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달 새 이비인후과 의사 2명 사망…갑작스런 부고에 동료의사들 "안타깝다"
4종 보호장구 착용해도 진료 현장 의료진 감염 위험성 높아…정부 지원 대책 절실
의료진 2년 넘게 코로나19 사투 '번아웃' 호소...감염병 정책·제도 개선·지원 필요
최근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다가 감염된 이비인후과 의사가 투병 중에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이비인후과의원을 개원한 고(故) 이원태 원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환자를 진료하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원장은 입원 치료를 받으며 코로나19와 싸웠으나 지난 2월 13일 끝내 사망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임원을 맡아 고인과 함께 활동한 문인희 원장(서울 강서구·비전이비인후과의원)은 이 원장의 사망 소식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복을 빌었다.
문 원장은 "고인은 활달한 성품에 정도 많고 건강해 매주 등산을 즐겼다"라고 회상하면서 "앞서 경기도 광명시에서 이비인후과의원장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중환자실 진료를 받다 돌아가신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연이은 부고에 가슴이 먹먹하다"며 슬퍼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환자가 목이 아프다고 찾아오면 코로나19든 아니든 목을 진찰한다"라면서 "목을 살펴보지 않으면 목감기인지, 편도염인지, 편도주위농양인지, 구강 궤양인지, 하인두암인지 어떻게 알겠는가?"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일선 의사들은 아무리 4종 보호 장구를 하더라도 누구보다 감염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환자를 더 잘 보겠다는 마음으로 본분을 다하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문 원장은 지난해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창립 20주년 기념 백일장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비인후과의원장이 쓴 수필을 소개하기도 했다.
수필을 쓴 이비인후과의원장은 "자신은 열심히 진료한 죄밖에 없다. 직원과 함께 감염이 되어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게 됐는데, 첫 날부터 생활치료센터 직원들은 내내 코로나19 확진자들을 홀대해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문 원장은 "수필을 쓴 원장은 병원에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구청과 보건소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병원 실명을 공개해 마치 코로나19 전파의 온상처럼 인식하게 했다. 이 원장이 거주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병원 실명을 공지해 2중 3중의 제제를 가했다. 몇 달 동안 환자는 엄청나게 줄었고, 결국 병원 이름까지 바꿨다"고 전했다.
"수년 전 메르스 유행 당시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자녀 신상이 학교에 알려져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면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한 의사를 이렇게 취급한다면 코로나19 환자는 누가 진료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실제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가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급성호흡기감염병 전문가인 이비인후과 의사 및 의료기관은 갖가지 고충을 겪고 있다.
2020년 이비인후과 의사의 1인당 매출은 -37.5% 감소했다. 2021년 이비인후과 의원은 전체 25개 진료과 중 유일하게 매출이 감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의원 폐업 현황에서도 이비인후과의원은 2019년에 비해 2021년 폐업률이 50% 가량 늘어나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2021년도 2분기 기준 2570곳 이비인후과 의원 중 약 75%가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방역조치를 당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는 "그만큼 이비인후과가 코로나19 환자를 최전선에서 진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황찬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장은 지난 1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비인후과 의사가 KF94 마스크를 착용했더라도 진료 중 환자가 마스크를 벗었다는 이유로 줄줄이 자가격리를 당했다. 방역당국과 지자체가 실시간 '확진자 동선 공개'를 하는 바람에 '확진자 방문 병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2주간 자가격리가 끝난 뒤에도 환자가 끊겨 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환자 진찰로 인해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이비인후과 의사 중 대부분이 코로나19 검사 음성이고, 실제 중증 감염으로 이어진 경우가 거의 없다. 이는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자기 방역관리가 뛰어나다는 것"이라면서 "이비인후과 의사들에 대한 2주간 자가격리 조치는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코로나19에 맞서 최일선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싸우고 있는 전투병"이라고 밝힌 황 회장은 "상기도 감염 진료에 새로운 감염관리료 신설 등 위험 노출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해야 한다"라면서 "보호구 착용 시 검사와 격리를 면제하는 등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새로운 방역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 회장은 "의료진 격리문제, 감염 진료소에 대한 국민 불안 해소, 감염 의료진에 대한 보상과 예우, 손실 보상과 수가 인상 등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행정적인 뒷받침과 정책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환자를 진료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의사가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2월 고 허영구 원장(경상북도 경산)은 내원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다 폐렴 증상을 보인 후 투병하다가 4월 3일 유명을 달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첫 의료진 사망 사례다.
지난해에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의료진이 사망하면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고 장청순 원장은 1965년 경기도 성남시에 개원한 이후 반백년 넘게 지역 주민의 건강을 보살혔다. 그러나 장 원장 역시 코로나19를 비껴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말 자신이 감염된지 모른 채 내원한 환자를 두 차례 진료한 장청순 원장은 올해 1월 1일 확진 판정 이후 건강이 악화, 집중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치 못하고 향년 8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지난해 1월 26일에는 이유상 공보의(33세·성형외과 전문의)가 근무 중이던 군산의료원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 이유상 공보의는 군산의료원 응급의료과장을 맡아 응급환자를 돌봤으며, 김제생활치료센터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매진하는 등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신광철 이비인후과의사회 공보부회장은 "이비인후과 의사를 비롯해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진들은 취약한 상황속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손실보상에만 신경쓰지 말고 국민을 위해 애쓴 의사들의 노력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 공보부회장은 "전쟁에 비유하자면 의원은 소총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다.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급성호흡기감염 진료를 위해 애쓰는 의사들의 고충을 알아달라"면서 "험난한 일을 도맡아 하는 의사들은 어찌보면 영웅들이다. 의사가 감염됐다고 피해야할 사람이라거나 의료기관을 혐오시설로 취급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집계한 자료를 살펴보면 2022년 1월 15일 기준으로 코로나19 감염 의료진 가운데 위증증 환자 수는 71명(의사 40명, 간호사 15명, 기타 인력 1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사망자는 15명(의사 10명, 간호사 3명, 기타 인력 2명)이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는 2월 16일 현재 9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폭발적인 확산으로 확진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는 2년 넘게 코로나19 진료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의 소진(번아웃)을 해소하고, 감염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의료진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인 감염병 정책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