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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반의사불벌죄'
'반의사불벌죄'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7.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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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에 의한 폭력이 더 흉포화되면서 의료계에서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의협신문

과거에도 진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의사에게 폭언·폭행을 일삼는 사건은 비일비재했지만 '환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등식으로 웬만하면 의사들이 참고 감내했다.

공권력에 호소해도  환자나 보호자 쪽으로 기울어져 지기 일쑤여서 이를 사건화하는 것은 힘들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환자단체연합회의 대표는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느냐"며 의료인에 대한 환자들의 폭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의료계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당시의 평균적 사회 인식을 대변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 내 폭력의 수위와 강도는 관용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2008년 지방의 모 대학병원에서 처방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자신의 비뇨기과 주치의를 살해했다.

같은 해 11월엔 병원 치료에 불만을 품은 40대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찌르고, 2012년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가, 2013년엔 20년간 진료해온 환자가 휘두른 칼에 중상을 입는 사건이 계속됐다.

이같은 극단적 범죄를 보고서야 의사에 대한 보복성 폭력의 심각성에 주목하게 됐고, 의사나 환자 모두를 위한 안정적 진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비로서 국회를 움직였다.

불행히도 이러한 희생을 치르고서야 2015년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인을 폭행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내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인폭력방지법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더욱 흉포화되는 양상이다. 2018년 세밑엔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칼에 흉부를 수 차례 찔려 사망했다. 주변 직원들과 간호사들에게 위험을 알리면서 본인이 도피할 시간을 놓쳐 사망에 이른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의료인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한껏 고조됐다. 무려 19건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처벌수위를 상향하고, 주취 감경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마련됐다. 

이런 노력에도 지난 6월 한 달 새 벌어진 경기도 용인의  환자 보호자 살인미수 사건과, 부산대병원 방화시도는 그동안의 입법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처벌 수위를 높였지만, 의료인에 대한 범죄를 크게 예방하거나 억제하지 못한 것이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그 허점 중 하나는 다름아닌 '반의사불벌죄'의 유지일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이와 관련된 논쟁은 2015년 의료법 개정 때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의료계는 개정 의료법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의 삭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환자단체들은 이를 삭제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형법상 중상해나 사망사건에 관해서는 반의사불벌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있어 실익이 크지 않다는 반론을 펴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막았다.

임세원 교수의 희생 후 쏟아져 나온 의료법 개정안 논의 때 반의사불벌죄가 삭제될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환자단체의 반대가 걸림돌이 되면서 불발됐다.  

의료현장에선 반의사불벌죄 유지로 사법당국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양자 간 합의를 유도하면서 개정 의료법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인폭력신고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의사 중에는 환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입고도 환자와의 관계를 고려해 고소까지 가는 것은 꺼리기도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지역사회에서 특히 이 조항이 걸림돌이다. 여러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사회의 특성상 스스로, 또는 주변의 권유로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반의사불벌죄 삭제 하나만이 의사에 대한 보복성 폭력을 100% 억제할 수 있는 만능키는 아닐 것이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등 처벌 강화 못지않게 환자단체에서 말하는 환자와 의료인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환자나 의료진을 위해서 응급실이든 진료실이든 의료가 행해지는 공간은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공간에서의 폭력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의사불벌죄의 삭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버스 기사 등 운전근로자에 대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를 제외해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고 있다. 진료실 의사와 환자의 안전도  버스나 택시 기사·승객의 안전만큼이나 중요하다.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환자단체의 전향적 자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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