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 오디세이아-한국의료, 대멸종 피하려면

한국의료 오디세이아-한국의료, 대멸종 피하려면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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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형병원 설립 '방관'…지역의료 '붕괴'
일본도 실패한 분절적 '커뮤니티케어' 수정해야
초고령사회 대비하려면 '통합 의료·돌봄' 바람직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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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로 인한 박리다매식 진료가 만든 3분 진료 문화, 의사 1인당 과도한 업무량, 의료분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사회적 갈등,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속에 규모의 경제로 무한 확장하는 대학병원 분원 문제, 공공의료기관 확장으로 인한 민간의료기관의 생존 위협, 대학병원-지역중소병원-1차의료기관의 기능 미분화로 인한 의료계 내부 갈등,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료비 급증 등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드러난 어두운 그림자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되고 있다.

오는 2025년이면 우리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시대를 맞게 된다. 초고령시대에는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의 대한민국 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해 있어서는 결코 미래의 비전은 없다. 초고령사회와 함께 들이닥칠 건강보험재정 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를 넘어서 국가 위기로까지 대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위협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고 관행처럼 이어져 온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만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는 1977년에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45년 동안의 숨 가쁜 여정을 통해 현재 OECD 국가 중 최상위 보건의료 지표 달성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의료의 빛나는 성공신화 이면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명해보고, 그동안 성공 신화의 소모품처럼 여겨진 수많은 관련 분야의 땀과 수고와 헌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의료 오디세이아가 초고령사회를 앞둔 이 시점에 우리는 한국의료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혁신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공론화와 사회적 문제 제기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협신문

최근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움직임에 이어 서울 서남권에 부영그룹 소유의 의료재단이 2026년 개원을 목표로 81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세우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무분별한 대형병원 증설로 인한 의료 생태계의 파탄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지역은 인근에 강남성심병원과 광명성애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데다 최근 중앙대 광명병원까지 개원한 상태로 1000병상 안팎의 종합병원이 대거 들어서면 주변 병원들의 운영이 힘들게 될 뿐만 아니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는 병원 병상 개설 허가 권한이 각 지자체에 있어서 정부차원의 조정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현재 병상 기본시책을 마련 중이라고 하지만 무분별한 수도권 대형병원 설립은 이미 지역 의료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병원급 의료기관 수는 개업 86곳에 폐업 204곳으로 118곳이 줄어든 1397곳으로 나타났다. 병원급 의료기관 수로는 2012년 이래 가장 적은 숫자다. 병원급 요양급여비 점유율도 2020년 16.9%에서 2021년 16.3%로 0.6% 감소했다. 

반면 종합병원급의 약진은 놀랍다. 2021년 요양기관 종별 진료비 점유율 중 종합병원급은 2020년(34.8%) 대비 0.7% 증가한 35.4%로 나타났으며, 진료비 총액도 2020년 30조 2180억 원에서 9.5% 증가한 33조 943억 원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서 2021년 사이 종합병원급 요양급여비 총 증가율은 242.8%에 달하는데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증가율이 132.3%인 반면 2015년에서 2021년 사이 증가율은 183.6%로 최근 증가율이 더욱 급격하다.

고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사에서 약 4억 4500만 년 전 오르도비스기 말에 화산 폭발 이후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 중 가장 극적인 사건에 해당하는 대멸종은 약 6600만 년 전 백악기 말 멕시코 유카탄반도 지역에 지름 10km의 운석이 충돌한 이후 대규모 화산 폭발로 76%의 종이 멸종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쥐라기 이후 거의 2억 년 넘게 지구별을 지배해 온 티렉스가 멸종했다. 무려 13미터 길이에 7톤이나 되는 덩치에다 예리한 청각과 시각, 후각 그리고 높은 지능까지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티렉스, 지금은 장엄한 주검이 되어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화석으로 보존되어있는 무시무시한 최상위 포식자가 멸종하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날 유카탄반도에 운석이 충돌하기 전까지 말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장단계는 창업→성장→성숙→쇠퇴 또는 재구축 단계로 구분한다. 발전의 절정에 와있는 지금의 한국 의료가 과거 티렉스가 갔던 길을 따라 어느 날 대멸종에 이르게 될까. 아니면 기업의 성장단계를 따라 재구축(Rebuild)을 하게 될까.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 역사는 건강보험의 성장 역사와 함께한다.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을 건강보험의 성장단계에 따라 구분해 보면 해방 이후 1977년까지는 '준비기', 1977년부터 1989년까지는 '창업기', 1989년부터 2000년은 '성장기', 2000년부터 현재까지는 '성숙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준비기
한국전쟁 이후 정치적 불안정과 함께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대한민국은 국민의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1963년 12월 의료보험법이 제정되었지만 국가는 국민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보건의료에 대한 민간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1973년 8월 의료법 개정으로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 통로인 의료법인을 허용했다. 그러던 중 1977년 북한과의 체제경쟁으로 서둘러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영국이 2차 대전 후 '보편적 사회복지' 차원에서 많은 논의를 거쳐 1948년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출범시킨 것에 비해 너무도 준비 안 된 시작이었다.

창업기
1977년 의료보험 제도 도입 이후 1979년 공무원 의료보험 도입에 이어 1981년 자영업자에 대한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1978년 1,056병상 규모의 서울대병원이 개원했지만, 그때까지 국민의 건강을 돌보던 의료기관은 주로 의원급 의료기관들이었다. 그리고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었다. 

성장기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과 함께 대한민국 의료는 급속한 성장을 했다. 1989년 1000병상 규모에 23개 진료과의 서울아산병원 개원을 필두로 1994년 1100병상 규모의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하는 등 '메가 병원(Mega-hospitals)'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 이후 1999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도입되자 저수가를 양(量)으로 메꾸는 '3분 진료' 문화와 더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메가병원들의 덩치 키우기가 더욱 심화 되었다. 서울아산병원은 1994년 단일병원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2,200병상을 갖춘 초대형 병원으로 성장했다.

성숙기
2000년 의약분업과 건강보험통합, 그리고 2011년 4대 보험 통합 징수 등 굵직굵직한 정책의 변화를 통해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도 메가병원들의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다. 2005년 세브란스병원이 1000병상 규모의 새 병원을 개원했고, 서울아산병원은 2008년 신관 개원으로 2700병상 규모의 울트라 초대형 병원이 되었다. 이에 뒤질세라 2009년에는 1325병상 규모의 서울성모병원이 개원했다.

이러한 눈부신 외형적 성장과 함께 각종 보건의료지표도 크게 개선되어 우리나라는 현재 OECD 38개 국가 중 최고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의료전달체계의 부재로 인한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의 토대 위에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의료비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행 의료체계로는 늘어나는 의료비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의료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의료-돌봄 체계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의협신문
한국은 2025년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행 의료체계로는 늘어나는 의료비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의료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의료-돌봄 체계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의협신문

우리나라 GDP 대비 보건의료비는 1970년 2.6%(OECD 평균은 4.6%)에서 2000년 3.9%(OECD 7.1%)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오다가 노인 인구 비율이 2010년 10.8%에서 2020년 15.7%로 증가하는 동안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10년 5.9%에서 2020년 8.4%(OECD 9.7%)로 10년 만에 42.4%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초고령사회는 백악기 말 지구 별 유카탄반도를 강타한 운석처럼 대한민국 의료환경을 강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의료체계로는 의료비 급증을 더는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OECD 주요 선진국들이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료 중심의 의료시스템에서 의료와 복지가 통합적으로 제공되는 의료·돌봄 체제로 전환하고 이와 더불어 의료기관의 기능 분화에 따른 병상 자원 관리에 힘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를 앞둔 시점에 주거·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개선하는 정책으로 지난 2018년부터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정책을 발표·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습은 2014년 이후 과거의 실패를 수정하여 의료·돌봄 통합 모델로 간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커뮤니티케어)와 달리 일본의 초기 실패 모델과 흡사하다.

이제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국회, 시민사회, 보건의료 전문가 단체,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하여 분절적으로 제공되는 의료와 돌봄 체계를 바꿔서 의료·돌봄 통합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고령 쓰나미는 6600만년 전 지구별에 충돌한 운석처럼 한국 의료 대멸종으로 갈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멸종이 아닌 재구축을 통해 초고령 쓰나미에 잘 대응하여 대한민국이 더욱 건강한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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