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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낙상사고 병원 책임 면제 약정, 통할까?
법률칼럼 낙상사고 병원 책임 면제 약정, 통할까?
  •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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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의심스런운 때 고객에게 유리하게…보통거래약관 해석 원칙
병원, 낙상 위험도 평가 매뉴얼 따라 고위험군 사전·사후 관리해야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의료기관에서 생긴 일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라고 하면 흔히 수술이나 처치와 관련한 문제를 떠올리기 쉽지만, 진료 외 영역에서도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원내 낙상사고로 유족이 병원장 등을 상대로 제기하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입원할 때 환자와 가족으로부터 '사고 발생시 병원 책임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동의 서류를 미리 받아놓는 것은 어떨까? 

<사례>1. 양산시에 있는 A 노인전문병원은 환자 B씨의 입원 당시 배우자로부터 '입원 중 간혹 낙상, 미끄러짐으로 인한 골절, 갑작스런 심장정지, 질식 등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사고시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우측 편마비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혈관성 치매가 있던 B씨는 어느 날 이동식 목욕용 침대의 안전바를 심하게 흔들면서 몸을 뒤척이다가 안전바가 풀어지면서 바닥에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이를 원인으로 끝내 사망했다. 

사고 시점 B씨의 곁에는 간병사와 요양보호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안전바를 흔들면서 소란을 피우던 B씨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면서 목욕을 시키는 중이었다. 

B씨의 유족이 A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A병원이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없다고 판단해 유족측 청구를 기각했으나, 항소심에서는 "망인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거나 망인이 목욕에 협조할 때까지 목욕을 중단하고 행동이나 상태를 주시했어야 할 것"이라며 병원측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이때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서약의 효력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사고는 A병원의 피용자인 간병인 등의 과실이 경합해 발생한 것이므로 면책 약정에서 정한 돌발적인 사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서약의 효력을 배척했다. 

해당 약정의 적용 범위를 '환자 스스로 낙상하는 등 A병원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로 엄격히 해석한 것이다. 

<사례> 2. C병원은 '입원합의서' 양식에 '병원생활 중 낙상이나 미끄러짐으로 인한 골절, 타박상, 개방형 상처에 대하여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구를 넣어 입원환자로부터 서약을 받았다.

이 병원은 개별 입원환자의 간병 필요 정도에 따라 간병비를 다르게 받았는데, 보행 어려움 등으로 간병 비중이 가장 높은 의료서비스(전체간병)를 선택한 환자 D씨가 이른 아침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혼자 내려오다가 떨어져 반 혼수의 의식저하 상태가 된 사고가 발생했다. 

C병원 의료진은 낙상고위험군 환자인 D씨에게 혼자 이동하면 위험하다고 여러 차례 주지시키고, 혼자 이동하는 D씨를 발견하면 부축해주며 이동 자제를 위한 기저귀 착용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환자 가족과 병원측 공방이 팽팽한 상황에서 1심 재판부는 "C병원은 낙상예방을 위한 통상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며 병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환자측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앞서본 바와 같이 C병원의 면책 문구에는 '돌발적인 사고' 등의 불가항력을 암시하는 내용은 없으나, 이번에는 해당 입원합의서 내지 입원계약서 자체의 적용 여부가 문제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면책약정은 일반적인 병원생활에 관한 것일 뿐, '전체간병'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입원계약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점" 등을 언급하며 면책약정의 존재만으로는 입원계약에 그 내용이 유효하게 포함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사례> 3. E센터는 인천 소재 모 병원에서 지역 보건소장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던 치매 주간보호센터로, 입소하는 치매환자의 보호자로부터 '귀 센터의 이용에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 일체 책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일괄 동의를 받았다.

'모든' 사고에 대해 '일체'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니, 앞서 검토한 사례들에 비해 상당히 면책 범위가 넓어 보인다. 

그러나 낙상사고로 인해 벌어진 유족과 병원의 분쟁에서 재판부는 "낙상한 사고에 대한 직접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낙상한 이후의 적절한 보호조치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에 있어 위 면책약관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고, 이는 병원측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같이 면책약정에 관한 법원의 태도는 '의심스러운 때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약관작성자에게 불리하게 제한해석해야 한다'는 보통거래약관의 해석 원칙에 따른 것이다. 

환자가 넘어지거나 다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낙상 위험도 평가 도구 매뉴얼에 따라 고위험군 환자를 추려내 관리에 열과 성을 쏟는다. 이로써 낙상사고를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어도 100% 방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소송을 당한다면, 막대한 청구액에 겁먹지 말고 일단 사고 발생 및 후속 조치에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꼼꼼히 증명하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실제 승소 경험으로 조언 드리자면 경우에 따라서는 낙상사고가 애초 발생한 것이 맞는지 진위를 다퉈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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