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코로나19가 소환한 윤리적 과제

논설위원 칼럼 코로나19가 소환한 윤리적 과제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1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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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코로나19 위중증환자가 급속히 늘면서 정부의 행정명령에도 중환자병상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지난해에 이어 중환자 입퇴실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할 것을 주문했다. @의협신문

코로나19 발생 초기 폭발적으로 환자가 증가하면서 의료자원의 절대적 부족사태를 겪은 많은 국가에서 "어떤 환자를 먼저 치료하고, 어떤 환자는 그냥 둘 것인가"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의사들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였다.
 
상대적으로 초기 대응을 잘해 K-방역이란 글로벌한 명성(?)까지 얻은 우리나라의 경우 몇 차례의 위기에도 코로나19 신규발생을 억제하면서 크게 고민하지 않은 문제였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의료자원이나 의료인력과 관련해 수요와 공급 간 큰 격차가 발생해 어려움이 많았지만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방역정책에 협조하고, 번아웃이란 말로도 표현이 힘든 의료진의 희생과 봉사가 있었기에 이같은 윤리적 과제는 크게 부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위중증환자가 폭증하면서 중환자실 병상 상황이 심상치 않자 중환자 분류(triage)와 관련한 이같은 이슈가 소환되는 분위기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 확진자가 늘어날 거라는 건 정부나 전문가 모두 공통된 예상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예상를 넘어 위중증환자가 크게 늘면서 몇 차례의 행정명령을 통해 병상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미 지난 11월 28일부터 정부가 서킷 브레이크 발동 기준 중 하나로 제시한 중환자실 '가동률 75%'이상을 웃돌고 있다. 더욱이 지난주 7000명을 넘는 확진자 수를 감안하면 위중증환자 증가세는 당분간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위중증환자도 문제지만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병상을 내준 비 코로나19 환자의 진료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대한중환자의학회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살릴지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며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을 정하자는 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선순위 설정은 "보다 많은 다수의 중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해당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윤리적 논쟁과 갈등을 완화시킬수 있을 것"이란 기대인데,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의료계 만이 아니라 정부, 학계, 시민사회와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제한을 검토해 진료현장에서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 

코로나19 발생 초기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 국가에서 조차도 의료자원의 수요와 공급에 현저한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어떤 환자를 살리고 어떤 환자는 남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위드 코로나 단계로 넘어오면서 중환자실 병상의 가용 자원이 한계치에 이르자 의료계가 앞장서 윤리적인 '의학적 환자 분류 의사결정'이란 화두를 던진 것이다.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의 요지는 제한된 자원 속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지만 의료전문가의 제도적 열망이나 직관에 맡길수는 없는 문제이다. 윤리의 문제 뿐 아니라 법적 책임, 도덕과 철학의 문제가 혼재돼 있기에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논의에 참여해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중환자의학회가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 제언은 중환자의학회가 이미 지난해 내놓은 것이지만 정부나 우리 사회가 K 방역이란 성과에 도취해 주목하지 않았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중환자의학계 내부의 논의로만 그치고, 확장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중환자의학회가 최근 이 문제를 다시 환기시키고 때마침 대한의사협회가 곧바로 토론회를 열어 공론화의 마중물 역할에 나섰다. 

이 제언은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우리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의제일 수도 있으며, 모든 개인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권리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뿐 아니라 앞으로도 재난의료상황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될 것이고, 의료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이같은 윤리적 딜레마를 미리 예상하고 의료진의 의사결정 부담이나 고통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의학적이고도 윤리적인 환자 중증도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번 제언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이고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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