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이세돌을 비롯한 몇몇 분야의 인간 대표들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이 몇몇 분야에서 조만간 인간을 대체할 기세였다.
의료계 역시 인공지능의 공세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름이 알파고가 아닌 왓슨으로 다를 뿐 인공지능 기술의 인간 의사 대체는 시간 문제일 듯 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당장이라도 인간 의사를 대체할 것 같았던 인공지능 왓슨은 현실 의료현장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찾지 못한 채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서성욱 성균관의대 교수는 현재 의료분야에서의 인공지능에 대한 낙관론과 설레발이 수그러들면서 기술적인 한계를 진단하고 돌파구를 찾는 과정으로 돌입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의료분야에서의 인공지능 기술의 진보는 전적으로 의사에게 달려있다고 확신한다. 왓슨이 현실 의료현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를 IT 기반 딥러닝 기술자들이 의료를 몰랐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성욱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희귀암센터장을 맡은 정형외과 전문의이면서 삼성융합의과학원 의료인공지능연구소 소장을 맡을 정도로 인공지능과 의학의 융합에 관심이 크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의료인공지능 개발 및 사용 가이드라인 정립'을 지난해 발표하기도 했다.
서성욱 교수를 12월 20일 만나 의료AI의 현실 적용 가능성과 현재 수준, 남은 과제 등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일문일답>
최근 조명받은 의료AI는 어떤 개념의 인공지능을 말하는 건가?
의료AI는 지식 기반 소프트웨어와 비지식 기반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프로그램으로 나눌 수 있다. 지식 기반 소프트웨어는 정해진 룰대로 태스크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BP가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설 때 EKG 알람이 울리는 초기단계의 의료AI라고 할 수 있다.
지시한 사항만 완수하는 형태로 의료현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비지식 기반 소프트웨어는 이른바 스스로 학습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진정한 의미의 의료AI라 할 수 있다.
더욱 구체적인 비지식 기반 소프트웨어 사례를 들자면?
인간 의사는 암의 단계를 1~4기 정도로 나눠 진료하고 예후를 가늠하지만, 의료AI는 보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고 분류해 더 세분화된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융합의과학원 의료인공지능연구소가 현재 개발한 의료AI가 희소암 환자의 치료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인간 의사와 치료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인간 의사가 치료한 예후보다 인공지능AI가 결정하고 인간 의사가 검증한 예후가 더 좋은 결과를 보였다. 인공지능AI가 더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세분화된 적정 치료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럼 의료AI가 조만간 인간 의사를 능가하는 것인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더 걸릴 듯 하다. MD앤더슨과 메모리얼슬론케터링이 연구에 참여한 의료 인공지능 개발 사례를 보면, 질병을 진단하고 적정한 치료법을 찾는 정도가 인간 의사의 50%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IBM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의 IT 기업은 IT분야 인공지능처럼 의료AI 개발에도 뛰어들었지만 최근 연구사업을 접은 것으로 안다. 의료 분야에서의 특수성을 간과했기 때문으로 본다.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한 의료AI를 개발 단계부터 기획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일단 진단 정확성 등을 더 높여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스스로 학습하는 의료AI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단계부터 탑재해야 하는 기능이 있다. 이를테면 설명 기능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처방을 내렸는지, 혹은 이런 치료법을 왜 결정했는지 의료 영역에서는 환자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한다. 현재 의료AI는 인공지능의 특성상 결정은 내리지만 그 이유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때를 생각해보면 알파고가 잘못 둔 수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 능력을 뛰어넘어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한 후 내린 올바른 수였다는 것을 대국이 끝난 후 알 수 있었다. 의료영역이라면 알파고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중간 과정을 그때그때 설명해야 하는데 현재 의료AI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 설명을 내릴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바로 그거다. 빠른 속도로 엄청난 빅데이터를 분석해 올바른 결론을 낼 수 있지만 중간중간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인간 수준에서 설명하는 능력이 프로그램에 없다. 이게 생각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그럼 아직 의료AI가 의료현장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에는 이르다고 볼 수 있나?
그렇다. 당장 인간 의사를 대체할 것처럼 얘기 되지만 적지않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 개발속도는 깜짝 놀랄 정도로 빨라 시간이 단축될 가능성은 크다. 특히 많은 인공지능 개발 업체나 연구소 등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권을 포기하고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어 빠른 발전 속도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의사 즉, 의료전문가가 의료AI 개발에 얼마나 개입하고 기여할 것인가에 의료AI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본다.
의사가 의료AI 개발에 어떻게 관여한다는 건가?
의사가 관심을 두고 통섭의 길로 나가야 한다. 젊은 의사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자를 불러 의사와 공동 세미나도 개최하고, 의료AI 개발에 관심이 큰 네이버나 카카오 연구자도 함께 초청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개발자가 의료의 현실, 위험도, 의료 문화를 알아야 의료AI 개발이 성공할 수 있다.
의료AI가 현실화되면 인간 의사는 이제 없어지는 건가?
그걸 걱정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다. 정말 그런 시기가 온다고 해도 굉장히 먼 미래의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체보다는 보완 혹은 상생의 길을 갈 것 같다. 의사는 의료AI를 활용해 더 정확한 진단과 적정한 치유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향후 계획은?
최종적인 목표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검증된 의료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분석을 통해 특이 항체 약물을 개발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암 유전자 변이를 더욱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선택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이다.
중간 목표로는 의사와 인공지능 개발자, 투자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우선 의사가 의료AI를 바로 알고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운영하겠다. 관심있는 의사들의 많은 참여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