내부의 고발 대상이 됐으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심경은 착잡하다. 법조계 내부의 사정이나 사법제도에 정통하지 못하는 일반인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국민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사안에 따라 법률적 판단에 대한 개개인 나름대로 부정적인 소신과 의구심을 키워주고 있어 우리 사회를 저신뢰 사회(low trust society)로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OECD 34개 국가 중 33위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권력 지향적이고 정치적 행보하는 구태의연한 검찰이나 법원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정치권의 적폐 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만들어 내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잘 살펴보면 법 자체의 한계가 잘 드러나 보인다. 즉 법은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모순이다.

현재의 사법제도로는 정치적이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법원의 지연술에 의한 망각·좌절·포기를 유도하는 합법적 방안이 아직 건재한다. 사회가 발전하며 보여주는 복잡성, 복합성을 3차원의 세계를 넘어 시간이 포함된 4차원의 세계로 표현한다면 법의 판단이나 적용에서 시간개념을 제거해 결국 의도적이고 시대착오적 3차원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다.

법을 실행하는 사법제도 내에서 벌어지는 사태도 법으로 해결 못 하는 역설적인 법의 한계를 보며 고부담의 전문성이 필요한 법적 판단에 대한 시간개념 개입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사회도 실제로 법 이외에 윤리적 기전이 작동하는 각종 자체적 윤리위원회나 이와 유사한 기구가 존재한다. 이 제도도 위원회의 소집·구성·절차 등 자체적인 이유나 운영 미숙의 무능력 그리고 정치적 고려 등으로 중요사안이 묵살 되거나 지연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한술 더해 윤리기구의 최종 판단도 수용하지 않고 법정에서 법적 판단을 시도한다. 아마도 윤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안도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도 보인다. 사안에 따라 법적으로 허용되나 윤리적으로는 수용 불가한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현재의 법이 보여주는 한계를 보여주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법과 윤리적 판단이 포함되는 복합적인 판단의 기전이 필요하다.

파업을 이유로 의사협회의 집행부를 구속하거나 협회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압박하는 전형적인 독재정치에 대한 법적 해답에 수년간 시간이 필요했다. 특정 사건의 검토나 판단을 기술적으로 지연시킨 결과임은 틀림없다. 위안부 사건에 관한 내용도 전임 정권에서 수년간 지연시킨 판결이었으나 현 정권이 다시 뒤집었다.

속칭 의료사고도 대법원까지 가는데 보통 수년이 소요된다. 1심의 판단이 2심에서 수년 후 다시 번복되어 법정구속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생기기도 했다. 의료로 인한 사건에서 의사의 법정구속이라는 극한 처방을 배상의 압박 수단으로 남용하고 있다.

의료에 대한 국민의 경험도 현재의 사법제도나 법조계에 대한 불만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로 인한 불만에 대한 만족할 만하고 성숙한 처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법이나 의료문화가 보여주는 답답함과 불편함은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다. 환자, 의사 그리고 관련된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한숨만 선사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의료분쟁에서도 법조인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의료행위의 적정성 판단은 환자도 의사도 모두 불만족스럽다. 환자나 의사 양쪽 모두 법원에서 자신들이 존중받고 제대로 이해할 만큼 의사소통이 됐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꿈같은 이야기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사나 의료에 대한 불만은 의사나 의료기관에 대하여 공식적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우선인데 우리나라는 의료 불만에 대해 방송국·소비자보호원·검찰·경찰·시민단체 등 다양한 기구나 매체를 통해 자신의 답답함과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법원으로 직행하는 사례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전문성과 직무윤리를 바탕으로 설립해 자율적 면허관리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나라는 모든 의료 관련 불만은 면허관리원으로 일원화되고 있다. 의료의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공중파나 언론을 타는 예도 매우 제한적이다. 면허관리원은 의사가 중심이 된 단체이기는 하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환자와 사회의 보호가 우선이고 불만 처리에 대한 절차도 지속해서 개선하고 있다.

가장 모범적인 면허관리의 사례로 회자 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면허관리원은 2018년 이후 대폭적인 행정적 절차의 개선을 도모해 2019년 환자의 불만 접수가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90%에서 48시간 이내에 면허관리원의 일차적 응답을 들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18년 이전 일차 응답을 3주 이내로 했으나 이제 48시간으로 단축된 것이다. 이런 조기 응답과 소명으로만 의사에 대한 불만 제기 건의 46%는 바로 해소됐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불만 제기 건수는 매년 증가하나 실제로 조사가 필요한 불만 건수도 오히려 감소하는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 16%만이 3주 기간 내의 응답으로 해소된 것과는 엄청난 변화를 보여준 것이었다. 면허관리원의 신속한 개입과 응대에 대해 환자나 가족은 높은 신뢰와 만족감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와 주장이 존중되고 경청 됐다는 감사의 표현도 있었다. 현대적 면허관리는 이제 법과 윤리의 결합과 더불어 시간개념이 추가된 4차원의 세계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전문직의 역량은 의사의 형사처벌이 거의 없는 성숙한 사회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문직이 보여주는 고신뢰사회(high trust society)의 역할은 바로 법 제도에 우선하는 전문직의 자율 역량이다.

의료의 부정적 결과로 의사에게 과도한 형사처벌을 하여 전과자 의사를 양산하는 우리의 공안 의료를 성숙한 민주적 의료로 전환 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자산(social trust capital) 구축을 위한 전문직 단체의 노력과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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