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서' 서명 전 꼼꼼히 검토해야...내용 다르면 적극 이의제기
개정 고시 부지런히 습득하고, 의협 '현지조사 대응매뉴얼' 숙지해야
통상의 예방접종에 수반되는 진찰행위에 관하여는 별도로 진찰료를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상황이 다 교과서 같지는 않아서, 상당수 접종대상자의 어머니는 대상자의 감기 증상 등을 토로하며 사실상 진료받기를 원한다.
경기도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인 A 원장은 위와 같은 사례에서 접종하러 온 환아들의 콧물을 빼주거나 상담을 해주었다. 문제는 해당 환아들에 대해서는 따로 처방전을 발행하거나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고 진찰료를 청구한 점이었다.
A 원장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 받는 순간이었다.
불시방문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과, 이듬해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를 거쳐 장장 3년여만에 나온 결과는 60일에 이르는 업무정지 및 환수, 그리고 건강보험 거짓청구요양기관 명단공표 대상자 확정 통보 처분까지.
A 원장은 대법원까지 이를 다퉜지만, 명단공표 대상자 확정 통보 처분만 간신히 취소받는 데 그쳤다. 명단공표는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하여' 요양급여비용을 거짓으로 청구한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하므로 A 원장의 경우 처음부터 내려서는 안 되는 행정처분이었다.
다소 전형적이어서 서글픈 A 원장 사례에서 필자가 법조인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요양기관 현지조사에서 흔히 작성하는 사실확인서의 중요성이다.
A 원장은 현지조사 및 현지확인 당시, '예방접종 당일 진찰료를 요양급여비용으로 부당하게 청구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여러 차례에 걸쳐 충실히 작성했다. 여기서 작성이라 함은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기술하는 방식이 아닌, 건보공단·보건복지부 직원이 내용을 적고 대상자는 서명을 해주는 형태를 포함한다.
처분 대상자가 혐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는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진료기록 등 관련 자료와 함께 행정처분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처분 근거가 되고, 사법기관 입장에서는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작성되었다거나 그 내용의 미비 등으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증명자료로 삼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대법원 98두 2928, 1998년 5월 22일 선고)'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위법성 판단의 근거가 된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자기 손으로 서명한 사실확인서의 법률적 위력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다.
일단 서명해서 완성한 사실확인서는 번복하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B 원장은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른 입원료 차등제와 관련해 이뤄진 현지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1차 사실확인서의 내용을 부인하며 조사관의 면전에서 찢고,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의 2차 사실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1차 확인서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며 B 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당황하는 바람에 조사단이 요구하는 대로 사실확인서에 서명하기는 했으나,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확실한 증거 제시로 사후 반박이 가능했던 경우(대법원 1998년 5월 22일 선고, 2020구합51648), 사실확인서의 내용이 위법 사실을 명료하게 기술하지 못해 증거가치가 떨어져서 사실확인서의 효력이 부정된 경우(서울고등법원 2020년 11월 27일 선고, 2019누64947)도 있으나 극히 예외적이다.
소송을 통해 위와 같은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과정에서 법률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또 다른 쟁점은 현지조사가 사전통지 없이 실시되었다거나, 조사관의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요양기관에 충분한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른바 절차적 하자에 대한 주장이다.
이는 행정조사기본법 제17조 제1항 등의 관련 법률에 기반해서 정당하게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사전통지를 하였다면 원고는 위 현지조사에 대비하여 과거의 진료기록이나 요양급여청구서 등을 폐기 또는 조작하는 등 증거인멸에 나섰을 수 있고 그 경우 행정조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서울고등법원 2019년 3월 21일 선고, 2018구합51430)"는 등의 이유로 현실적으로는 배척되기 쉽다.
따라서 어느 날 급습한 현지조사에서 사실확인서 서명을 요구받는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확인서의 세부적인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는 일이다.
내용이 (사실적·법률적으로)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 섣불리 전부 인정하는 서명을 하는 대신 '해당 위반사항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며, 추후 소명을 통해 예정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겠다'는 문구를 기재해 놓기를 권한다. 도저히 수긍하기 힘든 '위반사항'을 발견하면 적극적인 이의제기를 통해 사실확인서에서 해당 기술 부분을 일단 삭제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단 현지조사가 시작되면 "몰랐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으므로, 평소 시시각각 개정되는 고시 기준을 부지런히 습득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현지조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한의사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한 '현지조사 대응매뉴얼'도 미리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현지조사라는 강제성을 띤 절차가 주는 특유의 심리적 위축과 스트레스로 무작정 서명한 뒤 대응은 나중에 고민하자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위반사항이 다소 난해하게 기술돼 있는 것을 보고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 청구했나 보다'라는 만연함으로 서명하는 태도도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