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사불벌 제외·특가법 적용·신고의무화·무관용 원칙 전제
법·제도 정비됐지만 실효성 있는 적용 아쉬움…"엄정한 법 집행"
'환자-의료인 안전·건강 최우선' 공감대·폭력행위 근원적 접근 필요
응급실 폭력을 예방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2018년 응급실 폭행방지대책 시행 이후 각종 예방적 법·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실효성을 갖추려면 좀 더 세심하고 조밀한 장치가 더해져야한는 지적이 나왔다. 서말의 구슬이 있어도 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진단이다.
이와 함께 응급실 폭력뿐만 아니라 직장폭력까지 범위를 넓혀서 좀 더 확대된 의미의 폭력 방지에 나서는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폭력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도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대한병원협회는 7월 1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김원이·신현영 의원,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 등과 공동으로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첫 발제를 맡은 김원 제주한라병원 부원장(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응급실 폭행방지대책 시행 이후 현장 상황 및 실질적 지원방안' 발표에서 예방적 법·제도 지원 방향과 응급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실효성 있는 예방적 법·제도 개선측면에서 개정이 필요한 내용을 제안했다.
전체 응급의료법에서 '반의사불벌'을 제외하고, 현재 의료법·응급의료법에 산재한 폭력에 관한 법률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옮겨야 한다. 응급실 폭력 사범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아동학대와 같이 신고를 의무화하고 응급의료법 적용 대상에 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을 포함해야 한다.
환자가 주취자 혹은 응급의료법 위반자인 경우 응급의료제공 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 주취자는 심신장애자 불벌 규정도 적용하면 안 된다.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을 위해서는 응급실·외래의 환자안전관리료 신설하고, 응급실 안전관리 전담인력을 배치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응급진료 정보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응급실 폭력 대응을 위한 시설·인력·장비 등을 확보하고, 폭력 대응 지침 마련과 직원 교육 실태 등을 확인해야 한다.
경찰의 대응 원칙도 제시됐다.
손괴·업무방해 등에 대해서도 신고 접수가 필요하고, 신고 즉시 출동과 무관용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응급실 폭력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에 준한 구속수사 등을 담은 '응급의료현장 폭력행위 대응지침'을 시행해야 한다.
경찰 순찰 동선에 응급의료센터를 포함시키고, 피해자 보복 방지 대책도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 개선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응급실 안내 책임자를 배치하고, 환자·보호자 친화적인 응급실 환경을 조성한다. 왜곡된 응급실 이용 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를 강화하고, 응급실 특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한다. 폭력행위 예방을 위한 게시물을 제작해 관심을 갖도록 한다.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건강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긴 대기시간 ▲고비용 ▲불친절 ▲목소리 큰 사람부터 진료 ▲관대한 음주문화 등 왜곡된 응급실 이용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김원 부원장은 "응급실 폭력문제를 해결하려면 응급의료법을 위반할 경우 가중처벌·형량하한제·특정범죄가중처벌법·주취자 불벌 규정 미적용·건강보험 자격 박탈/할증제도 등을 통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라며 "피해자 보복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반의사 불벌 미적용, 신고 의무화와 함께 안전 인프라 확충, 의료진-환자 간 신뢰 배려문화 구축, 환자·보호자 친화적 응급실 환경 조성 등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성필 대한응급의학회 학술이사(연세의대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는 '응급실 폭행방지대책 관련 해외사례, 법적·제도적 개선 방안' 발제에서 응급실 폭력뿐만 아니라 직장폭력까지 범위를 넓혀서 좀 더 확대된 의미의 폭력 방지에 나서는 해외 사례들을 소개했다.
또 응급실 폭력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허용되지 않지만, 강력한 처벌을 부과하는 무관용 원칙이 실제로 폭력의 감소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견해도 전했다.
무관용원칙은 폭력이 일어난 다음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지 예방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만약 폭력 행위자들이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을 때도 무조건적으로 처벌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병원인증평가기구로 국내에도 알려진 JCI(국제의료기관인증평가위원회)에서는 올해 폭력 예방관련 관련 표준 규칙을 만들었다.
첫째는 병원 평가다. 병원은 해마다 직장 폭력 예방 프로그램과 관련된 작업장 분석을 실시하고,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작업장 폭력 안전 및 보안 위험을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조치를 취한다.
두 번째는 모니터링이다. 병원은 지속적으로 직장 폭력에 대한 모니터링, 내부 보고 및 조사를 위한 프로세스를 수립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교육 훈련이다. 병원은 경영진, 직원들에게 직장 폭력의 예방·인식·대응·보고를 위한 훈련, 교육, 리소스를 제공하고, 폭력행위자의 감정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신체적·비신체적 개입 기술과 응급상황 대응법을 교육한다.
네 번째는 사후 조치다. 병원은 작업장 폭력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정책과 절차를 지정하고, 폭력, 사건, 동향 분석을 위한 사건 보고 프로세스, 후속 조치, 피해자·목격자 등에 대한 지원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정성필 학술이사는 응급실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몇가지 제안을 이어갔다.
정성필 학술이사는 "응급실 폭력만을 따로 떼어서 어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처럼 직장폭력 또는 응급대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법들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응급실이나 병원에 대한 폭력도 같이 다루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일단 직장폭력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주기적인 직종별·폭력 종류별 현황 파악이 중요하다. 엄정한 법집행은 현장 대응 단계에서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성필 학술이사는 "폭력행위가 발생하면 안전을 위해 격리 조치도 필요하지만 다른 부작용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폭력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환경적 요인을 파악해 문제해결의 단초로 삼아야 한다"라며 "SNS를 통해 응급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존스홉킨스에는 'Speak2us'라는 사이트가 있다. 24시간 온라인·무료전화 보고시스템이다. 익명으로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훈련과 함께 경찰이나 보안요원이 현장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필요하다.
정성필 학술이사는 "신체적인 폭력이 일어나기 전단계에서 폭력 행위자의 공격성을 완화시켜 폭력을 예방하는 방법도 훈련해야 한다. 모든 경험별로 체계화하고 국가 표준을 개발하고 학생 교육과 연수평점에도 적용해야 한다"라며 "보안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쌍방 폭행 문제 해결, 폭력행위자 응급실 밖 퇴소 등 보안요원·경찰 등이 현장대응을 가능하게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응진 병협 정책위원장(순천향대부천병원장)이 좌장을 맡은 패널토의에는 이지향 병원응급간호사회 감사(삼성서울병원 파트장),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의사), 조인수 병협 경영부위원장(한일병원장),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 주진우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 김은영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등이 참석했다.
적극적인 경찰 개입과 주취자 폭력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지향 감사는 "폭력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정보공유, 직원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주취자의 폭력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신고 발생시 경찰의 적극적 지원과 대처가 절실하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전문 보안인력 배치와 난폭한 환자를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피해 직원 보호에 대한 명확한 프로토콜을 만들고 증거자료 수집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의료인의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진료거부권 행사가 가능토록 법적 보호장치 마련, 안내·상담 인력 투입, 응급실 환경 개선 등도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인식과 응급실 문화에 개선 문제도 짚었다.
윤명 사무총장은 "응급실내 폭행사건 근절에 대한 대국민적 참여와 문화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응급실 이용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나 의료진에 대한 교육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환자가 어떤 경우 응급실을 이용해야 하는지, 응급실내에서는 어떻게 환자를 분류하고 치료하게 하는지 등에 대해 사전에 설명되고 환자가 이해하고 있다면 불만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되고, 환자와 의료진의 이해와 소통이 원활하게 된다면 일정부분 응급실 폭행이나 폭언 등의 문제도 개선될 수 있다"라며 "응급실 폭력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과 의료기관·의료인의 노력, 정부의 관리·감독, 국회의 입법 재정비, 경찰·사법부의 엄정한 수사와 법집행 등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응급실 폭력은 의료인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사전 예방적으로 경찰 배치, 사후 대응 측면에서의 정부·지자체 개입도 제안됐다.
조진석 변호사는 "사전 예방적 측면에서 응급의료기관에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경찰력 상시 배치가 필요하다. 만약 경찰이 여의치 않을 경우 청원경찰 배치도 고려할 수 있다. 또 사후 대응적 측면에서 응급의료시설 및 응급의료종사자에 대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빠른 회복을 위해 당사자의 청구가 있을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우선 치료비용이나 수리비용을 대신 지급한 후 대지급자가 가해자에게 구상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응급의료 현장의 폭력행위로 인해 응급의료종사자가 상해를 입거나 응급의료시설이 손괴될 경우 2차적으로 다른 응급환자가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와 의료계 및 시민사회가 논의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고 실천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차제에 주취 폭력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고언이 이어졌다.
조인수 경영부위원장은 "응급실 폭력을 막기 위해 의료계는 수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 걸음씩이라도 진전되고 있다고 믿는다"라며 "응급실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주취, 진료결과, 대기시간의 문제다. 주취 폭력 문제만 해결해도 응급실 폭력의 50%를 해결하는 것이다. 가중처벌, 반의사불벌 제외를 적극 검토하고 이번 기회에 주취폭력 만이라도 해결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응급센터 보안인력 전문성 부족하다. 체계적 교육도 없다. 권한도 없다. 현실적 문제만 해결해도 응급실 폭력은 상당부분 줄어든다. 결국 비용 문제다. 응급실 환자 안전은 국가나 지자체가 감당해야 한다. 대국민 홍보 찬성한다. 응급실 이용에 관한 대국민 홍보 적절히 하면 충분히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자의 응급상황 관리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조동찬 기자는 "얼마전 응급실 폭력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는 데 3분진료, 의사 수 부족, 공공병원 부족 등을 원인으로 들었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섣부른 추론으로 근거를 삼아서는 안 된다"라며 "정신질환 측면에서 보면 의료진을 향한 폭력과 정신 건강으로 아픈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겹친다. 안인득 사건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응급상황 문제는 사정이 나아진 듯 하다. 정신건강상 응급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측면도 있다. 응급실 폭력 문제는 이렇게 현장에서는 어려운데 왜 해결이 안 될까. 이 부분은 많이 안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주취자의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진우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은 "응급실 폭력은 의료인뿐만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만큼 위험성에 공감하고 있다"라며 적극적 대응방법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응급실 진료 환경 개선과 인식 제고 방안도 언급됐다.
김은영 과장은 "응급실 이용 절차에 대한 사회 의식 개선, 응급실 진료환경 개선 등에 대해서는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응급상황에 대해 국민이 스스로 알 수 있게 하고, 어떤 응급실을 이용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지에 대한 홍보에도 주력하겠다"라며 "의료 현장의 이야기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근본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