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정책 설계 때 의사 대표 단체 의협에 주도권 부여
갖가지 위험, 대처·관리, 안전성 이슈 가장 잘 아는 전문가 맡아야
재진 한정·위치 기반·전담 금지·만성질환 중심·면책 규정 등 명문화
"대면진료는 대원칙이며, 안전성을 먼저 확보하고 비대면 진료 정책 설계 시 대한의사협회에 주도권을 부여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가시화 되면서 의료계를 중심으로 필수 조건에 대한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하고 있다. 제도화 초기 잘못된 방향을 설정하면 이후엔 예상된 부작용이 발생해도 폐해를 바로잡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발행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 연구보고서를 통해 비대면 진료의 대원칙, 시행 조건-진료 형태, 플랫폼, 제공 방법, 대상 환자 및 환자 위치, 제공 주체, 허용 질환, 의료서비스 형태, 약 처방과 배송, 지원 수가, 법적 책임 소재, 개인 정보, 의사-환자 간 사전 관계, 의사 환자 신분 확인 등 제도화 전 도입할 과제와 예상되는 문제점을 촘촘히 살폈다.
비대면 진료 대원칙으로는 ▲대면진료가 원칙이며 비대면 진료는 보조적 수단 ▲안전성 확보 위한 최대한의 조치 이후 시행 ▲정책 설계 시 의협에 주도권 부여 등 세 가지가 제시됐다.
오랫동안 안전성이 검증된 대면 진료가 대원칙이 돼야 하며, 비대면진료는 대면진료가 어려운 상황에 한정해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안전성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비대면 진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들, 대처와 관리, 안전성 이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의협이 정책 설계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원칙을 기반으로 전제되는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에는 어떤 게 있을까.
먼저 초진·재진 등 진료 형태는 안전성이 확인된 재진부터 시행해야 하며, 주기적 대면 진료(대면-비대면-비대면-대면) 역시 제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관리에 대한 의협의 역할 부여도 중요하다. 현재 국내 플랫폼들은 민간이 개발, 관리, 운영하지만, 별도로 정부 인증을 받지 않다보니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의협이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관리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보고서는 1안으로 공공 비대면 진료 플랫폼 자체 개발 및 운영 관리, 2안으로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의협이 인증하고 비대면 진료 플랫폼 관리·가이드라인 개발 등을 제시했다.
비대면 진료 제공 방법으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해 실시간 비대면 화상(실시간 음성+화상)이 제시됐다. 다만 디지털 격차 해결을 위해 제한적으로 전화 등 대체방안 마련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대상 환자 및 환자 위치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위치와 상관없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할 경우 의료전달체계 전반에 왜곡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료기관 위치 제한도 고려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제공 주체로는 일차 의료기관을 꼽았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증에 대한 진단·처방, 대면진료 결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야 하기 때문에 일차 의료기관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비대면 전담 의료기관 금지 규정이나 횟수 제한도 필수적이다. 의료비 재정에 미칠 부담을 줄이고 국민 건강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비대면 진료 전담 금지를 명문화하고, 비대면 진료 횟수 제한을 보험 적용 여부를 통해 모색해야 한다.
보고서는 비대면 진료 대상 환자를 섬, 산간벽지, 원양어선, 군, 교도소, 중증장애 환자 등과 같이 거동이 어려운 환자로 한정하고, 환자 위치 지역내 일차의료기관에서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며, 비대면 진료 전담 금지 및 횟수 제한을 제안했다.
대상 질환으로는 고혈압, 당뇨, 재활 등 만성질환이 꼽혔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일부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향후 전문가 단체의 심의·평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질환 추가를 고려해야 한다.
진료 내용으로는 지속적 관찰(원격 모니터링), 상담·교육(원격 상담, 건강정보·교육), 실시간 진단·처방 등을 모두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하되, 재정 부담을 고민해야 한다.
약 처방도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약류, 오남용 우려 의약품 등과 함께 비대면 진료를 통해 처방할 수 있는 의약품 제한도 필요하다.
비대면 진료 수가를 대면진료 보다 높게 책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낮은 대면진료 수가 수준, 환자에게 최적의 가치 제공, 늘어나는 진료 시간, 비대면 진료 의료시스템 구비·관리, 운영 비용, 위험 관리 등에 대한 비용 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1안으로 '대면진료 150%+가산', 2안으로 '대면진료 150% 가산'을 제시했다.
법적 책임 문제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의료인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책임 면책 규정을 마련하고, 면책 사유도 명문화해야 한다. 보고서는 의사 통제 범위 밖 과오에 대해 의사의 법적 책임소재를 면책하고, 책임 면책 사유의 입법, 사후 대비책으로 의료배상공제조합 가입 등을 제안했다.
비대면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의료데이터 접근성·의료데이터 소유권 등에 대한 법 정비 및 지원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보고서는 의협 주도의 별도 가이드라인 개발, EMR 인증제도 운영, 의료데이터 접근성 및 소유권에 대한 법적 규정화, 진료기록 제공에 대한 보상 방안 마련 등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의사-환자 간 사전 관계, 의사-환자 신분 확인 등도 필수 조건으로 제시됐다. 환자 안전성 확보와 의료 질 보장이 목적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김진숙 책임연구원은 "비대면 진료 시행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들을 국내외 정책 사례 및 현황, 각계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논의할 수 있는 제안을 마련했다"라며 "이 연구에서 제안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안)은 의협 내 합의된 내용이 아니며, 실제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정부 협상 및 논의를 통해 수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의협은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비대면 진료(원격의료)에 대해 원론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사실상 방대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경험하게 됐고 우리나라도 1500만 건이 넘는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심각 단계에 한 해 초·재진, 의료기관 종별 제한이 없는 가운데 실시된 비대면 진료에서 의원급이 1393만건(87.9%)로 가장 많았고 상급종합병원은 30만 건(1.9%)으로 가장 적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비대면 진료 법제화 추진을 앞두고 국민 건강과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추후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 이 보고서가 소중하게 쓰여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