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특집] 현행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 및 개선방안 모색(3)
올해는 새정부의 출범과 미래 신종감염병 대응체계 논의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보건의료 분야의 거버넌스 개선과 더불어, 해묵은 난제의 해결방안 모색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계간 의료정책포럼> 2022년 연중 특집 세션의 주제로 '의료전달체계'를 선정했다. [의협신문]은 의료계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종합적인 시각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계간 의료정책포험>에 실린 특집 원고를 게재한다.
[의협신문]은 첫 번째 '현행 의료전달체계, 의료기과 기능의 현황 및 문제점' 세션, '의료전달체계의 현황과 외국의 경험' 두 번째 세션을 소개한데 이어, 마지막으로 '현행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방향 및 개선방안 모색' 세션을 소개한다.
<글싣는 순서>
1. 더 나은 의료전달체계를 위한, 그간의 노력과 나아갈 방향
-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2. 초고령사회와 의료돌봄 개혁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3. 영국의 새로운 의료시스템 구조: 통합의료시스템(Integrated Care System, ICSs)
- 오영인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20년 815만 명, 2024년 1,000만 명, 2049년 1,901만 명까지 증가한 후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구성비도 2020년 15.7%, 2025년 20%, 2035년 30%를 넘어서고 2050년에는 40%를 초과할 전망이다.
그러한 가운데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22 상반기 건강·노인장기요양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강보험 진료비는 50조 845억원으로 2021년 상반기의 44조 8823억원 대비 1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22년 10월. '2022년 상반기 건강·노인장기요양보험 주요통계')
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케어)'이 시작되기 이전인 2017년 상반기 진료비 33조 9858억원과 비교하면 47.4%나 급증한 것으로, 이로 인해 2023년 건강보험 수지는 1조 4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9년 소진되며 2040년 예상 누적적자가 680조원에 이르게 될 것으로 예측되어서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재정위기가 오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단지 인구 고령화만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의 의료비 추이를 보면 국가 보건의료정책 또한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는 1970년 2.6% (OECD 평균 4.6%)에서 2000년 3.9%(OECD 7.1%)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노인 인구 비율이 2010년 10.8%에서 2020년 15.7%로 증가하면서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2010년 5.9%에서 2020년 8.4%로 10년 만에 42.4% 증가했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의료비 급증 추이와 다르게 노인인구 비율이 1987년 10.9%에서 1997년 15.7%로 증가하는 동안 의료비는 6.4%로 동일했다.
인구 고령화는 노인의료비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러나 고령화와 더불어 불합리한 의료전달체계(의료이용체계) 또한 건보재정 위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의료 및 돌봄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강력한 정책을 펴지 않으면 '건강·장기요양 보험체계의 붕괴'는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개혁을 시작해야만 한다.
■ 왜 의료·돌봄 개혁인가
지난 9월 뇌지주막하출혈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필수의료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최근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 중단을 선언하면서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위협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필수의료' 이전에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핫이슈였다. 이 용어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보장성 강화대책'을 정책 과제로 발표한 이후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는데,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비급여 포함해서 100만원 이상의 의료비 전액 무료'를 공약으로 내세우자 박근혜 후보 측에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을 공약으로 내세우게 되었다.(정형선. 의료정책포럼 2013;11(1):8-13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제안')
그러한 가운데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문재인케어)'이 시행되면서 건보재정 위기가 심화되고 필수의료가 보건의료 주요 이슈로 부각되게 된 것이다. 필수의료 붕괴는 단지 저수가만으로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운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곧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의미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의료와 돌봄체계의 획기적 제도혁신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제거하되 노후가 건강한 복지국가 또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2018년 11월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커뮤니티케어)'을 발표한 이후 2019년 6월부터 2년간 16개 시군구에서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커뮤니티케어 모델은 과거 영국과 일본에서 실패한 관주도의 모델인데다 단지 비용 절감을 위한 '탈(脫)의료, 탈(脫)시설'만을 지향하고 있어서 제도 성공에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우리가 보건의료체계의 오래된 문제들을 혁파하고 지속가능한 의료·돌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행 의료제도를 둘러싼 복합적인 요인들을 분석해보고 대안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시대에 국가가 국민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대신 민간의 투자로 보건의료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제대로 수립되지 못했다.
보건의료 관련 주요 법·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이 1962년 '의료법'으로 전부개정 된 이후 1963년 12월 의료보험법 제정,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보건의료 정책의 기본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보건의료기본법'은 2000년 7월 의약분업과 건강보험통합이 이루어질 때에 이르러서야 제정되었다.
'보건의료기본법'에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목표 및 그 추진 방향, 보건의료자원의 조달 및 관리 방안, 지역별 병상 총량의 관리에 관한 시책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매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18년 6월에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다 된 2019년 5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처음 수립·발표하게 되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의 부재 속에 지난 1989년 전 국민의료보험 실시와 함께 시행된 진료권 개념과 의료전달체계가 1998년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 개혁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의료전달체계)'가 되었다.
거기에다 제한된 자원을 적정하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의료이용체계가 없는 가운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는 최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민간의 투자를 통해 OECD 38개 국가 중 최고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의료전달체계의 부재로 인한 자유방임형 의료이용체계의 토대 위에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의료비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봉식. 2022.06.11. 의협신문 기고. '한국의료 오디세이아-한국의료, 대멸종 피하려면')
특히 지난 2017년 시행된 '문재인 케어'가 대형병원의 보장성 강화에 치중하면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요양급여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요양급여비 총액은 2010년 43조 6283억원, 2015년 58조 170억원, 2020년 86조 8339억원으로 증가였는데 총요양급여비의 증가율을 5년 단위로 살펴보면 2010년에서 2015년 사이는 133% 증가한 반면 2015년에서 2020년 사이는 149.7% 증가했다.
두 기간(2010∼2015년/2015∼2020년)의 의료기관 종별 증가율을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이 128.8%/166.1%, 종합병원이 136.0%/168.2%, 병원 137.9%/140.3%, 요양병원 242.8%/146.4%, 의원 123.4%/144.5%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요양급여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표 1)
문재인 케어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중소병원이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바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1월∼6월) 중 전체 의료기관은 총 2159곳이 개업하고 1419곳이 폐업하여 개업 대비 폐업이 0.66배로 나타났는데, 병원급 의료기관은 개업 45곳에 폐업 150곳으로 개업 대비 폐업이 3.3배로 전체 병원급 요양기관 중 9.1%가 폐업하여 의료기관 종별 전체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박민식. 메디게이트 2021.12.14. 보도. '중소병원 폐업률 올해 상반기 9.1%…대학병원 분원설립으로 어려움 가중')
문재인 정부의 대형병원 위주 건보 보장성 강화로 지역 중소병원이 대거 폐업을 하면서 노인성 질병으로 인해 입·퇴원이 잦은 고령의 환자들이 치료가능한 지역 중소병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중소병원 대신 병상당 요양급여비용이 5배 이상 높은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의료비 폭증을 유발하고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는 가운데 초고령사회의 도래로 인해 건강보험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점점 비효율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신설과 의료전달체계
최근 수도권 8개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 추진 또한 큰 파장이 일으키고 있다. 이들 대학병원이 10개소의 분원 설립을 다 마치면 수도권 대학병원 병상은 총 6300병상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보건복지부)는 병상 신·증설을 억제하겠다고 말하지만 지방정부(광역시도)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은 오히려 대학병원 분원 설립 경쟁을 부추겨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붕괴를 더 앞당기는 모양새다.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 신설이 급증하는 이유는 정부의 의료자원 관리에 관한 정책 부재와 제도적 허점에 기인한다.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기 때문에 병상 수 조절 기전이 있는 반면, 종합병원 형태로 개설하는 대학병원 분원은 광역단체장 권한으로 가능한 허점을 틈타 분원 신설로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대학병원과 지역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대거 신설되고 있다.
광역시도지사의 입장에서는 유명 대학병원 분원이 지역에 신설될 경우 그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로 대학병원 측에 분원 신축부지 뿐만 아니라 건축 비용까지 제공하는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대학병원들이 큰 리스크 없이 진료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원 신설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도 KTX 타고 수도권 대형병원 원정진료를 하는 환자가 급증하는 상태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이 대거 설립되면 병상자원의 수도권 집중 가속화 및 지역 간 의료 격차 심화, 의료이용체계 붕괴는 물론 지방의 몰락과 붕괴를 촉진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신설이 우후죽순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필수의료 위기가 나타나는 것은 이들 대학병원들이 응급·중증·난치질환 등 필수의료 분야 진료보다는 돈 버는 진료에 중점들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개혁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대학병원의 덩치 키우기 경쟁은 진료보조인력(PA)과 관련해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2020년 10월 이탄희 국회의원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 6월 현재 10개 국립대병원에서 활동하는 'PA 또는 전담간호사'는 총 100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학교병원 175명, 경상대병원 162명, 부산대병원 159명, 충남대병원 132명 순으로 많았으며 1003명 중 외과계가 672명(67.0%), 내과계가 258명(25.7%)으로 상대적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외과계 분야에 PA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대학병원은 PA 관련 자료라도 있으나 사립대학병원들은 PA 대신 간호사로만 인력을 관리하고 있어서 PA 인력과 관련하여 신뢰할 만한 통계조차 없다.
PA는 의사의 진료시 기록과 처방 업무까지 보조하고 있어서 보건의료노조 등이 PA의 업무를 놓고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데, 향후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이 대거 신설되면 의사 대신 인건비가 낮은 PA를 대거 채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어 PA 문제는 향후 의료계의 중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게 될 것이다.
■ 초고령사회와 선진국의 의료·돌봄 시스템
일부에서 의료기관의 지표로 입원환자 사망률 등을 주장하기도 하나 초고령사회에서 의료기관의 역할은 단지 사망률만을 낮추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망률 못지않게 고령자가 각자의 거주지에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동시에 균형감 있게 받을 수 있는 통합적·포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선진국의 '의료·돌봄 통합 모델'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선진국들은 의료와 돌봄을 분리해서 보기보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의료·돌봄의 기능적 연장선상에서 의료이용체계를 정비해 나가고 있다. 의료와 돌봄 관련 법체계도 독립적 개별법체계에서 통합적 체계로 점차 바뀌고 있다.
먼저 영국의 초고령사회 대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은 1942년 출간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근거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1944년 사회보장청을 설치하고, 1946년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과 국민건강서비스법(NHS Act), 1948년 국민산업재해법, 국민부조법(National Assistance Act) 등을 제정하고 민간 소유의 병원, 구빈원(The poor house), 장기체류형 시설 등을 국가가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점점 늘어나게 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신질환자, 고령자 등의 장기체류자 케어를 지방정부로 넘기면서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가 강조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은 1960년대 후반 생산성 하락과 함께 1970년대에 들어서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1973년 유가파동에 뒤이은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복지 다원주의(welfare pluralism)' 논쟁이 시작되었다.
복지 다원주의의 전개로 인해 영국의 사회복지는 민간이 서비스를 공급하고 정부는 관리 감독을 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는데, 과거 지방정부에서 유상으로 제공하던 복지 서비스가 그 이후 현재까지 중앙정부의 감독과 지방정부의 모니터링 하에 복지 서비스는 민간이 제공하는 형태가 되었다.
영국의 의료복지 개혁은 그리피스(Griffiths)가 1988년 발간한 <커뮤니티 케어에 관한 녹서(Green Paper)>에서 '커뮤니티 케어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90년 'National Health Service and Community Care Act'와 1993년 'Community Care Act'가 제정되면서 지방 정부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력하던 방식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제공하기 위한 조력자로서 민간사업자나 자원봉사단체로부터 서비스를 구매하는 기능으로 전환하였다.(이규식. '커뮤니티 케어, 이론과 정책' 건강복지정책연구원. 2019.7월.)
영국의 1990년대 커뮤니티 케어 개혁을 특징짓는 키워드가 '케어의 혼합경제'인데 지방정부의 서비스 제공과 구매가 분리된 '서비스공급자-구매자의 분리(provider-buyer split)'를 통해 지방정부와 민간이 협업하여 케어서비스 패키지를 구성·제공하는 케어 매니지먼트(care management) 제도가 도입되었다.(공선희.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 정책의 역사적 변천과 쟁점' 한국노년학 2015, Vol. 35, No. 1, 79~89.)
그 이후 2012년 'Health and Social Care Act', 2014년 'Care Act 2014'등을 제정하여 중앙정부의 'CQC(Care Quality Commission)'가 의료와 보건, 사회적 돌봄 전반을 감독하고 지방정부는 각 지역의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감독하는 등 돌봄 시장에 대한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개혁을 단행하는 지금의 커뮤니티 케어 모형이 정립되었다.(전용호. '영국 성인돌봄서비스 시장에 대한 감독 개혁과 한국 장기요양의 시사점' Journal of Korea Academia-Industrial cooperation Society 2018, Vol. 19, No. 4 pp. 203-210.)
일본도 인구 고령화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일본의 초고령사회 대응은 매 2년 주기로 개편되는 건강보험과 매 3년 주기로 개편되는 개호보험 수가체계가 상호 연계하여 이루어진다.
일본은 건강보험과 개호보험이 동시에 개편되는 매 6년마다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지난 2018년에 이어 오는 2024년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예측되고 있다.
일본의 초고령사회 대응은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에 해당하는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은 노인인구의 지속적 증가를 대비하기 위한 해법으로 의료와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의료를 단지 사망률이나 급성기 치료에 국한한 분절적 관점이 아니라 돌봄과 함께 전 생애를 포괄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2월 12일 '지역에서 의료 및 개호의 종합적인 확보를 추진하기 위한 관계 법률의 정비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의료·개호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의료개혁의 핵심은 의료기관 병상을 기능에 따라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구분하여 명시하고 급성기나 요양 병상을 회복기 병상으로 전환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그림 1)
일본의 의료기관 병상자원 관리는 도도부현의 지역의료계획에 따라 진료권역별로 각 지역의 병상 수를 책정하는데, 이를 '기준병상 수'라고 한다. 기준병상 수에 비해 병상이 과잉인 지역에는 신규 병원의 개설 및 병상 증설 등이 제한되게 된다.
'기준병상 수 제도'의 목적은 병상 과잉 지역의 병상 신설을 억제하고 병상이 부족한 지역으로 신설을 유도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병상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도도부현의 인구 분포에 따른 급성기-회복기-만성기 병상 총량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일본은 병상을 고난이도의 의료행위를 주로 하는 '고도급성기'와 일반 급성기 환자를 주로 보는 '급성기', 급성기를 경과한 환자에 대한 기능향상과 재택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회복기', 그리고 장기간 요양이 필요한 환자나 난치병 환자를 위한 '만성기' 병상으로 나누고 요양병상의 일부를 요양시설로 전환하고 재택의료와 커뮤니티 케어를 활성화하도록 했다.
일본의 의료개혁 구상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의 요인이 되고 있는 고도급성기·급성기·만성기 병상을 줄이고 대신 회복기 병상을 증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3년 기준 ▲일반병상(100.6만 병상)과 ▲요양병상(34.1만 병상)으로 구성된 총 134.7만 병상을 2025년까지 ▲고도급성기(13만 병상) ▲급성기(40.1만 병상) ▲회복기(37.5만 병상) ▲만성기(24.2∼28.5만)의 총 115∼119만 병상으로 줄이고 기존 잔여 병상(15.7만∼19.7만 병상)은 요양시설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보건의료 제도, 문화, 환경이 비슷하고 인구학적으로도 유사한 일본의 초고령사회 대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한국과 일본의 기능별 총병상 수 및 비율을 비교하면 2019년 기준 한국은 고도급성기에 해당하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병상 수가 총병상 수(70만 3468병상)의 21.36%(15만 2977병상)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2015년 총병상(123만 4000병상) 수의 15.48%(19만 1000병상)를 차지하고 있어서 일본에 비해 한국의 고도급성기 병상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고도급성기 병상 비율을 2025년 10.92%(13만 병상)까지 축소하고 대신 회복기 병상을 31.49%(37만 5000병상)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한·일 간 기능별 진료비 차이는 더 크다. 한국은 2019년 총진료비(68조 928억원) 중 고도급성기(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진료비 비율이 43.6% (29조 6915억원)로 일본의 24.4%(4조 5610억엔)에 비해 1.8배 가까이 높다.(표 2)
일본이 인구 고령화를 맞아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중소병원 병상자원을 노인 환자 입원 진료에 적절하게 이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보장성 강화로 환자쏠림을 유발함으로써 의료비 폭증을 유발하고 있다. 이는 초고령 시대를 맞아 국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 요인이 될 것이다.
■ 건보재정 붕괴를 막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료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령화는 의료비 증가의 가장 주된 원인 중 하나다. 건강보험 총진료비가 2017년 70조 6046억원에서 2021년 총진료비 95조 4802억원으로 1.35배 증가하는 동안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27조 6120억원에서 40조 4347억원으로 1.46배 증가했다. 총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의 점유율도 2017년 39.1%에서 2021년 42.3%로 증가했다.
오는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20%를 넘게 되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우리나라 건강보험 정책은 과거의 무분별한 보장성 강화와 자유방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건강보험료의 효율적 이용과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의료개혁에 나서야만 한다.
의료개혁의 핵심은 건보재정의 효율성과 함께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배려다. 지금과 같이 자유 방임형 의료이용체계를 방치하게 될 경우 돈 버는 의료에만 몰두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필수의료를 넘어 의료와 돌봄 시스템 전반의 붕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보재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의료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의료·돌봄 체계 구축이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급증하고 있는 만성질환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건강증진·질병예방·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핵심 기관이 일차의료기관이다.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 방문진료, 재택의료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체계를 마련하여 만성질환관리, 환자교육, 건강증진, 치료계획·상담 등 다양한 일차의료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의원급 의료기관 중 재택방문진료, 지역 의료·돌봄 연계체계를 중점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가칭)요양의원 제도를 도입하여 일차의료기관 중심 커뮤니티 케어를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재택방문진료를 받는 대상자들은 스스로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도 없는 정도의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의료 소외계층이 다수다. 이들을 지역사회 의사들이 돌보는 것은 의사에게 주어진 국가 사회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고의 사명이자 가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일에 가장 적합한 의료기관이 바로 일차의료기관이다. 일차의료기관이 소외된 환자와 국민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투쟁보다 더욱 강력하게 의사들의 사회적 권위와 영향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의료개혁 과제는 병원급 의료이용체계의 개혁이다. 입원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질병의 시기에 따라 '초급성기(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 급성기(병원, 전문병원) - 회복기(회복병원, 재활병원, 정신병원) - 만성기(요양병원)'의 기능 중심 체계로 바꿔야 한다.
'초급성기'는 응급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진료, 수련교육, 연구 중심, 고난이도 의료 및 첨단 의료를 담당하고, '급성기'는 진료과목 별 전문질환 진료, '회복기'는 급성기(수술 또는 시술) 이후 안정 및 기능의 회복을 위한 의료, '만성기'는 장기간 요양이 필요한 노인환자 입원진료를 담당하도록 기능을 구분하여 병상 자원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과잉 투자와 경쟁을 막아야 한다.
병원급 의료개혁에서 대학병원 등 급성기 병원에서 수술 또는 시술 후 조기 퇴원하여 신체 기능 회복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회복기 병원을 신설하여 환자들이 수술이나 시술 이후 안심하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세 번째 의료개혁 과제는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증설 억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은 블랙홀처럼 지방 환자를 빨아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의료비 급증과 함께 지방 소멸의 가속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대학병원 분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가 종합병원 개설 인허가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 번째 의료개혁 과제는 병상자원의 효율성 제고와 보장성 강화다. 지역 의료체계의 공백은 지역사회 붕괴 가속화를 초래하고, 결국 지역 붕괴와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별·기능별 병상 자원 배치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지역별·기능별 병상 총량을 계획한 후 그 기준에 따라 병상 증설 등 자원 수급을 조절해야만 한다.
다만 지역별·기능별 병상 총량을 계획할 때 필수의료나 감염병 같은 공공성이 높은 분야의 의료에 대해서는 별도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또 초고령사회에서는 의료와 돌봄을 연계하는 포괄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병원 치료 이후의 삶의 문제까지도 연계하는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다양한 만성 질병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이 치료에서 돌봄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돌봄까지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를 제공받고 필요 시 적절한 비용으로 지역 중소병원의 입원진료까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포괄적 의료·돌봄 이용체계가 될 것이다.
■ 글을 마치며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국민소득 1600불에 불과한 1977년 의료보험 제도 도입과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민간 중심의 의료 서비스 발전은 그동안 국가의 지원 없이 각종 보건의료 지표에 있어서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자리매김하는 뛰어난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저수가와 저급여의 기조 위에 보장성 강화정책이 지속되면서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시점에 와서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OECD 국가 중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7.4회로 가장 많고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도 12.7개로 세계 최다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의료비 조절 기제가 없는 가운데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이러한 구조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점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시행되면서 건강보험제도는 더욱 왜곡되는 양상이다. 보장성 강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위주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아지면서 대형병원 환자쏠림이 더욱 심화되면서 의료시스템 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
이제 2025년 초고령사회 도래를 앞둔 이 시점에 강력한 의료개혁으로 건보재정과 의료 시스템 붕괴를 막고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