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의학처럼 정책도 근거(evidence)에 기반해야
논설위원 칼럼 의학처럼 정책도 근거(evidence)에 기반해야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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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14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기자회견에서 김상일 정책이사가 3단계 의한협진 시범사업에 참여한 연구자가 연구 참여를 후회하고, 평가보고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입장문을 대독했다. 3단계 사업까지 80여 억원을 투입했지만 정책을 지속할 근거를 찾지 못했으나, 보건복지부는 다시 근거에 찾겠다며, 4단계 시범사업을 결정했다. ⓒ의협신문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시범사업을 하는 이유는 본사업의 전면적인 집행에 앞서 정책의 효과성을 검증함으로써 공공자원의 낭비를 막고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 정책부문에서 새로운 정책안이 나올 경우 실질적인 효과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범사업을 통해 수집된 근거에 기반해 본 사업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평가를 통해 정책의 효과성이 입증된다면 그 사업은 본사업으로 전환될 것이고, 근거가 불충분하다면 그 사업은 종결되는 것이 마땅한 절차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원칙에 따르지 않는 사업이 있다. 2016년 시작된 의·한 협진시범사업 이야기다. 의과-한의간 협의진료제도(병원급 기관 의과·한의과 간 교차 고용 및 진료과목 설치가능)는 2010년부터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협의진료의 활성화가 미흡하다며, 협진 시 후행행위를 급여화해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협의진료료 도입을 통해 의료기관이 협진 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을수 있는 의·한협진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의·한 협진시범사업은 1·2·3단계의 시범사업을 모두 마쳤다.

애초 정부의 시간표에 의하면 3단계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본사업 추진 여부 및 의·한협진 모형등을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11월 25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시범사업 연장'이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의·한 협진 시범사업은 사업 초기부터 말이 많았다. 정부의 인위적인 한방 육성정책, 후행 행위의 급여화로 의료과소비를 부추길 것이란 비판이 나왔으며, 1단계 사업 평가를 놓고는 협진만족도, 협진 효과가 부풀려져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됐으며, 3단계 시범사업이 완료된 지금도 이런 의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협진의 효과에 대한 신뢰성 높은 과학적 근거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고, 최근 열린 건정심에서는 의료계 뿐 아니라 가입자단체와 환자단체까지 협진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했지만 "추가 시범사업을 통해 임상근거 확대 및 모델 보완이 필요하다"며 4단계 시범사업이 결정됐다.

1단계 13개 질환, 2단계 45개 질환, 3단계 70개 질환으로 그 대상을  확대해 시범사업을 시행했지만 사업을 지속하거나 본사업 전환의 근거를 마련하는데 실패했음에도 무슨 근거를 더 찾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더욱이 3단계 시범사업과 관련, 지난 14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시범사업 결과의 왜곡이나 부풀리기 수준은 이전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1·2·3 단계 시범사업 기간에 '의과에서 한방'으로 협진이 의뢰된 비율은 40.4%→ 10.1%→1.7%로 감소한 반면 '한방에서 의과'로 협진이 의뢰된 비율은 59.6%→89.9%→98.3%로 늘었다.

3단계 시범사업 기간 동안 의과→한방 1.7% VS 한방→의과 98.3%는 후행행위 급여화와 협진수가라는 인센티브를 적용하면서 '한방병원의 건강보험 급여비 지급을 위한 시범사업'이란 의료계의 비판을 통계로서 증명했다. 치료기간 단축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다. 의협이 지적한 대로 뇌경색환자의 경우 비협진일 때 63일이 걸렸으나 협진을 받으면 단 하루만에 치료가 완료되는 기이한 데이터도 발견됐다.

오죽하면 의·한 협진 3단계 시범사업 평가연구(대구대 산학협력단)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연구 참여를 결정한 제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최종 연구결과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보고서가 제출되기 전에 철회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불찰"이라며 "연구보고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한편 공동 연구진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연구자가 연구보고서에 이름에 제외해달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평가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면서 의협이 시범사업 폐기와 연장 철회, 관계자 문책을 촉구하고 있지만 연구자 책임자,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 등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2017년 이후 시범사업에 들어간 재정은 1단계 5억 2000만원, 2단계 21억 6700만원, 3단계 53억원으로 지금까지 투입된 재원만도 총 80억여 원에 이른다. 4단계 시범사업엔 35억여 원이 배정됐다니 총 사업비는 115억여 원이 투입된다.

다른 정책에서 경험하듯 투입재정이 커지고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관련 정책의 수혜자나 담당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로 기울어지고 쉽고, 종결을 요구하는 평가와 피드백에 반발해 되돌리기 힘들어질 수 있어 의·한 협진시범사업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을까 걱정이다.

다시한번 시범사업의 목적을 복기한다면 특정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근거를 찾고 본 사업 확대를 위한 논리적 근거를 찾기 위함이다. 의학이 근거에 기반을 두듯(evidence-based medicine) 정책 역시 근거에 기반한 정책 (evidence-based policy) 결정이 돼야 한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의·한 협진 시범사업은 정책의 정당성이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이미 근거가 부족함이 입증됐는데 또다시 근거를 찾겠다며 기간을 연장해서 건강보험재정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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