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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우리가 몰랐던 사실?...의사도 '감정노동'
논설위원 칼럼 우리가 몰랐던 사실?...의사도 '감정노동'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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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의사도 감정노동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환자와의 라포 형성이 중요한 직업특성상 의사는 예전부터 감정노동를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다. ⓒ의협신문

백화점이나 마트, 전화 상담원, 심지어 주차장에서도 친절한 서비스와 미소를 만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나의 또는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이기에 자신의 본래 감정을 숨기고 늘 미소로 대하며, 상냥한 태도를 유지해야 사람들. 이들을 우리 사회는 '감정노동자'라 부른다.

사실 심리학에도 규명했듯이 상대가 웃으면 웃을수록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정서이니 서비스나 상품을 판매할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미소' 는 큰 자산인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래 감정을 억누르고, 오로지 고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맞춰야 하는 감정의 상품화 단계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감정노종자들의 미소 아래 가려져 있는 아픔에 주목하게 됐다.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는 갑을 관계에서 주로 '을'의 위치에 놓인 근로자들이 해당한다. 하지만 전문직 군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의료계에서는 환자(고객)와의 접점이 가장 많은 간호사가 대표적 보기로, 환자들의 폭언과 과도한 업무 요구까지 감내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와 위상이 높아 최고의 전문직으로 선망되는 의사는 어떨까? 아직 일반적 개념으로 의사들을 감정노동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낯설겠지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도 감정노동을 하며, 감정노동의 강도도 높았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5563명의 진료경험이 있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수준을 측정했는데, 의사의 감정노동수준은 평균 70.03점(6점 기준 4.2점)이나 됐다.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의사사회 내에서도 여성, 전임의 등 상대적 약자의 감정노동 수준이 높았다.

요약하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의사들도 다른 서비스 산업 근로자처럼 자신의 본래 감정을 숨기고, 상대방(환자)이 원하는 표정과 몸짓과 말투를 유지하는 등 내면에 생기는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도 감정노동자'라는 이번 연구결과에 각자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별별 진상 고객을 미소로 응대해야 하는 백화점 판매원이나, 생면부지의 고객에게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근무시간 내 무한 반복해야 하는 통신사 안내원 등은 "무슨 소리냐"는 뜨악한 반응을 내 놓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는 인터넷의 출현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약화하면서 의사에 대한 사회적 권위가 과거보다 낮아진 점, 여기에 병원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 창출을 위해 고객 만족도 향상을 경영목표로 내세우는 등 과거보다 경쟁이 심화되는 의료환경도 의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타성적 사고에서 조금 벗어나 보자.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수입을 올리는 사람, 따라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직'으로 사회적 강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보면서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 실상이 외면되거나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의사는 직업의 속성상 본래부터 감정노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아픈 환자를 돌보고 낫게 하려면 마음과 마음을 유대하는 라포 형성으로 환자에게 신뢰를 얻고 친밀감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때 감정의 적절한 통제가 필수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더 잘 치료하고 진료하기 위한 전문적 자율성의 기전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환자와 병원 경영진이 원하는 대로 필요한 감정만을 '관리'하면서 신체적·정신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입게 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도 의사들의 감정노동에 관한 연구가 사실상 국내에서 이번 연구가 처음이었고, 국외 연구도 몇몇 안된다는 사실은 되짚어볼 만하다.

의협 정책연구소는 이번 연구의 목적을 "한국의사의 감정노동수준을 측정하고, 개인적·집단특성에 따라 감정노동의 수준의 차이와 상관관계를 분석해 향후 의사들의 감정노동 관리방안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이 이제까지 집중해온 정책적·제도적 연구 못지 않게 의사들의 노동 및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귀하고도 뜻깊은 출발의 첫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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