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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정지→과징금' 처분 변경…"별도 소송 가능"
'업무정지→과징금' 처분 변경…"별도 소송 가능"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3.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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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업무정지처분 취소소송과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은 별개" 판단
"위반행위 동일하지만, 처분 근거 법령 달라...재소 금지 원칙 위반 아냐"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의 업무정지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던 중 행정처분이 과징금 부과처분으로 바뀌어 업무정지처분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어도, 바뀐 과징금 부과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업무정지처분과 과징금 부과처분의 기초가 되는 위반행위는 동일하지만, 처분의 근거법령이나 요건과 효과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재소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고 소송제도를 남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3월 16일 병원 의사들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들의 항소를 각하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 B의사(원고들)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약사가 미리 조제한 약을 비치하고 간호사가 약을 추가로 조제한 후 환자에게 투여해 약사법(제23조 제1항, 제24조 제4항)을 위반했음에도, 그 약제비 등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해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 등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이런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2018년 6월 27일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4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을 했다.

이에 원고들은 2018년 9월 20일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업무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으며, 원고들은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항소심이 계속 중인 2020년 1월 10일 원고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민건강보험법 제99조 제1항에 따라 '업무정지처분'을 '과징금' 4억 9657만원의 부과처분으로 직권 변경했다.

행정처분이 업무정지처분에서 과징금 부과처분으로 바뀌자 원고들은 2020년 3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 과징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또 제기했다.

이후 원고들은 2021년 11월 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업무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취하했고, 보건복지부도 원고들의 소 취하에 동의해 이 사건 소송을 소 취하로 종결됐다.

문제는 대전지방법원(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이 사건 소)이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업무정지처분 취소소송(이 사건 전소)과 사건 내용이 동일해 재소금지의 원칙에 위반돼 부적법하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고등법원도 원고들의 항소를 각하판결했으며, 원고들은 대전고등법원의 항소심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재소금지의 원칙'이란 어떠한 사건에 관해 최종판결이 있은 뒤에는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민사소송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또 소송을 취하한 경우에도 적용되며, 이는 소송의 취하로 인한 최종판결을 농락하거나 소송을 취하하는 것의 남용에 대한 제재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민사소송법(제267조 제2항)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한 사람은 같은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임의의 소취하로 그때까지 국가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아가게 한 사람에 대한 제재의 취지에서 그가 다시 동일한 분쟁을 문제삼아 소송제도를 남용하는 부당한 사태의 발생을 방지하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재소의 이익이 다른 경우에는 '같은 소'라 할 수 없다. 또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후 소를 취하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민사소송법(제267조 제2항)의 취지에 반하지 않고,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는 정당한 사정이 있다면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 사건 전소는 처분의 변경으로 인해 그 효력이 소멸한 '이 사건 업무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고, 이 사건 소는 후행처분인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 전소와 이 사건 소의 소송물이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전소의 소송물인 '이 사건 업무정지처분의 위법성'이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의 위법성을 소송물로 하는 이 사건 소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선결적 법률관계 또는 전제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이 밖에 "이 사건 업무정지처분과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의 기초가 되는 위반행위는 동일하지만, 처분의 근거법령이나 요건과 효과는 동일하지 않다"며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은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에 근거한 것이고,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은 같은 법 제99조에 근거한 것으로 그 처분기준이나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에 대한 고려사항이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업무정지처분에는 위법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갈음해 부과된 과징금의 액수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부담하게 한 금액의 5배'를 초과함으로써 과징금 부과처분이 위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원고들에게 이 사건 업무정지처분과는 별도로 이 사건 과징금 부과처분의 위법성을 소송절차를 통해 다툴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환송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보통 보건복지부가 업무정지처분을 하기 전에 과징금 부과처분으로 변경할지를 문의한다"라며 "즉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처분이 달라지는 셈인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두 처분의 사실관계가 동일할지라도 처분의 내용이 다른 이상 각각 취소를 구할 이익이 있다고 인정한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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