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Regulation과 사회적 책무

Medical Regulation과 사회적 책무

  • 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전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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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전문적 규제에 대한 기관 차원의 역량·리더십 배양해야"

최근 사회적 책무성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영어로 social accountability를 번역한 것인데 사회적 책임인 social responsibility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적 책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묘한 단어의 의미 차이는 영어가 원어민인 일반인도 의미 구별을 명확히 하기 쉽지 않아 한다. 

Professionalism을 우리나라는 전문직업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전문직업성이란 단어가 없는 언어체계에서 전문직업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실천적 이기보다는 아직 학습으로 이해 가능한 이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의사 개인적 차원의 전문직업성의 구인(construct)인 정직·봉사·희생·존중·환자이득 우선·근면 등은 굳이 학교에서 교육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한 속칭 공자님 같은 말씀들이다. 

그러나 전문직업성이 단체적 차원에서 논의될 때 편의상 전문직의 임상적 자율권, 직무윤리, 그리고 자율규제로 인위적 분류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우리 의료사회에서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다.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의권(醫權)이라는 단어가 흔히 사용되나 무엇이 의권인지 구체적인 구인으로 표현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의권도 인술(仁術)만큼이나 모호한 단어로 보일 수도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40대 집행부에서 유럽의 식민지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의사 이익단체인 의사회(medical association)와 의사의 자율규제 단체(medical council)인 면허기구를 방문했고 이어 독일·캐나다·미국의 기관을 방문했다. 40대 집행부 초기만 해도 자율단체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실제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난 후 회장, 대의원회장을 비롯해 집행부 리더들이 자율규제의 실천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결과로 의협은 자율규제에 대한 지지를 거듭 밝히고 대의원총회 결의 사항으로 선언했다. 의협 집행부의 구조적 특성인 정책적 영속성과 일관성의 문제는 이제 겨우 축적한 전문직업성에 대한 지식자산과 문화자산의 축적이 지속되지 않는 현상을 보인다. 지난 40대 집행부는 3년 동안 의사 면허영역의 침범을 시도한 한의사들의 도전이 있었고 신설 의대 저지로 매우 투쟁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의사의 영역에 관한 문제는 2011년부터 의학교육평가원을 통한 꾸준한 작업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관점과는 달리 세계의과대학명부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한의대를 퇴출시켜 선방했다. 평가원의 직무가 medical Regulation 분야의 중요한 분야인 질관리(quality assurance)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의사협회의 장외투쟁까지 만들었던 간호법 제정 문제도 지난 집행부의 한의사 문제와 유사한 범주에 속할 수 있다. 다양한 보건의료 직역 간의 직무영역에 대한 잠재적 충돌 가능성은 상존한다. 물리치료사의 독립개업, 안경사와 안과전문의의 충돌, 임상병리사 단독개업, 간호사 단독진료와 개업 등 특정 국가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제도를 근거로 직역의 다툼은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직역별로 자세하고 구체적인 직역 행위의 범위를 규정하는 조문이 없다. 전문직업성의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면허에 대한 관리와 행정처분권·직역에 대한 정의와 범위·의료인의 직무·교육과 자격·평가인증제도 등 의료인력 관리에 관한 제반 문제는 medical regulation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보건의료의 작은 학문 분야로 발달하고 있다. Medical regulation을 무엇이라 번역해야 할지 또 고민이다. 의료통제·의료조정·의료규제 등 모두 듣기 즐거운 단어들이 아니다.

Temperature regulation은 체온조절 정도로 번역하면 의미 전달에 무리가 없고 부정적인 함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medical regulation을 의료조절로 번역하면 좀 듣기 수월할지도 모르나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현대적 전문직 관리가 아직 미진한 사회에서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국회의원은 포퓰리즘에 의해 엉뚱한 법안을 만들고 있다. 입법부·행정부 주도로 언제 또 어떤 법안을 만들어 의사단체와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수술방 폐쇄회로, 간호법의 두 가지 사안은 검찰의 검수완박과 마찬가지로 전문직의 약한 전문직업성이 가져오는 기형적 해결방안이다. 

대중 역시 전체주의 역사에 물들어 전문직이 보여줘야 할 자율규제에 대해 자정 노력 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려주고 있는데 해결방안은 타율정화인 기형적 법안들이다. 

아직 사회적 책무성이라는 단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사회적 책무성 대신 자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수술실 폐쇄회로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이웃 나라의 의사는 "이런 희한한 법안은 전문직 모두와 특히 외과의사에 가해지는 최대의 모욕적인 사안으로 한국의 의사들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는 현재 법과 제도가 의사단체에 확실한 자율규제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음에도 전문직 자율규제의 책임(responsiblity)이 실제 집행의 최종 권한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의사 집단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사고나 사망 등 부정적 의료성과(medical outcome)의 원인으로 전문직의 미숙한 자율규제를 탓하며 의협이 사회적 책무(accountability)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비난한다. 

그러나 냉철히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법적·행정적 체계가 관료 중심으로 전문직의 자율규제를 미숙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다. 억울하게도 사회적 책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의사단체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의사는 전문직업성의 근간인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이며 자율규제를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적극적인 자율규제 반대가 의사협회 회장 선거의 매력적인 구호로 이용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수술실 폐쇄회로 설치, 간호법 등의 medical regulation 관련 사안은 의사협회 집행부에 대한 도전적 과제로 앞으로도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UN·WHO·WMA 등 많은 국제기구에서 왜 medical regulation을 강조하는지 국제적인 시각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의사단체는 전문적 규제에 대한 기관 차원의 역량과 리더십을 배양시켜서 앞으로도 지속적 발생이 예상되는 보건의료인의 직역 갈등이나 인력자원에 관한 여러 가지 도전적 과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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