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데트머 지음/강병철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3만 5000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에게 각인된 단어 중 하나는 '면역'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어느 곳에서나 '집단 면역'이 이뤄지길 고대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수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면역계는 인간의 뇌 다음으로 복잡하며, 가장 오래된 생명 현상 중 하나다. 면역계가 없다면 인간은 며칠 안에 죽는다. 거꾸로 병원체가 아니라 면역계가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도 생명을 앗아가는 데 6일 정도 걸리는데 면역은 15분이면 족하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몸속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침략, 방어, 전략, 패배, 자기희생 등 일련의 현상이 일어난다.
면역 세포 사이의 복잡한 관계로 이뤄진 면역계, 그 면역계와 적 사이의 더 복잡한 관계로 이뤄진 면역 반응, 그 면역 반응과 환경과 사회 사이의 더더욱 복잡한 관계로 이뤄진 세계와 우리는 늘 마주하고 있다.
'당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경이로운 우주' <면역>이 우리글로 옮겨졌다.
이 책을 쓴 필리프 데트머는 유튜브 '쿠프츠게작트-인 어 넛셀'(Kurzgesagt - In a Nutshell)의 설립자이자 책임저자다. '쿠프츠게작트-인 어 넛셀'은 구독자 1900만명, 누적 조회수 20억회에 이르는 세계 최강의 과학 유튜브 채널이다.
'과학을 쉬운 말로 전달하는' 저자는 먼저 면역계와 관한 몇 가지 기본 전제를 풀어 놓는다.
면역계란 무엇인가? 면역계는 어떤 맥락에서 일하는가? 실제 그 일을 맡아 하는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등을 알아본 후 다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면역계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이는지 살핀다. 이어 우리 몸에서 가장 취약한 곳으로 눈길을 돌려 심각한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설명한다. 다음에는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질환 등 다양한 면역 질환을 톺아보고 면역계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다가선다.
면역계의 핵심은 자신과 타자를 구별하는 것이고, 목표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잘못될 시나리오는 무수히 많다는 데 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줄도 모르고, 따로 떼어 놓으면 멍청하다고 할 수 있을 작은 요소들이 한 데 모여 이 복작한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 면역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주어진 상황에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신속하게 대처한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면역계의 기초'에서는 35억년 전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5억년 전 단세포 생물들이 협력하고 면역계를 발전시키며 어떻게 폭발적인 생물다양성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그 혜택이 인간에게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2부 '궤멸적 손상'에는 대식세포, 호중구, 수지상세포, T세포, B세포, 항체 등 이해하기 어렵고 기억도 쉽지 않은 이름과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나 '빵에 담긴 소시지만 먹을 수 있는 T세포', '수십억 명의 손님에게 서로 다른 요리를 제공하려는 요리사' 등 쉬운 비유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우주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무궁무진한 잠재적 항원에 대응하는 면역계'라는 놀라운 결과를, 아무런 의지나 방향도 없이 체액 속을 떠다니는 제한된 단백질이 한 데 모이는 것만으로 달성해 내는 '생물학적 창발(emergence)'을 경험하게 한다.
3부 '적대적 인수'에서는 주 악역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나다. 이제 싸워야 할 적은 외계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정체, 왜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물리치기 힘든지, 이를 위해 면역계가 사용하는 특수한 방어전략들인 인터페론, 살해 T세포, 자연살해세포 등을 설명한다. 또 이 과정에서 평생토록 우리 몸을 지켜 줄 면역학적 기억을 간직하는 방법, 수백 년의 경험을 통해 인류가 습득한 질병 대처법인 백신의 역사와 기전, '백신반대 운동'의 허구성과 왜 꼭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 짚는다.
4부 '반란과 내전'의 주제는 면역계의 어두운 일면이다. 면역계라는 위대한 시스템이 붕괴해, 외부 침입자가 아닌 면역계가 삶을 위협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에이즈 처럼 면역계의 약점을 공략하는 질병, 알레르기 같은 자가 면역 질환, 저자 자신이 겪었던 암 등 면역계가 이상 행동을 보일 때 일어나일 일들을 알기쉽게 설명한다.
면역계는 대중 과학의 다른 분야만큼 이해하기 쉽거나 즐겁지 않다. 기초적인 것을 이해하기도 전에 마구 질문을 던진다. 진정 면역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이해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정보란 마땅히 이해하기 쉽고 즐거워야 한다고기대하는 시대에 이런 말을 지나친 요구로 들린다. 이런 어려움이 있어도 면역계는 공부해 볼 만한 최고의 주제다.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기발한 방식으로 서로 반응하며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수많은 요소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로 그것은 우주 자체를 들여보다보는 창이다. 우리를 둘러싼 복잡성, 우리 자신이 그 일부를 이루는 복잡성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이 순간 살아 있으며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행운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 필리프 데트머
이 책의 번역은 '과학을 가장 쉬운 말로 전달하는' 저자만큼 해외 의과학 서적을 이해하기 쉽고 편한 우리 글로 옮겨 주는 강병철 도서출판 꿈꿀자유 대표(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맡았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뇌에 대해 알아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물로서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경험을 이해라려면 면역을 알아야 한다. 면역이야말로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기 때문이다. 면역학은 워낙 복잡한 데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공부하기는 만만치 않다. 그동안 면역학에 대해 마땅히 추천할 만한 책을 찾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면역을 이해하고 싶은가? 이 책을 읽어라!"
강병철 대표는 그동안 <툭하면 아픈 아이, 흔들리지 않고 키우기> <성소수자>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 등을 썼으며,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뉴로트라이브> <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코로나 시대에 아이 키우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02-515-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