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표심 좇는 핀셋 급여화 "건보 재정이 대선후보 쌈짓돈인가?"

초점 표심 좇는 핀셋 급여화 "건보 재정이 대선후보 쌈짓돈인가?"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2.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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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운영 청사진 실종, 탈모부터 코골이까지 너도나도 티켓(票) 마케팅
"국민이 낸 보험료, 대선후보 주머니 돈 아냐...급여 등재 절차·원칙도 위배"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의협신문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의협신문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들이 건강보험 관련 공약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건강보험 관련 공약이 각 대선캠프의 얼굴로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건강보험 제도 및 재정 운용에 대한 방향성 없이 특정 질환의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하는 이른바 '핀셋 급여' 공약이 이어지면서,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혜 '4대 중증 보장성 강화'·문재인 '비급여 급여화', 이번엔?

건강보험 관련 정책이 대선 메인 공약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한 것은 꽤 오래다. 

공약이란 것이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소개하고 국민들에 그 이행을 약속하는 일이고, 건강보험을 떠나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큰 그림을 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리 의아할 일은 아니다. 

이전 정부들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데 방점을 찍고, 그에 맞는 이행 계획을 공약으로 내놨었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문재인 정부의 '비급여의 급여화(문재인 케어)' 등이 대표격이다.

이들 슬로건은 각 캠프 보건의료 메인 공약으로 세워졌고, 정책의 공과를 떠나 각 후보 당선 이후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기치로 추진되어왔다.

다만 이번 대선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건강보험 제도 운영과 관련한 큰 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다. 

탈모부터 코골이까지, 표심 좇는 '핀셋 공약' 난무 

대신 특정질환의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하는 '핀셋 급여' 공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연말 '탈모치료 급여화'를 띄우며, 이 같은 시류에 불을 붙였다.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시리즈의 일환이다.

이 소식은 탈모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이 후보는 지난달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와 중증 탈모를 위한 모발이식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대선 공약으로 공식화했다.

이 후보는 소확행 시리즈로, 원포인트 급여화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현대적 피임시술 및 임신중지 의료행위(인공임신중절) 건보 적용 ▲노인 임플란트 건보 확대 등을 약속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도 '석열씨의 심쿵약속'이라는 시리즈로 연이어 핀셋 건강보험 공약을 내놓고 있다. 당뇨 환자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시작으로, 중증질환· 희귀암 치료제 건보 확대를 공언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또한 건강보험 하나로 100만원 상한제 등 이른바 심상정 케어를 내걸면서, 탈모 뿐 아니라 비만·여드름·코골이·안경 등도 건보에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예방접종 영역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국가지원 확대를 공약하기도 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 대선후보 주머니돈 아냐 

너도나도 핀셋 공약에 집중하면서도, 각 후보들은 왜 자신이 언급한 특정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다른 질환에 비해 우선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와 환자단체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금도 최신 항암제 등의 약제들은 꼭 필요하지만, 고가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이 재난적인 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탈모치료제 급여화는 건강보험 급여 대상의 우선순위를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또한 "건강보험 적용이 절실한 다른 중증질환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탈모치료제 급여화는 건강보험 급여 우선순위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각 캠프는 이들 핀셋 공약 이행을 위해 수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지만,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도 나오지 않았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들이 보험료를 함께 내고 나눠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가 예산과는 다른 사회보장 재정이다. 건강보험 재원의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고 있기는 하지만, 법에 정한 국고지원율에는 해마다 못 미친다.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건강보험 급여는 의학적 근거와 비용효과성 등을 꼼꼼히 따진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며 "이런 식의 급여는, 건보 급여 절차와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때마다 건강보험 재정을 제 돈처럼 삼는 공약들이 난무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하다. 건강보험 운영 원칙에 대한 이해도, 건보와 의료에 대한 철학도 결여된 명백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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