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장이 응급처치 범위 규정…의료법·응급의료법 충돌
의료전문가·시민사회 의견 수렴 없이 통과 강행…입법 절차·원칙 무시
보건복지의료연대 "간호사 병원 밖 응급의료 위법·응급구조사 업무 침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19법)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보건복지의료연대)는 14일 성명을 통해 "119법은 응급의료 업무 능력을 갖추지 못한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에게 응급의료행위를 허용하는 위험한 법안이자 응급구조사 직군을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22년 9월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소방청장이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에도 불구하고 구급대원의 자격별 응급처치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19법)'을 통과시켰다. 119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119법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119구급대원이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업무범위의 제한으로 인해 적절한 응급조치를 할 수 없고, 업무범위를 벗어난 응급처치 시 민·형사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19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현행 의료법 및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상 의료기관 밖에서 응급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간호사'를 소방공무원으로 대거 채용한 소방청의 과오를 법률 개정을 통해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곡을 짚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19법 개정 과정에서 유관단체와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한 119법 개정안 대안은 서영교·최춘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중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1조'와 '응급처치의 범위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의 응급처치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를 삭제, 타 의료관계 법령과 충돌하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19법 개정안에는 소방청장이 '응급처치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의료행위'의 범위는 물론 보건의료직역별 업무범위의 '주체' 및 '절차'와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19법 개정안 대안 심의 과정에서 소방청의 의견만 청취했을 뿐 의료전문단체와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9월 21일 법안심사 제2 소위원회를 통과시켰으며, 바로 다음 날인 9월 22일 전체회의 의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개정안의 주요 문구를 삭제한 '중대한 변경'이 발생한 경우에는 반드시 재검토와 논의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특정기관에 의해 좌우되어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입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했다"면서 "국회는 중대하게 변경된 법안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관련 의료전문단체와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고, 변경된 법안이 실체적으로 불러올 결과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19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의료직군의 업무영역을 침탈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119법 개정안은 제안 이유와는 달리 소방청의 과오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개정안 발의 당시부터 제기된 간호사의 무분별한 사회 진출과 광범위한 타 보건복지의료직군 업무영역 침탈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보건복지의료인력 간 협업 및 상생 가능성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간호인력의 지속적 의료기관 밖 유출로 인해 필수의료 분야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의료법 등 의료관계법령 체계를 무너뜨리면서 119구급대원 간호사에게 업무범위의 무분별한 확대라는 특혜를 제공하는 것은 보건복지의료직역 간 극한 대립이라는 현 상황과 간호인력 유출 현상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119법 개정안은 응급의료 현장에서 응급처치 업무를 맡고 있는 응급구조사 직군을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응급구조사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재난 사건을 계기로 취약한 '병원 전 응급의료'와 후진적인 '소방구급체계'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신설됐다. 응급구조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6조(응급구조사의 자격)에 근거, 국가시험을 합격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인증을 받아야 한다. 관련 법령에 따라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상담·구조 및 이송 업무와 의료기관 안에서 응급처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문제의 발화점은 소방청이 현행 의료법 및 응급의료법과 학문적 체계에 따라 간호사가 병원 밖 응급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인력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최근 5년(2015∼2020년) 동안 약 2000여 명의 간호사를 소방공무원으로 대거 채용하면서 촉발됐다.
응급구조사협회는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의 병원 밖 응급의료행위는 현행 법률 상 '불법'의 소지가 있고, 무면허 의료행위(기관 내 삽관 등)로 인해 응급환자에게 '치명적 위해(危害)' 및 '다양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응급구조사 직군을 교묘하게 이용, 이해단체의 의견 수렴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119법을 개정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고 국회를 기만했다는 것이 응급구조사협회의 주장이다.
응급구조사협회는 "119법은 고도의 의학적 행위를 포함하는 '응급처치' 행위를 학문적·전문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못한 간호사에게 허용하려는 것"이라며 "그간 고통받은 응급구조사 직군에 대한 철저한 무시이며, 폭력이고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응급구조사협회는 "보건의료직종 간 협업 구조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응급의료 현장에서 헌신한 응급구조사 직군의 직업적·학문적 특수성을 완전하게 무시하는 것을 넘어, 종국에는 응급구조사 직군의 사회적 '말살'을 초래한다"며 "간호사가 구급대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응급의료행위를)허용하는 것은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공박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해당 법안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성급하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문제점을 보완·검토해 구급대원을 통해 제공되는 응급의료행위가 예측 가능함은 물론 의학적 안전성을 담보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응급구조사 직군에 대한 사회적 말살을 초래할 소지가 다분한 자구의 수정 및 삭제도 요구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