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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게 시술 설명 어디까지...대법원 판단은?
미성년자에게 시술 설명 어디까지...대법원 판단은?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3.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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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법원 "진료 과실은 없지만 미성년 환아에 설명 안해...자기결정권 침해"
대법원 "미성년자 자기결정능력 있는지·직접 설명할 사정 있는지 심리해야"
2심 법원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 인정했으나 대법원 "사건 재심리" 파기환송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12세 미성년자인 환아에게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하면서 시술 과정 전반에 관해 설명하지 않은 병원에 서울고등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나 대법원이 원심 법원이 필요한 심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원심법원은 조영술 자체에는 과실이 있다고 보지는 않았으나, 미성년 환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병원 측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능력이 있었는지, 그리고 의사가 미성년자에게 직접 설명을 해야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심리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2016년 6월 B대학병원 내원 당시 12세로 미성년자인 A양은 뇌 MRI 검사 결과 모야모야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은 후 같은 달 17일 피고 병원(C대학병원)에 내원해 모야모야병의 수술적 치료를 받기로 하고, 이에 앞서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 받았다.

모야모야병(moyamoya disease)은 특별한 이유 없이 뇌 속 특정 혈관(내경동맥의 끝부분)이 막히는 만성 진행성 뇌혈관 질환. 모야모야병이 의심되는 경우 CT, MRI, MRA, 뇌혈관 조영술 등을 이용해 진단한다.

C대학병원은 A양의 해부학적인 뇌혈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키로 했다. 환아의 보호자인 A양의 어머니에게만 조영술에 관해 설명하고 시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 A양은 뇌혈관 조영술이 끝난 후 3시간이 지나면서 입술이 실룩거리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보였다. C대학병원 의료진은 '아티반'(진정제)을 투여하고, 생리식염수를 주입한 다음 CT 촬영을 시행했다.

그러나 A양의 증상은 더 심해졌으며, 뇌 MRI 검사 결과 급성 뇌경색 소견을 보여 오후 7시경 중환자실로 옮겨 집중치료를 시행했다.

A양은 모야모야병 수술을 받고 퇴원했으나 재활치료에도 영구적인 우측 편마비, 언어기능 저하 등의 후유장해를 진단받았다.

A양의 어머니는 병원 측이 뇌혈관 조영술을 무리하게 시행했으며, 조영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합병증과 부작용에 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C대학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없고, 조영술 후 증상이 심해질 때 적절하게 처치를 한 점을 고려해 병원 측의 과실도 없다"며 시술 과정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와 관련해서도 "C대학병원 측이 A양의 어머니에게 조영술을 왜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조영술에 대해 설명하고 시술 동의서에 서명도 받았다"며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병원 측의 시술에는 문제가 없지만, A양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아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C대학병원 측 의료진이 A양의 어머니에게 조영술(진단에 관한 설명, 치료하지 않을 경우 예후, 치료 방법의 종류, 시술의 이유·목적·필요성, 시술의 방법·내용, 발생 가능한 합병증·부작용, 문제 발생 시 조치사항, 시술 후 주의사항, 기타 추가설명)에 관한 내용이 인쇄된 시술 동의서를 제시하면서 설명한 부분은 인정했다.

하지만 환아인 A양에게 시술 과정이나 시술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뇌경색 등의 부작용과 그로 인한 위험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A양과 보호자가 시술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모야모야병이 의심되는 환아에게 조영술과 같은 침습적 시술을 시행하는 경우 뇌경색 발생의 위험성이 높아 환아에게 시술과정을 설명해 긴장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진료기록상 직접 설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조영술을 시행한 C대학병원 의료진은 설명의무를 모두 이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A양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심, 2심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자 원고 및 피고 측은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에서는 의료진이 미성년자에 대한 의료행위 시 친권자나 법정대리인 이외 미성년자에게도 직접 설명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미성년자라도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이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미성년자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의 보호 아래 병원에 방문해 의사의 설명을 듣고 의료행위를 선택·승낙하는 상황이 많다"라며 "의사가 미성년자인 환자의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게 의료행위에 대해 설명했다면, 그러한 설명이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을 통해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전달됨으로써 의사는 미성년자인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의사가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직접 의료행위에 관해 설명하고 승낙을 받을 필요가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의사는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에 대한 설명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고,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직접 의료행위를 설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 병원 의료진은 A양에게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A양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려면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우선 A양에게 의료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선택·승낙할 수 있는 결정능력이 있는지를 심리해야 하고 ▲A양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친권자 및 법정대리인에게 이 사건 조영술에 관한 설명을 했더라도 A양에게 직접 설명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심리했어야 한다는 것.

대법원 재판부는 3월 9일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어야 함에도 원심은 이러한 심리를 하지 않은 채 A양에게 직접 설명했다는 사정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 병원 의료진이 A양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미성년자인 환자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 최청희 변호사(법무법인 CNE/의협 법제이사 겸 보험이사)는 "사실상 의사는 진료 시 모든 미성년자인 환자에 대해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결정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진료현장에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미성년자를 위한 쉬운 내용의 별도 동의서 양식을 구비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인력·규모가 작은 병의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청희 변호사는 "미성년자인 환자와 친권자나 법정대리인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미성년자인 환자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쉽고 상세하게 의료행위를 설명하고, 친권자나 법정대리인뿐만 아니라 환자의 정확한 의사도 직접 확인한 후 이를 동의서 내지 진료기록부 등 서류에 반드시 상세하게 기록할 수밖에 없다"며 "진료현장에 상당한 혼란이 초래할 것"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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