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 오디세이아(1) 간호법, 간호협회 희망봉일까?
한국의료 오디세이아(1) 간호법, 간호협회 희망봉일까?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5.20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대한민국 의료체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여정 

칼럼 [한국의료 오디세이아]를 시작하며

ⓒ의협신문
ⓒ의협신문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영웅적 서사시다.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도록 객지를 떠돌며 몸도 마음도 지친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산 사람을 삼켜버리는 외눈박이 퀴클롭스, 마법사 키르케의 섬, 영혼을 유혹하는 치명적 목소리의 세이렌, 머리가 여섯 달린 괴물 스킬라를 물리친 오디세우스가 간난신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 여정은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료 분야에 대한 민간 중심의 투자로 보건의료 서비스가 급성장하면서 현재 OECD 국가 중 보건의료 지표가 최상위인 나라, 전 세계에서 의료 접근성이 가장 좋은 나라, 모든 국민이 아무런 불편없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나라가 되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저수가로 인한 박리다매식 진료가 만든 3분 진료 문화, 의사 1인당 과도한 업무량, 의료분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사회적 갈등,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속에 규모의 경제로 무한 확장하는 대학병원 분원 문제, 공공의료기관 확장으로 인한 민간의료기관의 생존 위협, 대학병원-지역중소병원-1차의료기관의 기능 미분화로 인한 의료계 내부 갈등,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료비 급증 등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드러난 어두운 그림자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되고 있다.
오는 2025년이면 우리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시대를 맞게 된다. 초고령시대에는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의 대한민국 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해 있어서는 결코 미래의 비전은 없다. 초고령사회와 함께 들이닥칠 건강보험재정 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를 넘어서 국가 위기로까지 대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위협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관행처럼 이어져 온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만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는 1977년에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45년 동안의 숨 가쁜 여정을 통해 현재 OECD 국가 중 최상위 보건의료 지표 달성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의료의 빛나는 성공신화 이면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명해보고, 그동안 성공 신화의 소모품처럼 여겨진 수많은 관련 분야의 땀과 수고와 헌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가 초고령사회를 앞둔 이 시점에 우리는 한국의료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혁신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공론화와 사회적 문제 제기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간호법, 간호협회의 희망봉일까? 

희망봉은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의 곶'이라고 명명한 곳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서쪽 끝의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점이다. 15세기 말 포르투갈 제국의 황금기에 인도 항로 개척의 기점이 된 이곳은 훗날 열강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 거점이 되었다. 포르투갈을 비롯한 열강들에는 '희망봉'이었으나 아프리카에는 '절망봉'인 셈이다. 

역대 어느 때보다 입법 폭주가 심한 제21대 국회가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간호법안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전격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해 3월 25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동시에 발의한 유사 법안들을 병합 심의한 대안이다. 

당초 이 법안은 심의과정에서 관련 단체들의 첨예한 갈등이 나타나는 등 사회적 갈등 양상을 빚게 되자 국회에서 정부 주도하에 관련 단체의 실무협의를 통한 대안 마련을 주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않은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 야당 주도로 법안소위를 소집하여 졸속 통과시킨 후 불과 10일 만에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신속하게 통과시켜버린 것이다. 

발의 후 심의과정에 '의료판 검수완박 시도법'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던 이 법안을 도대체 무슨 급한 사정이 있기에 이처럼 서둘러서 통과시킨 것인가? 

지난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안에 담긴 제안 이유를 보면 '초고령사회를 맞아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간호돌봄 인력과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및 치료를 위한 숙련된 간호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사유로 들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간호인력의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권리와 책무, 양성과 수급 및 처우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고자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간호법안에 담긴 제정 목적과 내용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 기존 간호사 관련 법을 가진 OECD 국가들의 경우와 비교해 보기로 한다. OECD 38개 국가 중 간호사 관련 단독법을 보유한 나라는 캐나다·독일·일본 등 11개국 뿐이며, 나머지 27개국은 단독법이 없다. 간호사 단독법이 없는 27개 국가 중 영국·이탈리아를 비롯한 13개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법에서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통합하여 규정하고 있으며, 호주·스페인·미국 등 나머지 14개국은 의료법과 분리된 별도의 보건전문직업법에서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간호사 관련 법을 갖추고 있는 OECD 11개국의 관련 법 내용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면허관리기구의 설치 및 구성, 교육·자격·면허·등록, 간호사에 대한 환자불만 접수, 조사 및 징계 등 면허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엄격한 면허관리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 및 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간호법안은 간호사의 면허관리는 없고, 처우개선에 관한 내용만 있다. 간호 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국민은 없고 오직 간호사의 이익만 있는 직역 이기주의 법안인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0개 보건의료단체(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가 참여하고 있는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 19일 국회 앞에서 간호단독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0개 보건의료단체(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가 참여하고 있는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 19일 국회 앞에서 간호단독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김선경 기자]ⓒ의협신문

더욱 심각한 일은 앞으로 이 법을 근거로 간호사 중심의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해 간호사들의 탈 의료기관이 현실화한다면 지금도 간호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 중소병원들은 '간호붕괴'로 인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점이다. 

현재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내에서 근무를 꺼리는 이유는 3교대 근무 등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보상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과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공동개최한 '간호관리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병동의 "입원료 중에서 간호관리료의 원가보전율은 평균 38.4%로 가장 낮다"고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원료의 원가보전율을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입원료를 인상하되 그 인상분을 간호관리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코로나 시국에 코로나 방역에 필요한 간호사가 부족하자 정부는 간호사 급여를 시세보다 2배 이상의 고액을 지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간호사들이 기존 의료기관을 이탈하여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 업무로 지원하는 사례들이 급증했다. 고상한 이념이나 사명감으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며 일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급여 보상이라는 인간의 탐욕에 근거한 합리적 정책이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는 빵 가게 주인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가 매일 신선하고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업무의 위험이나 강도에 걸맞은 보수를 지급하면 업무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국회는 간호사의 의료기관 내 3교대 근무 기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간호사를 의료기관에서 탈출하도록 조장하는 간호법안 제정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만일 이 법을 제정해 간호사의 '탈의료기관'이 현실이 된다면 지금도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지역 중소병원은 간호사 부족으로 운영 자체가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과거 의료를 배제한 돌봄과 복지 중심의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의료를 배제한 복지 중심의 돌봄 서비스에 국민의 불안과 불만이 지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선진국들의 커뮤니티케어는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돌봄 통합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의협신문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과거 의료를 배제한 돌봄과 복지 중심의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의료를 배제한 복지 중심의 돌봄 서비스에 국민의 불안과 불만이 지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선진국들의 커뮤니티케어는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돌봄 통합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뿐만이 아니다. 간호 중심으로 초고령사회를 대비한다는 이 법안의 목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뒤떨어진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도 과거 한때 의료를 배제한 돌봄과 복지 중심의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경험들이 있다. 의료가 배제된 복지 중심의 돌봄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불만이 지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선진국들의 커뮤니티케어는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돌봄 통합이 대세다. 일본도 지난 2014년 <지역 의료 및 개호의 종합적인 확보·촉진에 관한 법률(地域における医療及び介護の総合的な確保の促進に関する法律)>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와 돌봄(개호)을 통합 제공하는 체계를 갖춘 이후 돌봄이 활성화되어서 세계 최고의 노인복지국이 되었다.

'A strife of interests masquerading as a contest of principles. The conduct of public affairs for private advantage.(원칙의 경연으로 가장한 이해관계의 다툼. 사적 이익을 위한 공적 업무 수행.)' 미국의 정치평론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풍자적 역작 <The Devil's Dictionary:악마의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정치의 의미이다. 

반민주적인 절차적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민주당에서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였을 때는 그만한 속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간호협회는 희망봉이 되겠으나 국민은 절망봉이 될 수도 있는 간호법안을 이처럼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어떤 '사적 이익'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