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손톱깎이

다시 보는 손톱깎이

  •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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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의료지원단으로 참여한 생활치료센터에서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황건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성형외과에 1년차 전공의로 들어오면 맨 먼저 윗년차에게 배우는 것이 아마 6-0 나일론으로 얼굴을 봉합하는 방법과 상처가 치유된 환자에서 실밥을 제거하는 방법일 것이다.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실밥을 제거하는 시기와 방법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일반적으로 얼굴은 봉합한 지 5일에 팔다리는 10일 이상 경과 후에 실밥을 제거한다. 부위마다 아무는 기간이 다르고 또 상처가 붙으면 가능한 빨리 제거해야 실밥 자국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봉합이 있으면 장력이 가장 적은 부위에서 먼저 하나를 제거하고 그 실밥자국에서 피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하나씩 건너서 실밥을 제거한다. 즉 '반만 뽑으라'(half stitch-out)는 것은 사이사이 하나씩만 뽑으라는 것이다.

실밥을 뽑는 데는 핀셋과 가위, 또는 메스날을 사용한다. 

피부에서 보이는 매듭의 실밥을 핀셋으로 잡아 위로 당겨서 공간을 만들고, 피부에 가장 가까운 부위의 실을 작은 가위의 끝이나 11번 메스날로 잘라야 노출됐던 실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오염의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나는 며칠 전 의사가 된 지 39년만에 처음으로 통상적으로 쓰이는 가위나 칼 이외의 도구를 사용해 실밥을 제거했다. 

지난달에 대한의사협회에서 코로나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지원단'을 모집하는데 2주이상 근무해야한다는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잔여 휴가와 휴일을 합치니 24일을 근무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활치료센터에서는 확진자 입소시 역학조사서를 참조하고 상담을 통해 호흡이 곤란하거나 폐렴이 있는 환자는 거점병원으로 보내게 된다. 

내가 배치된 생활치료센터는 경증환자의 관찰과 대증적 투약치료가 주된 업무이지만 증상이 악화되거나 흉부방사선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면 전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곳은 리조트를 개조해 강당을 상황실로 이용하는 만큼 외과적인 처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며칠 전 진료부 단체카톡방에 환자의 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29세 남자가 2주 전에 손을 베어 봉합하고 오늘 실밥을 뽑을 예정이었는데 전날 확진되면서 입소한 경우였다. 그 확진자의 사진을 올린 것이었다. 

사진 상으로 상처는 다 나은 듯 보였으나 실밥이 덜렁거렸다. 그냥 두면 앞으로도 약 9일간 불편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을 터였다. 

동료의사와 간호팀장은 현재 핀셋이나 가위가 구비돼 있지 않으며, 단지 이것 때문에 전원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문득 지난해 진료했던 30대 남자 진상환자가 생각났다. 

턱뼈가 골절돼 수술하고 턱사이고정술을 시행했는데, 예정 고정기간 보다 2주 빨리 스스로 철사줄을 제거하고 외래에 나타나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그 환자가. 

위턱과 아래턱의 활철선(arch bar)을 철사를 이용해 상하로 고정시켰으니 유동식으로만 먹게 되고 담배도 못 피우니, 그 철사들을 손톱깎이로 잘라버리고 입을 벌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다시 묶어주며 풀지 말라고 당부하며, 그의 창의력(?)에 감탄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근무하고 있는 황건 교수.
생활치료센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근무하고 있는 황건 교수.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내가 입소할 때 집에서 가져 온 손톱깎이와 종이집게를 가지고 환자동 4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벨을 누르자 그가 팔을 내밀었다. 복도는 어두침침했으며, 이내 보안경에 김이 서렸다. 봉합한 지 2주가 지난 환부는 굳은살로 변해 있었다. 

알코올 솜으로 환자의 집게손가락과 손톱깎이 날을 문지르고 페이퍼클립으로 매듭을 잡으려 했으나 잘 잡히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두개 낀 손으로 실밥을 잡아당기며 손톱깎이날을 봉합사와 피부 사이에 대고 실들을 끊었다. 

갑자기 답답하던 숨이 편해졌다. 허리를 굽히고 작업하느라 마스크가 삐뚤어진 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굳은살까지 제거해 줬다. 

오염구역에 들어간 물건은 갖고 나올 수 없기에 가져간 밴드와 손톱깎이도 주고 나왔다.

천막에서 방호복을 벗으니 한기가 느껴졌다. 상황실 앞에는 간호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니 모니터를 보던 간호사 들이 박수를 쳤다.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그리고, "궁하면 통한다."

격리된 확진자들이 모두들 회복돼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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