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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 '걸레'
마음을 닦는 '걸레'
  • 정지선 사보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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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전주 푸른안과의원장
"의사는 환자들에게 묻은 먼지와 얼룩을 지워주는 '걸레' 같은 존재"

 

ⓒ의협신문
ⓒ의협신문

"잠시 진료를 봐도 될까요?"라며 인터뷰 시간을 미루는 전주 푸른안과의원 윤상원 원장. 의사 가운을 벗는 날에도 환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는 윤 원장이다. 선한 얼굴 위로 퍼지는 푸근한 미소엔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 딸로부터 시작된 봉사
푸른안과의원의 윤상원 원장은 전북대 재학 시절부터 인턴 생활할 때까지 촉망받던 신입 의사였다.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생활 중 치과 의사 인턴이던 부인을 만나 달콤한 신혼을 보냈다. 그리고 의사 부부에게 찾아온 첫 딸, 아이는 중증 자폐아로 태어났다.

아이는 보통 아기들과 많이 달랐다. 새벽부터 온종일 울기 바쁘고, 나이가 들어서는 물건을 마구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의사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를 돌보는 데 힘이 부쳤다. 윤 원장이 청주에서 군의관 생활을 하던 당시, 부부는 돈이 필요했다. 

ⓒ의협신문

윤 원장은 2004년 서울 김안과병원에서 소아안과 펠로우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안과병원에 둥지를 튼다. 백내장과 녹내장 수술 등 안과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과는 전부 마감이었지만 괜찮았다. 윤 원장은 딸처럼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고 싶었다. 

1년 뒤 윤 원장은 친한 동기 의사와 함께 익산에서 우리들안과를 개원한다. 연고지가 아닌 터라 병원에 손님이 드물었다. 그러던 중 익산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복지 시설 관계자의 추천으로 사회복지단체 '삼동회'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윤 원장과 직원 8명은 삼동회 의료 봉사를 다니며 봉사의 길로 접어든다.

2008년 윤 원장은 군산 근처의 섬 '어청도'로 딸과 함께 의료 봉사를 떠난다. 딸과 함께한 첫 번째 봉사 활동이다. 뱃길로 2시간 30분. 딸이 그 시간을 잘 버텨 줄지, 어청도에 가서도 문제없이 지낼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윤 원장이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딸은 어청도 이곳저곳에서 뛰어놀았다. 

같은 해, 윤 원장 부부는 딸과 함께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모험을 떠났다. 아이와 같이 떠난 여행에서 부부가 의료 봉사를 펼친 것. 윤 원장 내외는 동행한 의사들과 프놈펜의 보육원에서 일주일간 진료를 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의료 봉사하면서도 장애를 앓고 있는 딸이 타국에서 잘 버텨줄지 걱정하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딸은 보육원 친구들 및 선생님들과 잘 지내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딸의 이면을 봤다. 늘 걱정거리를 던져주는 딸이라 생각했는데, 부모 없이도 평범한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다니. 그 후로 윤 원장의 봉사 활동엔 언제나 딸이 함께 있었다.

■ 봉사의 세계에 빠져들다
윤 원장의 봉사 활동은 2011년 전주 푸른안과의원으로 일터를 옮기면서 달라졌다. 시각 장애로 고통받는 전 세계 아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국제실명구호 NGO인 비전케어에 소속된 전주 푸른안과의원. 윤 원장은 전주 푸른안과의원의 원장이자 비전케어의 소속 안과 의사로 활동 중이다. 

윤 원장은 첫 담당 지역인 몽골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의료 봉사를 펼쳤다. 그전까지는 개인 봉사 활동이라 적절한 장비를 해외에 가져갈 수 없어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봉사 단체에 소속된 이후에는 대형 의료 장비를 해외에 가져갈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백내장, 녹내장, 사시 수술 등을 진행하며 수많은 생명에게 빛을 선물했다. 

윤 원장에게 의료 봉사에 빠진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 의료 봉사 당시의 한 여학생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프놈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비전케어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쪽 눈이 심각한 사시였다.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한 청춘이었지만 사시 때문에 자신감을 잃은 그녀였다. 윤 원장은 한국에서 공수해 온 장비를 활용해 그녀의 사시를 고쳐주었다.

1년 뒤, 윤 원장은 다시 캄보디아 프놈펜을 찾아 여학생에게 연락한다. 수술 경과 및 사후 관리를 해 주기 위함이었다. 여학생에게서 온 답장에 윤 원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원장님 덕분에 결혼해 남편을 따라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작은 기술로 사람의 인생이 변화하는 것. 그것이 윤 원장을 계속해서 봉사하게 만든다. 

ⓒ의협신문
'자신이 가진 작은 기술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윤 원장이 계속해서 봉사하는 삶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의협신문

■ 아버지와 의사라는 이름으로 
2015년 전주 자림원 장애인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윤 원장의 고민은 깊어졌다. 하교한 딸을 안전하게 맡길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2016년 발달 장애인 자립 지원과 교육을 위한 센터를 설립한다. 바로 사단법인 '담장너머'의 시작이다. 

동료 의사 3명, 지역 목사 1명과 함께 시작한 담장너머. 담장너머의 최초 프로그램은 발달장애 아동 및 청소년들의 정서적 안녕과 발달을 돕는 올리브 언어 심리 센터다. 딸을 포함 3명의 이용자로 시작됐던 올리브 언어 심리 센터는 100여 명의 이용자가 활동하는 전주 지역 대표 지원 센터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담장너머는 성인 발달 장애인을 위한 지원 기관으로 확대 운영된다. 아이비 주간 활동 센터는 성인 발달 장애인의 주간 보호 역할은 물론 자립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이다. 

비전케어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외 의료 봉사자로, 담장너머에서는 발달 장애인을 위한 후원자로 활동하던 윤 원장. 코로나19의 출현은 그에게도 시련을 안겨주었다. 해외 봉사는 고사하고 센터도 휴원이 불가피했다. 그의 DNA에 흐르는 봉사 열정은 그를 본업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전주 푸른안과의원이 전주 예은교회와 연합해 형편이 좋지 않은 한국인 또는 외국인을 무료 수술해 주기 시작한 것. 윤 원장은 백내장, 사시 등 시력 회복이 꼭 필요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무료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들에게 묻은 먼지와 얼룩을 지워주는 걸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근데 걸레도 처음에는 깨끗했다. 세상의 먼지와 얼룩을 지우면서 걸레가 더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걸레도 한 번씩 빨아줘야 한다. 걸레를 빨지 않으면 걸레를 못 쓰게 되듯, 의사들도 자신을 닦는 순간이 필요하다. 내게는 걸레를 빨아서 물을 짜는 행위가 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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