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년특집 고통뿐인 '의료분쟁'…화해 위한 제도 개선 필요
2022년 신년특집 고통뿐인 '의료분쟁'…화해 위한 제도 개선 필요
  •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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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 회피하려 방어·과잉 진료 증가 …의료사고 위험 큰 진료과 기피 '부작용'
책임보험 통해 충분한 '보상' 소송 예방…세계의사회 "비형사적 구제 방안 마련" 촉구

▶ 의협신문·의료정책연구소 공동기획 ◀

광복과 함께 급조한 의료제도의 틀 안에서 1977년 저부담·저급여 구조로 설계한 의료보험제도는 곳곳에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40년이 넘은 의료제도에 대해 의료 공급자는 물론 이용자인 국민과 관리자인 정부와 보험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의 땜질식 처방은 코로나19를 비롯한 한국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중병에 걸린 한국의료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반대와 비판만 하기에는 때가 급하다.

[의협신문]은 [의료정책연구소]와 함께 2022년 신년특집 '3·9 대선을 겨냥한다'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실마리를 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대한민국 의료, 초고령사회 준비 시급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2. 저출산·고령화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3. 국민 생명 지키기 위한 안전망 구축 (문성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4. 공익(公益) 위한 의료, 민간 의료와 함께 (임선미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5. 고통뿐인 '의료분쟁'…화해 위한 제도 개선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6. 백약이 무효 '저출산·고령화 대책' 확 바뀌어야 (김계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부장)
7. 일자리 보고(寶庫) 보건의료서비스…전체 산업 2.36배 (오수현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8. 코로나19 숙제, 전문성 부재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김진숙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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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의료현장에서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악결과가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한 환자와 의료인 간의 의료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불가피하게 발생한 의료분쟁을 신속·공정,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악의적인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법정 구속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의료분쟁 해결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 민·형사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해가 갈수록 의료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여서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형사소송 건수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28만 7,352건의 의료분쟁 상담이 이루어졌다. 의료분쟁 조정 신청된 1만 2,293건 중 조정 절차가 개시된 건수는 7,228건으로 누적 조정개시율은 59.0%에 불과하였다. 또한 2020년도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122.7일로 2019년(107.3일) 대비 15.4일 연장되는 등 처리 기간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의협신문

의료분쟁이 소송으로 확대되고, 장기화할 경우 환자와 의료인은 모두 고통의 늪에 빠진다. 환자-의사 간 불신이 조장되며, 소송 등 직간접적 비용의 증가로 인해 양 당사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의사의 관점에서는 의료분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진료 또는 과잉진료가 증가하고, 응급의료 등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큰 진료과를 기피하는 등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한 국가의 의료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만한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가는 반드시 합리적인 의료분쟁 해결 제도를 마련하고, 지속해서 개선해 나아가야 한다. 특히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된 지 10여 년이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연 의료분쟁으로 인한 환자와 의료인의 고통이 감소되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해외의 경우에는 의료분쟁에 대한 접근 방법이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르다. 특정 의료인에 대해 환자가 불만을 제기할 경우, 의료전문가가 이를 조사한다. 경미한 사건은 조언, 경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및 약속, 추가 교육, 벌금 등 다양한 조치를 활용하며, 중대한 사건은 의료징계재판소에서 정식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면허가 정지·취소되는 경우는 대부분 의료인에게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국한된다. 또한 책임보험을 통해 환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기 때문에 의료분쟁이 민·형사 소송으로 확대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세계의사회(WMA)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다수의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비형사적 구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의료사고 책임보험 도입 충분한 보상·의료인 비용 부담 최소화…국가 재정 지원 필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무과실 보상' 응급·외과 수술 등 사고 위험 큰 '필수의료' 적용
정상적 의료행위 형법상 과실치사상죄 적용 배제…의료분쟁조정법 형사처벌 특례 확대
(가칭)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사회적 합의 통해 고의·중대 과실 명확한 기준 마련

의료분쟁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이 원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환자는 피해에 대한 보상, 회복 등을 요구하며, 의료인은 민·형사소송 등으로부터 안전한 진료환경 보장을 요구한다. 국가적으로는 의료분쟁을 예방하고, 이미 발생한 의료분쟁을 신속히 처리하여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의료사고 책임보험을 통해 피해가 발생한 환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담보되어야 한다. 동시에 책임보험은 의료인의 비용부담을 최소화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즉 모든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임보험제도를 도입하되, 안정적인 책임보험의 운영을 담보하기 위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인 단체에 의료배상공제조합 설립·운영을 권유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 가입, 보상액 등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의무화하고, 이를 통해 의료인 가입 활성화, 보상범위 및 보상액 확대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책임보험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서만 특별히 무과실 보상을 적용하고 있는데, 그 범위를 분만 과정 외에 응급상황, 외과적 수술 등 의료사고의 위험이 큰 영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필수의료 영역은 국민에게 꼭 필요한 영역으로서 의료분쟁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 따라서 필수의료 영역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둘째, 의료인에게는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 절차, 나아가 민·형사 소송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진료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조정성립 및 피해자의 불처벌 의사를 전제로 하여 의료인에게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환자-의사 간 불합리한 합의를 종용할 우려가 있으며, 원만한 의료분쟁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오히려 책임보험 등을 통해 환자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책과 피해 회복 방안을 마련하고, 동시에 그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료분쟁조정법상 형사처벌 특례 조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료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인하여 환자가 상해에 이른 경우, 해당 치료과정에 참여한 보건의료인에는 형법상 과실치상죄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다만 상해가 보건의료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기인한 경우는 제외한다"라는 내용의 개정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같이 (가칭)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의료인에 대하여는 형법상 과실치상죄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하여 같은 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원칙을 규정하고, 예외적으로 반드시 형사처벌이 필요한 행위들을 나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주 상태에서의 의료행위, 대리 수술 등은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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