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수사 결과만 보고 건보공단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 처분' 제동
건보법 조항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침해…내년 12월말까지 개정해야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아닌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서 사무장병원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요양급여비용의 지급 보류)이 사실상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3월 23일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사무장병원으로 확인된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 사건(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 등 위헌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급보류 처분에 제동이 걸렸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3월 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의료기관의 개설 주체를 의료법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는 구 의료법(2009. 1. 30. 법률 제9386호로 개정되고, 2020. 3. 4. 법률 제1706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3조 제2항 제3호에 대한 심판청구를 각하하고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구 국민건강보험법(2014. 5. 20. 법률 제12615호로 개정되고, 2020. 12. 29. 법률 제177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7조의2 제1항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며 ▲국민건강보험법(2020. 12. 29. 법률 제17772호로 개정된 것) 제47조의2 제1항 전문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위 법률조항은 2024. 12. 31.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 청구인(2018헌바433)은 요양병원에 관한 개설허가를 받아 이를 운영하는 의료법인으로, 청구인의 임원 등은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대여받아 의료기관을 운영(이하 사무장병원)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됐다.
이에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따라 청구인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하는 처분을 했다.
이후 청구인은 위 지급보류처분의 취소 등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그 소송 계속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 제3호,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위 제청신청이 기각되자 2018년 11월 2일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한편, 위 행정소송과 관련하여 제1심 법원은 위 청구인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는데, 항소심 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2019헌가22)
또 다른 청구인(2020헌바503)은 요양병원에 관한 개설허가를 받아 이를 운영하는 의료법인으로, 경찰 수사로 청구인의 대표이사가 위 요양병원을 사무장병원의 형태로 운영한 혐의사실이 확인됐고, 이에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따라 청구인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하는 처분을 했다.
이후 청구인은 위 지급보류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그 소송 계속 중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그러나 위 제청신청이 기각되자, 청구인은 2020년 10월 8일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 심판대상은 ▲구 의료법 제33조 제2항 제3호(이하 이 사건 개설금지조항)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이하 이 사건 구법조항)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 전문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이하 이 사건 현행법조항이라 하고, 이 사건 구법조항과 통틀어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개설금지조항과 관련 "청구인(2018헌바433)의 이 사건 개설금지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당해 사건 재판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의 인정이나 평가 등을 다투는 경우에 불과해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과 관련해서는 "지급보류처분은 잠정적 처분이고, 그 처분 이후 사무장병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무죄판결의 확정 등 사정변경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정변경사유는 그것이 발생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지급보류처분의 '처분요건'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사정변경이 발생할 경우 잠정적인 지급보류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급보류처분의 취소'에 관해서도 명시적인 규율이 필요하고, 그 '취소사유'는 '처분요건'과 균형이 맞도록 규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하급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에는 그때부터 일정 부분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앞서 본 사정변경사유가 발생할 경우 지급보류처분이 취소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와 함께 지급보류기간 동안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수인해야 했던 재산권 제한상황에 대한 적절하고 상당한 보상으로서의 이자 내지 지연손해금의 비율에 대해서도 규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제한이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지만, 현재 이에 대한 어떠한 입법적 규율도 없다"며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지급보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사건 구법조항은 이미 개정돼 적용될 여지가 없지만, 당해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어, 계속적용을 명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위헌선언의 효력이 당해 사건에 미치지 못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 사건 구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그 적용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 현행법조항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2024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잠정 적용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은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 건보공단으로 하여금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처음 판단한 사건"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이번 헌법재판소 사건을 소송대리한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헌법재판소는 본 조항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 것으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사무장병원을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 법률이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만으로 완화된 요건에서 지급보류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반대로 이의 수사결과통지가 잘못됐을 때에는 이에 대한 요양기관에 대한 아무런 구제책도 마련하고 있지 않아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김주성 변호사는 "지급보류제도는 건강보험체계에서 대등한 지위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요양기관의 관계에서 건보공단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권한을 주면서도 이에 대한 통제장치가 전무한 상황이라 속성상 보험자인 건보공단의 권한남용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실제 건보공단의 위법한 지급보류처분으로 정상적인 의료기관이 도산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이전 점을 헌법재판소가 지적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건보공단이 지급보류 처분을 하더라도 기간과 금액을 요양기관이 견딜 수 있을만큼으로 정하고, 처분 이후 건보공단의 위법한 지급보류가 확인되면 건보공단은 요양기관에 대해 영업권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보완입법이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심판대상조항]
▲ 구 의료법(2009. 1. 30. 법률 제9386호로 개정되고, 2020. 3. 4. 법률 제1706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3조(개설 등)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이 경우 의사는 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또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다.
3.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하 "의료법인"이라 한다)
▲ 구 국민건강보험법(2014. 5. 20. 법률 제12615호로 개정되고, 2020. 12. 29. 법률 제177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7조의2(요양급여비용의 지급 보류) ① 제47조 제3항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또는 「약사법」 제20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에는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 국민건강보험법(2020. 12. 29. 법률 제17772호로 개정된 것)
제47조의2(요양급여비용의 지급 보류) ① 제47조 제3항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4조 제2항, 제33조 제2항·제8항 또는 「약사법」 제20조 제1항,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에는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이 경우 요양급여비용 지급 보류 처분의 효력은 해당 요양기관이 그 처분 이후 청구하는 요양급여비용에 대해서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