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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학병원 교수들

위기의 대학병원 교수들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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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언제 업무 연락이 갈지 모르니 항상 전화기는 켜놓고 계셔야 합니다. 

혹시 급한 일이 있어서 처리하러 나오게 되시면 교통비는 드립니다." 

만일 근로 계약을 하는데 이런 직장이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 물어보면 무슨 그런 직장이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구직자의 입장이라면 급여나 다른 근무 조건이 매우 좋지 않은 이상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법 전문가는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근로기준법상의 문제는 없는지도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민원마당 홈페이지의 답변을 보면 아래와 같은 말이 써 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 즉, 휴게시간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언제든지 근로제공을 하여야 할 대기상태에 있다면 근로시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품을 판매하는 근로자가 손님이 없어 대기하는 시간, 출근해서 그날그날의 업무가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지는 근로자가 회사의 업무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근로시간입니다. 식사시간이나 수면시간으로 정해져 있어도 사용자의 지시나 감독을 받아서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거나 손님이 오거나 민원인이 찾아오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휴게시간이 아니라 근로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너무 일상화된 곳이 있다. 병원이다. 얼마 전 타 대학병원에서 외과계 교수를 하는 의대 동기 친구들과 식사를 했다. 한 친구는 3일에 한 번 응급 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화 콜에 따른 수당이나 금전적 보상은 전혀 없다.

그러다가 한 달에 몇 번은 응급수술을 하러 나와야 한다고 한다. 수술 준비부터 수술 후까지 관리까지 하다 보면 밤은 거의 샌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병원에 직접 나오는 경우 교통비로 5만원을 준다고 한다. 당연히 다음날 수술과 외래는 원래대로 해야 한다.

다른 한 친구는 전공의가 없어서 병원에서 직접 당직을 선다. 평일에 근무 끝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생기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 당직 수당은 20만원. 참고로, 의료관리학 교수들은 평일 낮 시간에 복지부나 공공기관에서 개최하는 회의에 가서 한두 시간 참여하면 자문료가 20-30만원이다. 

며칠 전 월드컵을 보았다. 포르투갈 전을 새벽 두세시까지 보고 나니 리듬이 깨져서 다음 날 무척 피곤했다. 다행히 휴일이었다. 며칠 후 새벽 네 시에 브라질 전을 보려고 알람을 맞췄는데, 도저히 일어나지 못했다. 40대 후반,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아무 때나 머리를 붙이면 자는 나이는 지난 지 오래고, 조금만 잠을 못 자도 다음 날이 힘들다. 저렇게 당직을 서고 콜을 받으면서 근무하는 동기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힘들어한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한 위치에 있는 의대 교수들이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전공의 지원에서 힘든 전문과를 기피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같은 과라고 해도 힘든 분과에는 임상강사 지원도 하지 않는다. 개원가에서 유용한 내시경을 배우기 위해 소화기내과는 임상강사지원자가 넘쳐나지만, 순환기 내과, 특히 중재시술 분야는 지원자가 별로 없다.

기피 분야의 교수들은 그렇다고 응급환자를 안 볼 방법도 없고, 밀려오는 환자들을 거부할 방법도 없다. 그나마 전공의는 주 80시간이라는 규정이라도 있지, 임상강사나 교수들은 그 공백까지도 메워야 한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몸을 갈아넣어 더 많은 환자를 본 결과는, 신체적,·감정적 소모, 그리고 때로는 법적 책임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렇다고 금전적·비금전적 보상이 좋은 것도 아니다. 펠노예라고 자조하는 임상강사 처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전임 임상교수들 역시 하는 일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다. 근무시간과 강도를 고려하면 일반 사무직 근로자들보다 오히려 낮은 것 같다.

전임 교원이 되면 다소 나아지지만, 주 5일제에 각종 휴가와 복지가 좋은 대기업이나 금융권 친구들에 비해서 딱히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변호사 등 타 전문직 친구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교수들의 부수입이었던 강의료, 자문료 같은 것은 강화된 규제로 인해 줄어들고, 해외 연수나 학회 참석 같은 자기 계발 기회도 진료 압박으로 점점 적어졌다. 실제로, 재작년 시행된 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근로시간이 너무 길다는 응답은 66.3%, 근로 대비 보상이 부족하다는 답변은 64.4%, 개인적인 성취감이 저하된다는 응답은 92.4%였다. 특히 이러한 응답은 젊은 교수들일수록 높았다. 

개인은 항상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 희망적인 미래를 보지 못하는 젊은 교수들이 떠난다.  이미 몇몇 과는 교수를 충원하지 못한다. 힘든 과부터, 지방부터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전공의-임상강사-교수의 악순환이다.

대학병원이 무너지면 일차의료에 좋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중증환자나 응급환자에 대한 상급병원의 백업이 되지 않으면 일차진료의사들도 안심하고 진료를 할 수 없다. 

의대 교수들이 힘들어진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저수가로 인한 병원의 지급 여력 감소, 의료 소비자주의로 인한 환자들의 기대 증가, 각종 규제의 증가 등 외부적 요인도 분명 있다. 그런데, 몇 가지는 정말 궁금하다.

비전임 교수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누가 정한 것인지, 당직이나 콜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누가 결정한 것인지, 다른 대학 교수들은 7년에 한번 가는 해외연수는 왜 의대 교수는 1년만 가는 것인지, 그나마도 왜 없애려고 하는지 등. 의사들 스스로도 의사들을 제대로 대우해주려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의사들을 제대로 대우해달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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