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님을 필두로 제41대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저는 한 명의 평범한 영상의학과 전문의에서 의협 홍보이사 겸 부대변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각종 대내·대외 원고 작성과 YouTube 및 SNS 채널 관리, 그리고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안상준 공보이사와 함께 홍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고 수행해왔던 의술의 영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생소하고 어려운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홍보이사 일을 준비하면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서점에 가서 관련 서적을 펼쳐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책 홍보에 관한 책은 별로 없을뿐더러 시중에 나온 것들도 이론에 한정되다 보니 실무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홍보는 실용적인 영역이기에, 아무리 책을 읽고 공부해도 실전에 부딪히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한순간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발상이 더 유용한 때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홍보 업무는 몸으로 부딪치고 그 반응과 피드백을 겪어 보는 것만이 답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는 의협 홍보이사의 직을 수행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의협 임원의 고충을 몸소 체험하기도 했지만, 척박한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회원의 현실과 이에 대한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먼저 저는 슬펐습니다. 일차의료의 현장에서, 코로나 방역의 전선에서 자신을 잊고 분투하며 수고하는 회원님들의 고충의 소리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랑스러운 의사들입니다. 질병으로부터 환자를 해방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몰린 사람을 소생시킨다는 숭고한 의업의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의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의 눈에 자긍심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회원들의 눈에는, '왜 나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했지' 하는 회한과 부조리한 규제와 만성적인 저수가에 시달리며 고통받은 결과로 맺혀진 눈물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같이 슬퍼졌습니다.
저는 실망했습니다. 지난여름에 있었던 피와 땀이 서린 투쟁에서, 우리 회원들은 각자의 직역에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했고, 국민 보건에 전혀 위해 없이 파업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전공의들은 면허 정지의 위협에도 용감히 나가 싸웠고, 개원의들은 끝없는 괴롭힘과 악의적인 민원에도 파업에 선선히 동참해 주었습니다. 교수님들은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시국 선언을 했고, 나이 든 몸을 이끌고 전공의들을 대신해 병동과 응급실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게 의정 합의에 이르렀지만, 이는 우리 모든 회원을 대변하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의료 4대악(공공의대, 의대정원 확대, 첩약급여, 원격의료)을 완전히 철폐하지 못한 채 새로운 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패악의 위험성은 아직도 수면 아래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분노했습니다. 피가 튀고 생사를 다투는 의료의 현장에서, 백척간두의 지경에 이른 코로나 대유행의 상황에서, 우리 회원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질병에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적절한 보상은커녕, 정부는 지속적인 규제와 악법을 통해 우리 회원들의 삶을 나날이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수고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받고,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오히려 어려움은 날로 가중되고 의사를 향한 족쇄는 갈수록 더욱 늘어만 가는 현실에, 저는 분노했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제가 쓰는 원고와 기고의 끝이 날카로워야 함을 스스로 느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늦은 밤, 제가 느낀 점들이 담긴 이 칼럼을 작성하며 저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바깥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가로등 빛 한줄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필수 과가 몰락하고, 치명적인 저수가에 회원들이 신음하고 있는 우리 의료계의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묵묵히 참고 기다리면 새벽이 올 것이라고, 우리의 희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의료는 자연사와 다르기에, 단순히 기다린다고 새벽이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새벽을 부르기 위한 디딤돌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한 명의 평범한 의사로 홍보와 회무에 정통하지는 않으므로, 부족한 점이 많고 회원들께 실망과 아쉬움을 안겨드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의료와 13만 회원들의 아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이번 41대 집행부는 대한민국 의료와 국민 건강권의 수호를 위해, 잘못된 제도와 분위기를 혁신해 나가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의사다운 자랑스러운 삶, 의사다운 주도적인 진료권을 찾아오는 데에 저도 제 작은 힘을 보탤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회원님들의 소중한 믿음을 저희 41대 집행부에 보태주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각 개인은 부족하고 때론 나약하지만, 회원님들의 집결된 힘은 약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저는 소중한 우리 모든 회원이 존중받는 의사다운 삶, 어려움에 빠진 필수 과와 기피 과도 인간다운 대우를, 또한 국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의료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열정과 헌신의 자세로 회무에 임할 것입니다. 많은 응원과 더불어, 때로는 조언과 매서운 질책 또한 아끼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