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을 신지 않았더라면
모자를 쓰지 않았더라면
도로를 건너지 않았더라면
서둘러 잠을 청했더라면
그날 편지만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늘 우울했습니다 우울한 식사를 하고 우울한 대화를 하고 우울한 길을 뛰어다녔죠 가끔 명랑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경쾌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구름 위를 걷지요 어차피 당신은 날 알아보지 못하니 당신한테 쓴 편지는 언제나 명랑해요 저녁이 오면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갈라요 당신을 요양원에 두고온 날도 짝 짝 살갗 찢는 소리가 들렸어요 돌아오는 길이 아프지는 않았어요 도로에 찢겨진 짐승을 보고 뺨을 맞은 것처럼 얼얼했지만 금새 명랑해 졌어요 代壽代命, 환하게 찢겨진 슬픔이 저녁을 위로했어요 갈라진 성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부르튼 입술로 비위를 맞추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요 푸른숲을 다녀와 구두를 벗는 일은 행복했어요 마지막까지 당신은 해피엔딩이잖아요 미간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안부는 묻지 마세요 저토록 흥건한 신음소리도요 저 명랑한 스키드마크를 상상해 보세요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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