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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Quarantine을 아시나요
Quarantine을 아시나요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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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Quarantine'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의료인은 '검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방역전문가라는 역학자나 감염병학자도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실제로 '검역법'의 영문 명칭은 'Quarantine Act'다. 따라서 검역은 Quarantine이고 Quarantine은 검역이라는 답변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 법령에 따라 감염병 예방 책무를 담당하는 CDC는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Isolation'은 감염병 환자를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것(Isolation separates sick people with a contagious disease from people who are not sick). 'Quarantine'은 감염병 환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염병에 노출된 사람을 분리하거나 이동을 제한하는 것(Quarantine separates and restricts the movement of people who were exposed to a contagious disease to see if they become sick).

위 정의에 따르면 'Isolation'은 격리로, 'Quarantine'은 감시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감염병 환자가 아닌 사람은 'Isolation(격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감염병에 노출된 사람은 'Quarantine(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Quarantine'은 40일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quaranta giorni'에서 유래됐다. 중세 흑사병이 창궐하자 유럽의 도시국가들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흑사병 증상이 있는 사람이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로 들어올 때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후에 흑사병 증상을 보이고 흑사병이 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문제는 정말 건강한 사람과 건강해 보이지만 흑사병 환자가 될 사람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베니스는 선박이 오면 40일 동안 바다에 머물르게 하고 흑사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지 감시한 후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 

베니스가 감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40일은 현대적 의미에서 질병의 잠복기(incubation period)에 해당한다. 이후 인류는 질병마다 잠복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검역법령에 따르면 콜레라는 5일, 에볼라바이러스는 21일, 페스트는 6일로 잠복기가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역법 제16조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장은 검역감염병 환자를 '격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17조는 질병관리청장은 검역감염병 접촉자 또는 위험요인에 노출된 사람을 '감시하거나 격리할 것'을 지자체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 검역법은 감염병 환자는 물론 감염병에 노출된 사람도 격리할 수 있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역정책을 시행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어떤 한계가 있다. 미국 CDC가 제시하는 'Isolation'과 'Quarantine'의 정의에는 감염병에 대처하는 원칙이 살아 있다. 감염병에 노출된 사람은 잠재적인 위험요인이 있다고 해도 'Isolation'의 대상이 아니라 'Quarantine'의 대상이라는 원칙이 살아 있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 에볼라가 퍼지고 전세계적으로 공포가 극심해졌다. 미국에서는 서아프리카에 다녀 온 의료인에 대해 21일간 격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서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 후 미국으로 돌아온 간호사 케이시 히콕스(Kaci Hickox)에 대하여 메인 주 법원은 격리를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케이시 히콕스에 대해 외출도 가능하나 다만 대중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고 자발적 모니터링을 하는 정도의 감시만 요구했다. 'Isolation'과 'Quarantine'의 분별이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판결이었다.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감시와 격리라는 분별이 있다면 방역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갈 때 개인의 기본권 제한에 신중함을 유지하고 비례의 원칙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역법은 'Quarantine'을 검역이라고 번역하고 'Quarantine'의 근본 정신은 무시해 버렸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 방역정책을 보면서 기본권 제한의 신중함은 어디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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