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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섭식장애는 절대 불치병이 아닙니다"
"섭식장애는 절대 불치병이 아닙니다"
  • 김민혜 의협신문 명예기자(가톨릭의대 본과3학년) a06124@naver.com
  • 승인 2023.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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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치료 전문가 김율리 교수가 말하는 국내 섭식장애 실태
정신의학 주류에서도 소외된 분야...장기간 걸친 비약물치료 중요
ⓒ의협신문

 

주변을 둘러보면 ‘오늘부터 다이어트 할 거야’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체중과 식단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식이와 체중 강박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질되면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먹을 것에 집착하고, 살에, 체중에 자신의 삶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이다. 섭식장애는 0.5kg이 찌는 것이 죽도록 무서워서 정상적인 일상을 사는 게 어려워지는 질병이다. 그러나 섭식장애가 이처럼 위험한 질병이고, 국내에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음에도 치료에 대한 보험급여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심지어 현황조사나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국내 현실에서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김율리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섭식장애에 효과가 입증된 근거기반의 치료를 할 수 없는 현 의료시스템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모즐리회복센터를 설립했다.
모즐리회복센터는 3차병원 수간호사 경력의 간호사, 임상심리전문가 등의 다각적 전문가팀이 섭식장애의 회복에 필요한 근거기반의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섭식장애 전문회복기관이다.

“섭식장애가 중요하고, 흔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김 교수를 만나 섭식장애에 대한 국내 인식과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잇는 힘을 키움으로써 치료의 성공률을 높을 수 있는 지침 아래 자조치료법을 도입해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있는 섭식장애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협신문
김율리 인제의대 교수(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협신문

Q. 섭식장에는 먹는 행동과 관련해서 부적응적 증상들이 나타나 신체적 건강과 심리사회적 기능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정신장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이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섭식장애를 쉽게 설명하자면, 먹는 것에 대한 태도, 감정 등의 부분 등에 통제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기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고, 다시 예전의 식이 습관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병의 단계인 경우를 섭식장애라고 하죠. 중요한 것은 섭식장애가 절대로 불치병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면 많이 좋아질 수 있고 상당수는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이 병의 특징이에요.

Q. 교수님께서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섭식장애가 치료하기 어려운 질환이라는 점이 저를 끌어 들였어요. 제가 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국내엔 섭식장애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대학병원이 없었고, 섭식장애의 치료는 정신의학의 주류에서 소외돼 있었죠. 또 섭식장애는 심리적인 요인이 큰 질환이어서 단순 약물치료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비약물적 치료가 필요해요. 그런데 정신과 진료가 약물 치료 위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섭식장애 치료에 효과가 없는 약물 치료들이 남용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치료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해 섭식장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Q. 섭식장애 치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섭식장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체계적 수련 시스템이 없지만, 섭식장애연구소의 온라인 교육과정이 있습니다. 한편, 국제적으로 온라인으로 전문 과정을 교육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밟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야를 넓게 갖는다면 미국, 영국, 호주 등의 나라는 섭식장애에 대한 연구와 치료 분야가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어요. 이런 나라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전임의를 마친 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과 연계된 모즐리병원에서 치료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참여할 수 있었죠. 그와 동시에 방문무급의사(Honorary doctor) 신분으로 영국의 3차 섭식장애 치료기관에서 참관하기도 했어요

Q.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섭식장애 연구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섭식장애가 개인과 국가에 중요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해요. 10~20대의 젊은 층에서 호발하고, 이 병으로 인해 그 소중한 시간들을 잃어버리고, 삶이 황폐화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또 이 병이 흔한 질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WHO의 전 세계적 조사에서 섭식장애의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3% 인데, 극동아시아는 더 높을 것으로 추정해요. 남한 인구가 5000만명 중 적어도 150만명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보면 섭식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이 1만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아요.

이유를 살펴보자면 먼저 섭식장애를 질병이 아닌 의지의 문제나 생활스타일로 여기는 것들도 있겠죠.

또 섭식장애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때 실손보험을 적용 받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예요. 이 병명코드를 넣으면 오히려 실손보험 보장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섭식장애로 인해 역류성 식도염이나 무월경이라는 이차적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실손보험에서는 이러한 합병증은 되고, 섭식장애는 제외돼요. 섭식장애 환자가 사회적으로도, 의료적으로도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치료받을 기회를 주어야 해요.

Q. 섭식장애에 대한 인지율이 낮아 유병률이 낮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주변을 보면 흔히 약간 다이어트하거나 살 뺄 거라고 체중 조절을 시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요. 다이어트와 섭식장애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다이어트와 섭식장애는 분명히 다르죠. 섭식장애는 정신질환이거든요. 하지만 다이어트로 가려진 섭식장애도 많이 있어요. 섭식과 체중 문제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지요.

Q. 유튜브 등에서 처음에는 ‘다이어트해서 살 뺄 거야’라고 하다가 나중에 음식에 집착을 하고 신체에 대한 잘못된 자아상을 가지게 돼서 섭식장애로 이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다이어트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섭식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마음가짐으로 가질 게 있거나 지켜야 할 사항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다이어트에 집착하다가 식이 조절과 운동이 모든 삶에서 1순위가 되면서 섭식장애로 빠져들게 되죠. 삶에 대한 통제권을 다이어트에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죠 .

한편, 다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라는 것이에요. 다이어트 초기에는 살이 잘 빠지죠. 그런데 몸의 항상성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초기의 감량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요. 그런데 이 때 다이어트 초반의 의지가 약해서 살이 안 빠지는 것 등의 왜곡된 인식으로 원하는 몸무게를 위해 더 극단적으로 다이어트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요. 노력해서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게 필요해요.

ⓒ의협신문
ⓒ의협신문

Q. 섭식장애도 일종의 중독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알코올 중독이나 니코틴 중독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혼자서 해결하는 건 어려울 수 있으니까 전문 치료기관으로 가서 도움을 받아라 이런 식으로 조언을 해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섭식장애의 경우에는 언제부터 전문 치료센터에서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병 전의 건강했을 때의 식습관을 시도할 때 그것이 계속해서 실패한다면 전문 치료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 치료 기관은 환자에게 치료 동기를 부여하고, 치료 상황에서 마주치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회복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이끌게 되지요.

Q. 섭식장애의 치료와 다이어트를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폭식증 환자의 경우에서는 다이어트와 함께 섭식장애 치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둘이 정말 함께 할 수 없는 건가요?
폭식성 섭식장애의 회복을 위해 굶기보다는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폭식충동을 조절하게 되면 건강한 체중감량을 도모할 수 있게 되지요. 폭식증으로 인해 망가진 뇌의 식욕중추의 기능을 회복하면 폭식의 극단적 행동이 줄어들게 되어요.

Q. 마지막으로 선배 의사로서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이 있나요?
멀리 보고, 넓게 보기. 이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지금 하고 있는 부분 들이 당장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열정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용기를 갖고 멀리 보고 나아가길요. 다른 하나는 학교와 병원이라는 제한된 곳에서만 지내다 보면 시야도 좁아지기 쉬운데 고개를 들어 넓은 세상을 보고 교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더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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