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가 왜 특전사 사병으로 복무했느냐고요?

인터뷰 의사가 왜 특전사 사병으로 복무했느냐고요?

  • 김영숙 논설위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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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면허 따자 '충동적' 군 입대..그에겐 계획이 있었다
다른 삶 살아온 또래 세대 만나 자신이 누린 혜택 나누겠다 결심
개별 환자보다 난민 등 인구 집단에 도움 주려 '보건학' 선택

ⓒ의협신문
2020년 2월 의사면허를 취득한 최우재씨는 특전사 사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대부분의 의사와는 다른 선택을 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어떤 의사가 될지 성찰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의협신문

의사가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그것도 사병으로. 대한민국 남자 의사 대부분은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반적 선택과는 달리 특전사 사병으로 군 생활을 마친 최우재씨(28세)의 사연은 이미 지난해 국방일보에 <군의관 자리 마다 하고 현역병 선택한 의사쌤>으로 제법 상세하게 소개됐다.

취재 대상으로서 새로울 것이 없을수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발동했고, 1시간여 그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어쩌면 그는 많은 의대생이 '의사'라는 전문직업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의 문화 자산과 더불어 자신의 노력 덕분에 모두가 선망하는 의대 진학을 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6일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그의 말 그대로 "충동적으로" 특전사를 지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렇듯  남과 다른 그의 선택은 앞으로 그가 완성해 나갈 미래를 위한 퍼즐의 한 조각을 놓은 계기가 된듯 했다.  

최씨의 청소년 시절 꿈은 다양했다. 해군 대령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공군 조종사를 꿈꿨지만, 좌우 0.3, 0.4의 시력 때문에 포기했고, 문과적 성향도 있었던 터라 판사 같은 법조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 진학 땐 서울대 경제학과와 연세의대를 동시에 지원했다.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항상 본인의 일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으로 의대 진학을 결정했다. 

연세의대는 교육과정 특성상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지 않아(연세의대는 2014년 절대평가제를 도입해 Pass/Non-pass로 학생을 평가한다) 학업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딴짓(?)을 장려하는 덕분에 토론동아리, 난민지원 봉사 동아리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자격을 얻으면서 정작 그의 고민은 시작됐다. 

"인턴 지원 시기가 1월 말에서 2월 초였는데, 사실 지원 원서까지 마련해놓고 계속 고민했어요. 의대 다니면서 그렇게 열심히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부끄럽지만 어떤 의사가 돼야 할지,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죠. 주변 친구들이 다 인턴 가고 하니 그냥 그렇게 따라가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게 (군을 지원한)가장 큰 동기였던 셈이죠." 

군대 가서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군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일하다 보니 절대 저보다 못한 친구들이 아니었어요.  저는 부모님 잘 만난 덕분에 학원 가고, 공부만 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지원이 엄청 많았던 반면 이 친구들은 내가 누렸던 그런 기회들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죠.  ...내가 받았던 그 기회들을 더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최 씨는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지금까지 본인이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부분 의사의 군 복무와는 달리 군의관, 공중보건의, 아니 의무병도 아닌 일반 사병을 그의 말마따나 "충동적으로" 선택했다. 여기에 특전사를 가면 운동을 할수 있겠다는 생각, 외할아버지가 해군 제독이었던 외가의 영향도 있었던 거 같단다. 주변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몹시 당혹스러워하셨다. 

"사전에 부모님과 상의한 게 아니어서 지원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적지 않게 놀라셨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나중에 '힘든데 가서 고생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지지해주셨는데 아버지는 일반 사병까진 좋은데 왜 하필 특전사냐는 반응이셨죠. "

군에 입대해 그는 지금까지 그와 다른 삶을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인이 얼마나 혜택받은 삶을 살았는지 깨닫게 됐다. "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4살 때 프랑스 파리에서, 중학교 때 홍콩에서 지낸 걸 빼면 서울에서 줄곧 살았죠. 군대 가서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군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일하다 보니 절대 저보다 못한 친구들이 아니었어요. 저는 부모님 잘 만난 덕분에 학원 가고, 공부만 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지원이 엄청 많았던 반면 이 친구들은 내가 누렸던 그런 기회들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죠. 물론 이 친구들이 그렇다해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또 그런 삶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내가 받았던 그 기회들을 더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같은 나이대의 청년들을 알아가면서 '부모와 사회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혜택"을 자각하고, 그 혜택을 나누려면 어떤 의사가 돼야 할지 방향을 잡아갔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본과 3∼4학년 때 난민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해주는 봉사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요. 3학년 말쯤에는 후배들까지 7명이 모여서 지도교수님과 같이 활동했는데, 그때 보건학에 관한 관심이 어렴풋이 있었어요. (그러다 군에서 고민하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으로 난민이나 탈북자 또는 이주 노동자들의 여건을 좋게 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분들이 각자의 사회에서 적절히 통합돼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사회에서도 생산적인 인구로서 기능하는데 보건학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숭고하고 좋은 일이지만, 인구집단을 상대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보건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전문의를 취득하고 나서도 계속 임상연구든 인구집단 연구든 또는 NGO 활동이든 할 생각이고, 기회가 되면 국제보건기구 등 국제보건 활동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최씨는 이를 위해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원과 하버드 보건대학원 두 곳에 지원서를 냈고, 존스홉킨스로부터는 이미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하버드는 2월에 합격 여부를 알수 있다. 두 곳 다 통상 2년 과정이지만 최씨와 같은 의사면허자는 1년 과정만 마치면 된다. 내년 가을 과정이 끝나면 6개월 정도는 미국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2024년 봄쯤 모교로 돌아와 내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싶다는 바람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숭고하고 좋은 일이지만, 인구집단을 상대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보건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전문의를 취득하고 나서도 계속 임상연구든 인구집단 연구든, 또는 NGO 활동이든 할 생각이고, 기회가 되면 국제보건기구 등 국제보건 활동으로 확장하고 싶어요.

최씨는 군 복무 중인 2020년 10월 미국 의사고시(USMLE)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지휘관의 배려로 일과 후와 주말에 부지런히 공부한 덕이다. 미국에서 의사를 하겠다는 목표로 도전한 것은 아니지만, 최씨가 목표로 하는 국제보건 관련 활동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 준비했다. 

그는 전역 전 남은 휴가 20일을 반납하고 2021년 12월 1일부터 한 달간 충청남도 생활치료센터에서 코로나 19확진자 치료를 위한 파견 임무를 수행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입대전 기간제 의사신분으로 서울 서대문구 코로나 19 선별진료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생활치료센터에서 문진·PCR 검사, 전원 결정, 각종 처방이나 비대면 진료를 도맡아 하는 방역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이달  5일 전역하고도 하루도 쉬지 않고 6일부터 종로구 생활치료센터에서 운영하는 서대문구 보건소에서 코로나 19 확진자 관련 업무를 하고, 동시에 인천공항에서 출국자들을 상대로 PCR 검사 등 출국 가능 여부를 확인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군인들이라면 손꼽아 기다려지는 게 휴가인데 남은 휴가를 반납하고 봉사하고, 전역 후에도 숨돌릴 새 없이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최씨는  "주변에선 봉사활동이라는 표현해주시는데 다른 분들처럼 급여도 받고 근무한 것"이라며 이런 사연이 선행이나 봉사활동으로 치장되는 거에 겸연쩍어했다. 

MZ세대인 최씨는 짧은 사회경험이었지만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의사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특별히 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부당하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이를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다시 몇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자신이 이런 세태를 부당하다고 느낄지 아니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돼 있을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그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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