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경쟁력 약화·의료체계 기반 무너뜨려...불필요한 내원·치료 지연 유발
병상 수 기준 대신 진료 역량 갖춘 의료기관 설치 허가...실효적 정책대안 필요
특수의료장비 증가 억제·의료자원 효율적 배분 가능...의료 전문가 단체 논의해야
의사 : "환자분은 회전근개 파열이 의심되네요. MRI 검사를 해야 확실하게 진단 후 치료가 가능한데 수술은 우리 병원에서 가능하시지만, MRI는 길 건너 큰 병원에서 찍고 오셔야 합니다."
환자 : "예전에는 척추 관절 병원에도 MRI가 있어서 검사도 하고 수술받을 수 있었잖아요. 선생님께서 수술하실 수 있는데 왜 또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거죠?"
의사 :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병상이 150병상 이상 되지 않는 곳은 수술도 하고 환자를 많이 봐도 MRI를 설치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MRI는 큰 병원에서 찍고 오셔야 해요."
환자 : "그럼 그냥 큰 병원 가서 MRI 찍고 수술받을래요."
의사 : "……".
위 이야기는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하고 있는 '특수의료장비 병상·인력 설치 인정기준 개선 방안(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일선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안타깝고도 아쉬운 현실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6개 의약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보건의료발전협의체(이하 보발협) 제25차 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을 논의했다.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을 살펴보면 CT는 기존 200병상(군 지역 100병상, 또는 인접 의료기관 공동활용 병상)에서 100병상(군 지역 50병상)으로, MRI는 기존 200병상에서 150병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표 참조).
이번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은 보유 병상 기준을 완화했다고는 하나, 자체 보유 병상이 부족한 의료기관을 위한 공동활용 병상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의원을 포함한 150병상 미만의 의료기관(이하 소규모 의료기관)이 MRI·CT 보유와 개원을 원칙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가칭)특수의료장비 관리위원회 심의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어 일차의료기관이나 건강검진센터 등에서는 사실상 특수의료장비 설치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기존 의료기관에서 사용 중인 특수의료장비에 대해서도 위원회 심의를 거치거나 개정 시점보다 자체병상 수가 줄지 않으면 지속 사용 또는 교체만을 허용하고 있어 증설을 배제하고 있다. 개설자나 개설 장소를 변경하면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이 150병상 이상의 병원만 MRI·CT를 보유·운영할 수 있게 하여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제적인 기회를 박탈하고, 전문 진료 영역을 축소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심화시킨다고 밝혔다.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은 특수의료장비 전문가인 영상의학과 전문의라도 병상이 없으면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하거나, 영상의학과 의원을 개원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특수의료장비 관리 정책 방향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정책과 연계시켜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즉, 특수의료장비 정책은 수가 조절을 통해 공급을 통제하거나 수량 자체를 조절하는 방법을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공동활용병상 제도와 품질관리 제도가 실효적인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개선·확대하고, 품질에 따른 수가 차등화 정책 등 새로운 특수의료장비 관리 정책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괄적인 설치 기준 완화가 아닌 단지 공동활용병상 제도를 폐지하고, 자체 보유 병상만 설치기준으로 인정하는 병원 위주의 정책 개편은 국내 의료기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회를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1차 의료기관이나 지역 중소병원에서 충분히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CT·MRI 촬영을 위해 무조건 상급병원에 전원하도록 규제하면 의료의 쏠림 현상을 부추길 것이다.
환자는 편의성 때문에 1차 의료기관이나 지역 중소병원에서 CT·MRI 촬영을 포기하고 상급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은 1차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의료체계의 기반 또한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문제점 있는 공동병상 활용 제도를 개선하면서 병원 위주의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대한영상의학과의사회는 병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에도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회를 보장하면서 무분별한 CT·MRI의 증가를 막기 위해 두 가지 대안을 제안했다.
먼저, 상근 영상의학과 전문의 2∼3명의 기준을 충족하면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허용하는 방안이다.
상근 영상의학과 전문의 2∼3명 조건 충족 시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허용하면 병상 수만을 설치 기준으로 했을 때의 문제점을 다소 해소하면서 특수의료장비 전문가인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장비 설치 및 운용 기회를 부여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만약 영상의학과 전문의 1인만으로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예외 안을 가정한다면 특정 과에 대한 특례 논란이 불거질 수 있을뿐더러, 영상의학과 전문의 수 부족으로 판독 시간이 지연될 것이다. 지방의 영상의학과 의사 구인난이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단독 개원 허용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개원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늘리는 것일 수 있다.
둘째, 상근 진료의사 4명과 상근 영상의학과 전문의 1명 기준 충족 시 병상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장비 설치를 허용하는 대안이다.
현재 CT·MRI 등 특수의료장비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에서도 필수 장비가 된 것이 최근의 의료 현실이다. 이번에 제시한 개정안에 의해 CT·MRI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쟁력은 한층 낮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서두에 언급한 에피소드처럼, 충분히 해당과 전문의가 필요한 시술·수술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병상 수 부족으로 인해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하지 못해 오직 영상 촬영을 위해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면 1차 의료기관은 경쟁력 약화를, 환자는 불필요한 내원을 유발하며, 진단 및 치료의 지연 또한 우려된다.
상근 진료의사 4명과 상근 영상의학과 전문의 1명 기준은 특수의료장비의 활용도를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진료 역량(capacity)을 갖추고 있는 의료기관에 장비 설치를 허가하기 위한 대안이다. 이는 무분별한 특수의료장비 증가를 억제함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진료 중에 특수의료장비를 필요로 하는 의사를 확보한 의료기관에 병상 수와 무관하게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허가함으로써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능케 한다.
결론적으로, 대다수의 의사 회원이 진료하고 있고 국민 의료의 가장 최전선이자 기반을 이루고 있는 1차 의료기관의 특수의료장비 설치·운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이번 보발협의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준 개선안은 각과 의사회, 특히 특수의료장비 관련 전문과인 대한영상의학회를 포함한 전문가 단체와 긴밀한 논의를 거쳐 재고할 필요가 있다.
특수의료장비는 고가의 전문 의료 장비이고, 국민 의료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병원급 의료기관만 보유할 수 있는 기득권이나 병원의 수입을 책임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특수의료장비는 의원과 병원 등 의료기관의 종류와 병상 수를 가리지 않고 수요와 필요에 따라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설치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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