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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40분전 위험성 얘기했는데 "설명의무 위반"…의협 "유감"
수술 40분전 위험성 얘기했는데 "설명의무 위반"…의협 "유감"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2.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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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설명의무 다했음에도 수술 직전에 알려줬다고 의료진 책임 인정 부당"
"불안정한 진료환경 조성 및 방어진료 확대로 국민건강·생명에 악영향" 우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대법원이 지난 1월 27일 의사가 의료법상 설명의무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수술 및 수술 후 위험성을 설명한 것에 대해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대법원은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 2심을 뒤집고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환자는 지난 2018년 6월 요통과 근력저하 등의 문제로 평택의 한 병원을 찾아 추체간 유합술, 인공디스크 치환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의료진이 수술 전 시행한 경동맥 및 심장 초음파 검사 결과 경동맥 협착 소견이 나왔다.

이에 의료진은 수술 약 40분 전 환자 보호자에게 경동맥 협착으로 인한 뇌졸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진단을 설명한 후, 예정된 수술 일정에 따라 수술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술을 마친 후 환자에게 뇌경색이 발병해 몸의 왼쪽이 마비되고 인지장애 등의 후유증이 발생했다.

환자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통해 "뇌졸중 위험이 높은 상태였음에도 의사가 수술 및 수술로 인한 후유증(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1, 2심 법원은 병원 의사가 환자에게 '경동맥 협착으로 인한 뇌졸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을 했다고 인정해 설명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설명한 것은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가 행해질 때까지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행돼야 한다"라며 "환자가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의료행위의 필요성과 위험성 등을 환자 스스로 숙고하고, 필요하다면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상의하고 결정할 시간적 여유가 환자에게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어 "의사가 환자에게 의사를 결정함에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을 한 다음 곧바로 의료행위로 나아간다면 이는 환자가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를 침해한 것으로서 의사의 설명의무가 이행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때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설명의무를 이행했는지는 의료행위의 내용과 방법, 그 의료행위의 위험성과 긴급성의 정도, 의료행위 전 환자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수술 당일 환자에게 수술에 따른 위험성을 설명하고 곧바로 수술에 나아간 사안에서, 의사의 설명의무가 환자에게 수술에 관한 위험성을 충분히 숙고할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뤄지지 않았을 여지가 있으므로 설명의무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의협은 14일 설명의무 위반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설명의무 위반의 범위를 확대 해석한 대법원의 판단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행위는 신체에 대한 침습을 통해 건강을 회복시키는 행위로 기본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발생 가능한 악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의료법에서 의료인의 설명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관행상 인정돼 오던 설명의무를 굳이 의료법에 명문화한 것에는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다 명확히 하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설명의무자인 의료진에게 법문상 규정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한 경우, 해당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설명의무의 무한한 확대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

또 의료법 제24조의2는 의사 등의 설명의무를 규정하고 하위법령에서 설명의 방법,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문에는 설명의 대상·방식·내용에 대해 열거돼 있을 뿐이므로, 설명의무 위반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요건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족하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법문을 확대해석해 의료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요건인 '설명의 시간적 한계'를 추가한 것이다.

의협은 "만에 하나 설명의무의 이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설명의 시간적 한계를 설정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환자의 알권리나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시기를 그 시간적 한계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아무런 기준의 설시 없이 이번 판결을 내렸는 바, 이는 의료현장에 그것도 촌각을 다투는 응급수술이나 위험수술을 시행해야 하는 현장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더욱이 지난 2017년 소장폐색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의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물었던 법원의 판결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것으로, 수술 시기 결정에 있어서 현장 의사들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거치는 의학적 판단을 무시하는 이중잣대식 판결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의료진이 의료법에 따른 설명의무를 모두 이행했음에도 개별 사안의 정황에 따라 설명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의료계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의협은 "이번 판결로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위험성이 있는 수술 등을 기피하도록 하는 방어진료를 부추겨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이어 "생명이 경각에 놓인 초응급상황에서 법적 다툼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를 다하려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을, 과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할지 의문"이라고 되물었다.

의협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차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환송된 사건을 심리하게 될 법원에서는 의료법에 근거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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