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세상'을 만드는 흔적

'밝은 세상'을 만드는 흔적

  • 박신영 보령제약 사보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2.27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해현 원장(광주 서광병원)
"나만의 풍요로운 삶보다 타인과 공존하는 삶 더욱 가치 있어"

ⓒ의협신문
서해현 원장(광주 서광병원)  ⓒ의협신문

서광병원 서해현 원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서광병원 진료가 끝나면 노엘노인전문요양원·실버마을요양원·서광요양병원·고려인마을·광주남구노인복지관·시영금호종합복지관 등지를 오가며 지역 주민들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풍요로운 삶보다 타인과 공존하는 삶이 더욱 가치 있다는 서해현 원장을 만났다.

■ 가장 낮은 곳을 보듬다
광주 서광병원 서해현 원장은 의원·병원·종합병원·대학병원·최전방 GOP 부대 등 다양한 기관에서 변화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다. 그는 외과 전문의로 대장항문외과를 전공하고 소화기내시경 전문의와 노인의학인정의 등 자격도 취득하면서 의료의 모든 현장을 경험하고 결심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진료 봉사를 실천하며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겠다."

서 원장이 2000년부터 운영하는 서광병원은 금호동에 위치한다. 금호동은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임대주택단지가 있는 지역으로 복지 혜택의 수혜자들이 많이 거주한다. 금호동 마을 축제가 열린 날 서 원장은 처음으로 진료실 밖에서 주민들과 대면했다. 소액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던 마을 축제에서 예상치 못한 큰 환대를 받은 서 원장은 뜻 모를 기쁨을 느꼈다. 작은 노력이 이웃에게는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한 것. 그 후로 서 원장은 서광병원 의료팀을 이끌고 금호동 마을 축제에 방문하며 지역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2006년 서 원장은 전국 최초로 '사랑의 쌀 뒤주 운동' 후원을 시작했다. 누구나 쌀을 가져와 채울 수 있고 어려운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는 뒤주를 금호1동 주민센터에 설치한 것. 서 원장은 1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랑의 쌀 뒤주의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서 원장은 2017년부터 '밥걱정 병 걱정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광주 서구청과 협력해 취약 세대를 위한 MRI 검사 및 진료비를 지원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나눔은 더욱 낮은 곳으로 향한다. 2009년부터는 북한이탈주민 의료 지원 협약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에게 연 1회 무료 검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2014년부터는 광산구 무지개다문화센터에서, 2018년부터는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은 의료 복지 시스템이 매우 발전한 나라다.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다만, 이러한 의료 복지 시스템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의료 보험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처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의협신문
2017년 3월, 환갑을 맞은 서해현 원장(사진 가운데)이 네팔 파르밧현 디무와 마을 '광주진료소'를 방문해 40일 동안 의료 봉사를 펼쳤다.  ⓒ의협신문

■ 국경을 넘은 사랑 실천
2017년 서 원장은 환갑을 맞이해 네팔 파르밧현 디무와 마을의 '광주진료소'를 방문했다. 오래전부터 장기 해외 의료 봉사를 꿈꾸던 서 원장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 서 원장은 그곳에서 약 40일간 의료 봉사를 펼쳤다. 

네팔은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되지 않아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가 많다. 서 원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네팔인들을 위해 무료 외과 수술 및 치료를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네팔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현지 의사에게 외과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했다. 창상봉합술과 양성종양절제술 등 수술을 위한 기초 시스템도 구축했다. 

서 원장의 국경을 넘는 봉사 활동은 이미 2015년부터 계속됐다. 2015년 캄보디아 농촌 오지 의료봉사, 2016년 태국 메솟과 미얀마 파안 지역에서 카렌족 난민을 위한 의료 봉사, 2017년 말레이시아 사바주 의료 봉사 등 단기 해외 의료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질병에 시달리는 현지인을 보며 1960년대 한국이 떠오른다는 서 원장. 그는 의료 혜택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작지만 강한 손길을 보태고 있다. 

"미얀마 파안 지역에서 만난 눈빛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당시 미얀마 정부의 폭압에 대항하던 카렌족 반군이 정부군과 휴전한 상황이었다. 의료 봉사를 온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캄캄한 밤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전통 무용과 음악을 공연하던 카렌족 젊은이들의 선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때 만났던 카렌족 젊은이들이 부디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의협신문

서광병원을 개원할 때부터 '평균 수명 100세'에 관심을 가졌던 서 원장은 광주보훈요양원·마라나타요양원·실버마을전문요양원·선경우전문요양원·노엘실버타운 등 지역 요양원 촉탁의로 활동하며 노인 의료 복지에 눈을 뜬다. 

"어르신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손을 잡으면 빙그레 웃곤 하는데 그 미소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서 원장의 노인 의료 복지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노인 환자들과 따뜻한 눈빛을 교환하는 서 원장은 그들의 안녕을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영구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 환자가 있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치료를 의논하기 병원을 방문하곤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의대에 지불할 등록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은 의과대학 3학년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휴학하고 번 아르바이트비로 대학에 다니고, 또 다시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은 환자와 그 아들의 사정이 딱해 두 학기 등록금이 든 봉투를 건넸다. 돈 걱정 없이 공부하게 됐다며 기뻐하던 그가 대학 졸업 후 일산병원 코로나19 비상 대책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때의 등록금 덕분에 지금의 의사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눈가가 붉어졌다."

서 원장의 작은 손길은 환자와 그의 가족들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나눔이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고 강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많은 사람이 가는 넓은 길보다 좁고 험한 산길이라도 가야 할 길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곳이 어디라도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내 소명이다. 내가 남긴 흔적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