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종전 병원서 현지조사 거부 사유로 새로 개설한 병원 행정처분은 잘못"
처분대상, 위반행위 당시 '요양기관' 명확히 규정...새 개설 의료기관 처분하지 못해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과거에 현지조사를 거부한 책임을 물어 업무정지처분을 내리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4월 28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업무정지처분을 받은 A의사가 제기한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보건복지부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A의사는 2014년 9월 15일부터 B병원을 운영하다가 2018년 5월 4일 폐업 후, 2018년 10월 10일 새로운 C병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1월 23일 B병원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는데, A의사는 현지조사를 거부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3월 21일 '원고가 현지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했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2호 및 의료급여법 제28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A의사가 새로 개설한 C병원의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 업무를 1년 동안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했다.
이 사건은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조사를 거부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이 폐업 후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요양기관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1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업무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처분대상도 없어졌다"면서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러한 법리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의 검사 또는 질문을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경우에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받게 되는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및 의료급여법 제28조 제1항 제3호에 의해 받게 되는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월 27일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결(대법원 2020두39365)한 바 있다.
대법원은 "업무정지처분은 위반 당시 요양기관에 해야 적법한 것이지, 폐업했거나 새로 개설해 운영하는 요양기관에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업무정지처분은 요양기관 등에 대해 행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대표자인 의사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대인적 처분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업무정지처분의 대상이 되는 요양기관 등의 대표자가 폐업 후 새로 요양기관 등을 개설한 경우에도 이전 요양기관에서의 행위를 근거로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있다"고 행정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했다.
1, 2심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처분이 잘못됐다고 판결했으며, 대법원도 보건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1호에서도 '그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처분대상을 위반행위 당시의 '요양기관'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양기관에 대한 제재처분의 승계와 관련해서는 "관련 법령(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제1항, 제85조 제1항 및 제3항,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21조 제1항 및 제3항)에는 업무정지처분의 절차가 진행되기 이전에 이미 폐업한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위반행위를 이유로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