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활용 병상 제도 폐지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망상
공동활용 병상 제도 폐지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망상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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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정책과 관련해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구호보다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다. 의협, 보건복지부, 언론, 의료정책학자 모두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말한다. 의료분야의 만악(萬惡)이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든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 점유율은 25.8%에서 28.2%로 증가했고, 종합병원의 점유율은 23.8%에서 27.0%로 증가했다. 반면 병원의 점유율은 14.9%에서 14.0%로 감소했고, 의원의 점유율은 35.5%에서 30.8%로 감소했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난맥상은 1998년 의료보험통합에서 시작했다. 다수 보험자(조합)가 하나의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로 통합되고 동시에 진료권 개념이 폐지됐다. 환자가 다른 지역(진료권)에서 진료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어졌다. 게다가 2004년 KTX가 개통된 후 환자들이 서울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의료분야의 지속적인 규제 강화도 대형병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규제는 비용이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그 비용을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대형병원이 유리하다. 의료분야 규제는 갈수록 쌓이고 한 번 만들어지면 거의 없어지지 않는다.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점점 더 그 규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의료전달체계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전달체계라는 개념으로 논의되는 것은 영국 NHS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에서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인 '지역화'와 '단계적 의료이용'이 가능한 이유는 일차진료의(GP)가 확실하게 문지기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NHS 체계에서 일차진료의 승인 없이 환자는 상급병원에 갈 수 없다. 

반면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는 문지기 기능이 없다. 요컨대 영국식 의료전달체계를 이상향으로 보면서 그 핵심인 문지기 기능은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왜 이상향이 구현되지 않느냐고 떠드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는 '공동활용 병상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기관 자체 병상과 다른 의료기관의 병상을 합쳐 일정한 병상 수를 충족하면 CT, MRI 설치를 허용하던 것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명분은 병상을 빌려주며 돈을 주고받는 비리를 막고 CT, MRI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CT, MRI가 남용된다면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일관된 기준을 정립해 대응해야 한다. 소위 문재인 케어 때문에 CT, MRI가 남용되니 그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영국식 의료전달체계가 그리 좋다면 문지기 기능을 확실하게 도입하는 게 합당하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일차의료기관의 손발은 묶고 대형병원만 날개를 달아 주는 정책은 합당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역행해 온 그간의 의료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지기 기능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일차의료기관으로 돌려보내려면 환자가 믿을 수 있는 일차진료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이를 목표로 하는 정책은 거의 전무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오히려 보건복지부는 공동활용 병상 제도를 폐지해 일차의료기관의 손발을 묶겠다고 한다. 설상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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