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다학제팀 '재택의료 기본료' 월 14만원 '불충분'
시범사업 참여 의원 20곳 불과…적용 가능한 한국형 왕진사업 모형 제시해야
정부가 거동 불편 노인 등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몸이 불편해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다만 '왕진 의사'로서 그간 여러 환자를 만나 왔던 필자로서, 이번 시범사업이 소위 '정책 실험'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시범사업 규모나 내용은 물론 제도의 활성화를 고려하면 본사업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 계획과 내용은?
보건복지부는 거동 불편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시행을 결정하고, 오는 11월 4일까지 참여 지방자치단체(시군구)와 의료기관을 모집하고 있다.
시범사업은 오는 12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1년간 진행할 예정이다.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이른바 '의원급 왕진사업' 제도화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 내용은 이렇다.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재가 장기요양 수급자(1∼2등급 우선)를 대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와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면, 해당 의원에 기존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수가와 함께 재택의료 기본료를 지급한다.
필자를 포함한 의료계는 그간 의료적 수요가 큰 1∼2등급 재가 장기요양 수급자에 대한 왕진 활성화 필요성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그것이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홀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목적에 들어맞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환자의 의료접근성 제고와 장기요양보험의 질 개선을 위한 이번 시범사업을 환영한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다학제팀 월 14만원 책정…수가 불충분
다만 그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자면 아쉬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첫째, 수가의 적절성 문제다.
이번 시범사업에 추가된 핵심 요소는 재택의료 기본료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사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해당 수가가 사업 활성화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재택의료 기본료 수가를 환자당 월 14만원으로 정해 발표했다. 실제 의료기관에서 이를 지원받으려면 적잖은 인력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해당 수가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에 따르면 재택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원은 반드시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팀'을 구성해야 하며, 각 구성원이 매월 정해진 서비스 내용과 횟수를 채웠을 때만 해당 수가를 받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의사는 월 1회, 간호사는 월 2회 이상 가정방문을 해 장기요양 수급자 진찰과 복약관리, 욕창·경관영양·정맥영양 관리 등의 의료와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돌봄 서비스 연계 등으로 환자가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월 14만원의 수가가 왕진에 투입된 인력이나 시간을 고려한 적정한 보상이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장의 개원의들이 다른 진료를 제치고 왕진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에 현실적인 고민을 제안한다.
시범사업 의원 20곳 뿐…제도 활성화 의지 있나?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범사업의 규모다.
정부는 특정 지역과 의료기관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지자체가 지역 내 참여 희망 의료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은 뒤 보건복지부에 대리로 사업참여를 신청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선정 의료기관 규모는 불과 20여 곳에 불과하다.
시범적인 성격의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장기요양급여 수급자는 95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시범사업 대상으로 우선 제안된 1∼2등급의 거동 불편 수급자의 숫자는 13만 명을 넘고, 이 가운데 시설 입소자를 제외한 자택 거주자는 6만 1000여 명에 달한다.
고작 전국 20곳의 의료기관에서 이들 중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의 부름에 과연 응답할 수 있을까?
더욱이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 기관을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한정하면서도, 공공의료기관 즉 지방의료원과 보건소·보건의료원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들을 포함해 20개 의료기관으로 시범사업 대상을 지정한다면, 실제 시범사업 의원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대로라면 한국형 의원급 재택의료 모형을 찾는다는 시범사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노인의 복합적 욕구를 고려한 의료-요양의 연계 서비스를 마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1년간 시범사업 후 평가를 거쳐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실제 적용이 가능한 모형으로, 실제 의원들의 참여가 가능한 모델로 시범사업 형태를 갖췄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에도 제안한다. 노인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부담 완화와 취약계층 의료 접근성 향상의 측면에서 왕진 활성화는 시대적 과제다. 제대로 된 시범사업의 틀이 마련된다면, 의료계도 적극 참여해 한국형 왕진사업의 올바른 모형을 제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