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지역 응급실 없는 사각지대...정부·지자체 지원 없으면 존립 불가"
"고령층 비대면진료 불확실성 위험…3차 의료기관 확대 시 혼란 클 것"
"인구가 없다. 내가 개원의라도 안 올거 같다"
권성준 강원도 양양군보건소장은 최근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자리에서 "지역의료 인프라 약화는 황량한 인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지역의료 붕괴와 인구 소멸지역인 강원도 양양군보건소장을 맡아 약 1년 동안의 경험을 털어놨다. 권성준 소장은 한양대학교병원장과 대한위암학회장을 역임했다.
권성준 보건소장은 "양양군 면적(629㎢)은 서울(605㎢, 인구 949만명)보다 약간 넓다. 그런데 인구는 2만 8000명 정도다. 얼마나 황량한지 감이 오나?"라면서 "그중 1만명이 양양읍에 산다. 나머지 1만 7000명이 5개 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의사가 들어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2년 3월 기준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228곳 시·군·구 가운데 49.6%(113곳)에 달한다. 양양군도 여기에 속한다.
현재 양양군에는 병원이 없고, 응급실과 입원실이 없다. 응급 및 입원 환자는 속초나 강릉으로 나가야 한다. 양양군보건소의 의료 인프라로는 코로나19 대응도 벅차다. 양양읍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6곳에 불과하다. 중앙외과·성모의원·상명내과·양양정형외과가 호흡기환자진료센터로 지정,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권 소장은 "소규모로 혼자서 하는 의원이기 때문에 아프면 속초는 25~30분, 강릉 50~60분 걸린다. (진료에) 한계가 있다"며 열악한 의료 현실을 짚었다.
"인근 속초의료원 역시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면 거의 나가고 있다. 어렵게 인제군·고성군·속초시·양양군 4곳에서 군비와 시비를 모아 산부인과 1명, 소아청소년과 1명을 모셨다"면서 "문제는 아이들이 밤에 열이 나면 응급실을 가야 하는데 의사 혼자 풀 근무를 해야 한다. 잠을 제대로 못자 건강 악화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의료장비가 없다보니 주민들은 원정 진료를 각오해야 한다.
권 소장은 "애를 여기서 낳을 수가 없다. 다른 지역에서 낳고 와야 한다. 가까이에 산부인과가 없다보니 산전 진단도 받기 어렵다"면서 "모자보건협회 춘천지구에서 2주에 한 번 양양군보건소로 산부인과 전문의와 초음파 장비를 실은 대형버스를 보내고 있다. 1층에 있는 내 진료실을 내어 드리고 있다"고 지역의료의 현실을 전했다.
"지역의료가 자리 잡으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시스템과 적정인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영에 문제가 될 만큼 너무 환자가 적은 곳은 절대 큰 병원이 들어올 수 없다"고 밝힌 권 소장은 "양양에 대학병원? 못들어 온다고 본다. 의원도 들어오기 힘들다. (대학병원이 들어오면)양양군민 모두가 행복하겠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부족한 지역의료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비대면 진료'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으로 봤다.
권 소장은 "비대면 진료 얘기 나온지 7~8년 됐다. 근본적으로는 '사고'에 대한 걱정이 크다"면서 "지역 특성상 고령층이 상당히 많다. 환자가 잰 혈압이 정확한지 확인할 수가 없다. 환자의 말만 믿고, 불확실한 진료를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3차 의료기관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시행하면 의료시스템은 상당히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비대면 진료는 1차 의료기관과 개인병원에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는 대학병원으로 번질 수 있다"면서 "이러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의약분업 예외라는 법의 맹점을 활용, 약국이 번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권 소장은 "양양군에 모두 12개 약국이 있는데 양양읍에 6개, 나머지 6개가 강현면에 있다"면서 "강현면은 의료기관이 없는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라 의사의 처방전이 없어도 약사가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속초시와 인접한 강현면 제일 번화가에 6개가 쭉 붙어 있다. 주문진도 그렇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라는 점을 활용해 약국에서 항생제를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지역 보건소장을 맡아 활동한 지난 1년에 대한 소회를 묻자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옛날에 대학병원 있을 때는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시간을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 진료 방식이 바뀐 것이 가장 기분 좋다"면서 "경로당 순회 강연도 애착이 간다. 공식 임기가 2년이다. 연장 여부는 고민해야겠지만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